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진산 백악산. 광화문 사거리에서 바라보면 비틀어져 있다.이정근
철령에서 바라본 조국산천은 장엄했다.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백두산 정기가 태백산 등허리로 내려가는 길목 철령. 조국의 맥박이 뛰고 있었다. 그 혈맥에 서있는 자신의 심장이 고동치고 목울대에서는 뜨거운 것이 치밀고 올라왔다. 명나라가 왜 철령을 탐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철령은 대륙으로 가는 길목이다. 철령을 밟는 자가 대륙으로 나갈 수 있고 철령을 잃는 자는 반도에 갇히게 된다. 대륙의 맹주 명나라는 조선을 반도에 가두어 두기 위하여 철령을 요구했고 우리는 지켰다. 그것이 비록 사대하여 얻은 것이지만 전쟁으로 잃은 것 보다 낫다고 생각되었다. 한양에 돌아가면 임금에게 주청하여 철령에 조선이라 새겨진 쇠말뚝을 꼭 박아두고 싶었다.
철령을 넘어 함길도에 들어갔다. 예원군에서 하룻밤 묵으며 오른쪽 턱 위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종기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하륜은 주치의로 대동한 방민으로 하여금 질침(蛭針) 요법을 쓰게 하고 함흥부에 들어가 임금의 할아버지 환조를 모신 정릉(定陵)과 할머니를 모신 화릉(和陵)을 살펴봤다.
정릉과 화릉을 살펴보는 동안 환송연 막간에 임금이 던진 "천세(千歲)를 생각하시오"라는 한 마디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 태종이 천하의 도참 하륜을 동북면에 보낸 것은 그냥 살펴보라고 보낸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를 잘 모셔 왕업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태종은 천년(千年)의 수성을 생각하고 보낸 것이다. 천년사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감정하라고 보낸 것이었다.
성리학적 측면에서 도참을 배척한 태종은 하륜의 풍수는 신뢰했다. 특히 한양천도 당시 하륜이 주장했던 무악 번영론에 아쉬움이 남아 연희동에 이궁을 지었고 백악산이 비틀어져 장자승계가 어렵다는 주장에 동의하여 경복궁을 멀리하고 창덕궁을 지었다. 이러한 하륜에게 할아버지의 묘를 감정해보고 싶었다. 오늘의 현안도 장자 양녕대군에게 왕통을 승계 해주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다. 그러나 백악의 훼방이었을까. 역사는 세종으로 흘렀다.
귀주동에 자리한 정릉과 화릉 능침을 살펴보던 하륜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굳어졌다. 할아버지를 모신 화릉은 천하의 명당 터에 자리 잡았는데 할머니를 모신 화릉은 진산에서 각도를 벗어나 있었다. 음택에 음, 즉 여자를 모신 방위가 틀어지면 자손이 귀하다. 양의 기운을 받아 150년은 버티겠는데 200년이면 기운이 고갈되어 자손으로 아귀다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한양에 돌아가면 화릉은 천장해야 된다고 주청하고 싶었다.
놀라운 예지력이다. 이로부터 딱 151년 후, 왕통을 이어갈 후손이 끊겨 덕흥군의 아들을 옹립하여 선조대왕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여인천하 치마폭에 휘둘려 세월을 보낸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이 덕흥군이다. 명종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서열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손자가 등극하였으니 이 분이 선조대왕이다. 이로부터 시작한 왕손 품귀현상은 드디어 강화도의 나무꾼을 데려다 철종을 만드는 사태에 까지 이른다.
관아에 마련된 숙소에 돌아온 하륜은 대동한 주치의 방민으로 하여금 종기부위에 질침을 시침하라 일렀다. 질침은 사혈(瀉血)침술의 하나로 환부에 거머리를 붙이거나 배(梨)와 같은 흡인력이 강한 약재를 붙여 죽은피를 뽑아내는 한의술이다.
질침에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은 하륜은 정평부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륜의 일거수일투족은 속속들이 임금에게 보고되었다. 하륜이 병환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접한 태종은 내신(內臣-내시) 황도를 급히 파견하여 하륜의 병을 위로하고 병세를 알아오라 명했다. 성질이 급한 태종은 황도의 귀환을 기다리지 못하고 어의(御醫) 이헌을 불렀다.
"산릉을 살펴보던 진산부원군이 병을 얻어 정평부에 누워있다. 역마를 내줄테니 화급히 달려가 내 몸처럼 치료해주도록 하라."
임금과 동격으로 치료하라는 명이다. 왕이 역마를 내준다는 것은 쉬지 않고 가라는 뜻이다. 말(馬)은 고속으로 어느 정도 달리면 지쳐서 달리지 못한다. 이럴 때 지친 말에서 내려 새말로 바꾸어 타는 곳이 역참이다. 역참은 국가 안보에 없어서는 아니 될 중요한 교통 통신망이다. 중앙집권체재를 강화하고 있던 태종은 전국 41역로와 516 역참을 병조에 소속시켜 잘 정비해 놓았다.
어의(御醫) 이헌이 탄 말이 창덕궁을 빠져나와 흥인문을 통과할 때였다. 한필의 검은 말이 날쌔게 따라 붙었다. 천리 길도 쉬지 않고 달릴 것 같은 하체가 잘 빠진 준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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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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