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록>. '선원계보기략'이라고도 불리며 태종 때 처음 만들어진 조선왕실 족보다.이정근
조선 왕대의 주역 전주 이씨는 전주의 토호세력이었다. 훗날 목조로 추존된 이안사는 전주 고을 산성별감과 갈등을 빚다 가솔과 식솔 170여호를 이끌고 외가의 고장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했다.
공교롭게도 임지를 따라 부임해 온 안렴사가 전주의 산성별감이었다. 그 관리를 피해 동북면 덕원에 정착한 이안사는 훗날 익조로 추존된 이행리를 경흥에서 낳았다.
이행리는 이춘을 낳고 이춘은 이자춘을 낳았으며 이자춘이 무장으로 성공했다. 동북면을 평정한 이자춘은 부인 이씨와의 사이에서 이원계를 낳고 최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이성계다.
여기에서 이씨와 최씨의 위상이 모호하다. 이자춘의 첫 부인은 김씨인데 실록은 '이자춘의 배위(配位)가 정효공(靖孝公) 최한기의 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승자의 냄새가 난다.
태종 이방원의 조부와 증조부 그리고 고조부의 묘가 모두 동북면 함흥에 있었다.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묘였으나 조선을 개국하고 왕에 등극한 후 경흥에 있던 이안사의 묘를 함흥으로 천장하면서 능으로 격상하고 관리를 상주하게 하였다. 도참의 대가 하륜으로 하여금 함흥을 방문하여 조상의 묘를 돌아보고 문제점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명을 받들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하륜이 제산릉고증사(諸山陵考證使)가 되었다. 고증사의 위상에 걸맞은 안마(鞍馬)·모구(毛裘)·모관(毛冠)·입(笠)·화(靴)와 유의(襦衣)1습(襲)을 마련해주고 종사관을 붙여 주었다. 최상의 대우다.
"진산이 함길도에 가는데 내가 잔치를 베풀어 전송해주고자 한다. 진산부원군이 술을 마시지 못하니 풍악을 준비도록 하라."
하륜이 동북면으로 떠나던 날, 태종은 몸소 동교 선암(鐥巖)에 나와 하륜을 전송했다. 풍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임금이 내려준 모관에 하사한 말(馬)을 타고 멀어져 가는 하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태종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태종과 하륜의 마지막 작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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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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