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했던 오르미들은 모두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풍경에 빠져 넋을 잃은 듯 서 있을뿐. 정상에는 가을바람이 불었다. 이쯤해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하얗게 피어있는 왕고들빼기. 하얀 꽃잎 주위를 맴돌던 벌들도 신이 났다.
척박한 땅에 둥지를 트는 생태계
이렇듯 제주오름은 생태계의 휴식처와 서식지이다. 구르는 돌 틈에는 콩짜게 난이 서식하고, 이끼 낀 곳에서는 여지없이 습지식물이 둥지를 튼다. 야생화의 달콤함을 먹고 자라는 곤충들이 있는가하면, 무성한 잡초 속은 아지트를 이룬 메뚜기와 여치도 있다.
두 개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는 느지리오름은 망오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만조봉수를 설치, 동쪽과 서쪽으로 연결했다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상은 잡초가 너무 무성하여 깊이 78.2m의 원형분화구와 용암 유출과 쇄설물로 침식된 분화구의 모습을 식별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침을 굶었던 오르미들도 배고픔을 잊었다.
구비구비 굽은 산길과 이어지는 비탈길을 따라 하산이 시작됐다. 올라갈 때 오르막길에서 느꼈던 고달픔도 하산 길에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역정과도 같다. 그래서 제주 오름 속에 들어가 보면 아무리 평탄한 길이라도 숨고르기를 하게 된다. 느지리오름 자락에는 왕고들빼기가 가을속에 출렁대고 있었다.
느지리 오름은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 45번지에 있다. 오름의 유래는 왜적의 침입을 망보는 봉수대가 오름 꼭대기에 있어서 망오름이라 한다.
표고 225m, 비고 35m로 오름 특징은 정상에 2개의 원형 분화구가 있다는 것. 남쪽은 정상봉이며 타원형 분화구가 있고, 남동쪽으로 소봉 작은 원형 분화가 가려있다. 정상봉의 분화구 둘레 800m, 깊이 73m. 작은 분화구는 300m, 깊이 40m 정도.
분화구에는 소나무,상수리나무,보리수나무,초피나무,자귀나무,청미래덩굴,찔레덩굴 등이 분포한다. 굼부리에는 타래난초, 소나무, 고삼, 고사리 등 상록활엽수림과 초지식물이 분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