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문한양의 북소문이며 자하문이라고도 불린다
이정근
유배지 연안에서 압송돼온 이숙번은 즉시 순군옥에 투옥되었다. 한 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를 부렸던 이숙번이다. 허나 오늘의 이숙번은 모든 것을 포기한 초췌한 모습이다. 태종과 십 수 년을 동고동락했던 터라 임금이 진노한 색깔을 알고 있다. 이제는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급선무다.
병조에 국청이 마련되었다.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이숙번이 도착하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 죄인이 사실을 토설하지 않으면 형문을 가해도 좋다는 임금의 내락을 받아둔 상태다.
드디어 국청이 열렸다. 순군옥에 갇혀있던 이숙번이 끌려 나왔다. 텁수룩한 모습이 흡사 털 빠진 한 마리의 호랑이 같았다. 죄인은 담담한데 오히려 심문관들이 긴장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한 때는 2인자로 통했던 이숙번이지 않은가
심문관들이 구종수와 구종지를 심문한 초계본을 들이밀며 질문했다. 한 때는 병조판서에 있던 사람이 추해지고 싶지 않아서 일까. 이숙번은 순순히 인정했다. 의외였다. 심문결과에 따라 생명도 위태롭다. 그런데도 이숙번은 범죄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다. 잔뜩 벼르던 국문이 싱겁게 끝났다.
좌부대언(左副代言) 이명덕, 의금부지사(義禁府知事) 민의생이 이숙번의 죄상을 공초한 계본(啓本)을 가지고 태종에게 보고했다. 때맞춰 형조와 대간에서 상소가 올라왔다.
"구종수·이오방 등이 궁성을 넘어 들어갔으니 죄가 극형에 처해야 합당한데 전하께서 특히 관인(寬仁)을 베풀어 단지 결장(決杖)하여 귀양 보내는 것에 그쳤습니다. 이제 구종수·이오방의 부도한 죄상이 또 드러나서 관계됨이 지중하니 모두 극형에 처해야 마땅할 자입니다.이숙번은 자신이 불충한 죄를 범하고도 특별히 상은(上恩)을 입어 생명을 보전하고 향곡(鄕曲)에 안치되었으니 근신해야 옳을 터인데 사삿일로 구종수와 사통하고 또 구종수의 간청을 들어 악한 마음을 품고 사실을 숨겨 조정에 계문하지 않았으니 그가 전심(前心)을 고치지 아니함이 분명합니다." - <태종실록> 중"구종수·구종지·구종유와 이오방 등의 죄는 조율(照律)하여 계문(啓聞)하라."
이숙번에 대한 언급은 없다. 형조와 대간의 상소에 이어 의금부도사 윤수가 죄인들의 죄를 조율(照律)한 계본(啓本)을 태종에게 올렸다.
"구종수 일당은 모반대역(謀反大逆)의 율(律)에 비부하여 모두 능지처사(凌遲處死)하고 재산을 몰관(沒官)하게 하소서."
"이승은 내 이미 채찍질하게 했으니 전라도 금구로 귀양 보내고, 진포는 충청도 덕은에, 김산룡은 음성에 금음동은 경상도 문경에 정속하고 모두 가산을 적몰하라. 김기는 약환(弱宦)이라 장(杖) 80대는 무리이니 60대로 하고, 소근동도 이와 같이 하라. 구종수·구종지·구종유·이오방은 참(斬)에 처하고 가산을 적몰할 것이며 이숙번은 함양에 자원 안치하라."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머리, 저잣거리에 걸리다 서릿발 같은 왕명이 떨어졌다. 대시수(待時囚)는 추분 까지 살아 있을 수 있지만 구종수 일당은 부대시수(不待時囚)다. 즉시 처형 대상이다. 순군옥 담터에 형장이 마련됐다. 대시수는 새남터와 당고개 같은 외진 곳에서 처형하지만 부대시수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 처형한다.
세자의 향응을 칭탁하여 도성을 휘젓고 다니던 구오방의 총수 구종수의 목이 피를 뿌리며 떨어졌다. 말 그대로 신수이처(身首異處)다. 기생을 끼고 향락에 젖던 팔이 축 늘어졌다. 여인의 가슴을 어루만지던 손이 핏기를 잃었다. 순간이다. 이를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눈을 가리면서도 자꾸만 쳐다본다.
잘 나가던 아우와 함께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구종지와 구종유의 머리도 저잣거리에 걸렸다. 가야금을 잘 타던 이오방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더니만 이내 멈추었을 때 구경하던 백성들이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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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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