▲실을 잣고 있는 중국 여인.
출처: 1637년 송응성 지음 <천공개물>
서로 열애하는 사이이지만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해마다 칠석날에, 그것도 까마귀들의 도움을 받아 딱 한 번밖에 재회를 할 수 없다는 견우와 직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저 동화 속에 나오는 설화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중국·일본 등에 전해지고 있는 이 설화는 사회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려고 한 동아시아 전통시대 지배층의 논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 설화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으로는 ▲남자는 소를 끌고 여자는 베를 짜며 ▲이러한 분업적 역할을 게을리 하면 옥황상제가 벌을 내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견우의 직업을 ‘목동’이라고 기재한 동화책들이 많지만,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설화가 최초로 등장하는 중국 고전인 <시경> 소아편에 나오는 견우(牽牛)는 목축업 종사자라기보다는 농업 종사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보는 게 순리적일 것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유행한 시들을 정리한 <시경>이라는 책은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일 수밖에 없다. 당시의 중국은 유목사회가 아니라 농경사회였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에는 소를 농사에 이용하는 우경법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소 끄는 사람’이라는 뜻의 견우는 목동이 아니라 농민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더 역사적 현실에 부합할 것이다.
견우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이고 직녀는 베 짜기를 하는 사람이었다고 이해하면,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의도가 한층 더 명확하게 다가올 것이다. 남편인 견우는 집밖에서 농사일을 하고 아내인 직녀는 집안에서 베 짜기를 했으며 두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게을리 하자 옥황상제가 분노하여 벌을 내렸다는 이 이야기는, 바로 남경여직(男耕女織)의 분업적 사회시스템을 형성하기 위한 의도의 반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상소설 같은 견우직녀 설화를 문자 그대로 믿은 사람들은 과거에도 없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었을까?”라고들 하지만, 옛날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설화가 전해졌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갔다”는 말의 뜻을 별 거부감 없이 이해하듯이, 옛날 사람들도 설화 속의 비과학적인 요소를 걸러내고 그 속에서 핵심적 메시지만 추출해서 이해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이래로 전통시대 사람들은 견우직녀 설화 속의 비과학적 요소에 빠져들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자는 농사일을 하고 여자는 베를 짜는 것이 순리’라는 관념을 은연중에 되새겼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음력 7월 7일 밤하늘에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것 같은 장면이 나타나면, 그것을 보면서 견우직녀 설화와 남경여직 논리를 다시 한 번 떠올렸을 것이다.
한국·중국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사회의 지배층이 남경여직의 사회적 분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사용한 수단에는 견우직녀 설화 말고도 여럿이 있다.
중국 학자인 옌중핑은 1966년에 쓴 <중국근대산업발달사>라는 책에서 “신농씨가 사람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황제(黃帝)의 후비인 라조(螺祖)가 사람들에게 양잠과 실 짜기를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중국인들에게 남경여직의 관념을 심어주었다”라고 기술한 바 있다. 신농씨나 라조의 신화가 ‘남자는 농사일을 하고 여자는 베 짜기를 한다’는 관념을 형성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한편, 국내의 어느 유력한 중국사 학자는 옌중핑의 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신농씨나 라조의 신화가 중국인들의 의식에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전통시대에 존재한 남경여직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런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옌중핑의 견해를 취하든 이 국내 학자의 견해를 취하든 간에, 신농씨·라조 신화와 남경여직 논리의 상관관계는 충분히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인민들을 남경여직으로 유도하기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장치도 설치되었다. 왕이 직접 농사일을 하거나(친경 親耕) 혹은 왕비가 친히 누에치기(친잠 親蠶)를 한 것 등이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선잠단(사적 제83호)에서 그 사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삼청터널 쪽으로 10여 분 이상 걸어가면, 도로 오른쪽에서 붉은 색 대문의 선잠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왕비가 직접 누에를 키워 고치에서 실을 뽑는 친잠례가 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