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가 득표 2위를 차지한 박근혜 후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실 김 대변인에게는 한 가지 더 고맙고 미안한 일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20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발표를 위한 전당대회를 생방송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생방송 코너 중에 양 캠프 대변인 중 한명씩을 출연시켜 개표 결과에 대한 전망을 듣는 꼭지가 있었다. 나는 지난 주부터 김 대변인에게 출연을 부탁해놨다. 그날 아침에도 미리 질문지를 보여주고 출연시각을 알려줬다.
김 대변인의 출연 시각은 오후 3시 5분께였다. 개표 결과 발표는 이날 오후 4시 30분. 당선자 발표를 1시간 30분 앞두고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는지, 캠프 분위기는 어떤지 등이 인터뷰의 알맹이였다.
오후 2시 50분, 그를 대기시키기 위해 찾아 나섰다. 그는 전당대회장인 올림픽체조경기장 1층 플로어에서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를 붙잡고 "지금쯤 이동해야 한다. 가시자"고 말했다. 그는 "알았다"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바로 따라 나섰다. 그런데 그의 어두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졌구나.'
패배 알고도 카메라 앞에서 "이길 겁니다" 해야 했던 김 대변인
그를 데리고 2층 방송 데스크까지 가는 동안, 그에게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위로를 할 수도, 그렇다고 모른 척 결과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순간에는 어떤 말도 그에겐 잔인할 테니 말이다. 기자로서 '직무유기'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곧 공식 발표가 있을 텐데 좀 더 빨리 알자고 괴롭히는 건 못할 일이다 싶었다.
걸어가는 동안 참 많은 당원들이 그를 알아봤다. 그는 그럴 때마다 일일이 멈춰서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한껏 예의를 갖추며 웃었지만, 어두운 표정은 감출 수가 없었다.
어떤 당원은 지인이 김 대변인의 손을 붙잡고 반갑게 인사하자, 뭐 하러 인사를 하냐는 듯 "이명박이 됐다는데 뭐!"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나에게도 분명히 들렸던 그 말을 김 대변인이 못 들었을 리 없다. 선거란 이렇게 잔인하다. 그 소리를 듣고 돌아서는 김 대변인의 속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드디어 방송 데스크에 도착했다. 곧 이어 이명박 캠프의 진수희 대변인도 나타났다. 두 대변인이 악수를 나눈 뒤 나란히 앉았다. 표정이 아주 대조적이었다. 그것만 봐도 결과를 미리 알 수 있었다.
진 대변인이 먼저 출연한 뒤, 김 대변인 차례였다. 앞서 진 대변인은 유난히 환한 표정으로 생기발랄한 방송을 마친 터였다.
"아휴… 덥네요. 이것(양복 상의) 좀 벗고 해도 되지요?"
경상도 억양으로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현장감도 있고 좋지요. 그러세요."
내가 답했다.
눈부신 방송 조명 아래서 마이크를 쥔 김 대변인은 곧 밝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의 어두운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날 김 대변인을 위해서 준비된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사회자) 자, 김 대변인 오늘 개표 결과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대변인으로서 "승리하리라고 확신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다른 답이 없었다. 또 없어야 했다. 그는 각본대로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렇게 8분간의 인터뷰가 끝났다. 김 대변인에게 그 8분은 참 길었을 것이다. 그는 "감사하다"고 되레 인사를 해왔다. 떠나는 길에 그는 구성진 경상도 억양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아이고, MB 지지자들이 투표소에는 안나오고 전화만 열심히 받았나보다. 하하하."
현장투표에서 이기고 여론조사에서 져, 결과적으로 패배했다는 걸 암시했다.
대변인의 '마지막 브리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