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말> 91년 6월호. 그 잡지의 목차란 한켠 '만드는 사람들'에서 발견한 박형준·정태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 우리가 함께 했던 '흔적'이 있다. 월간 <말> 91년 6월호. 그 잡지의 목차란 한켠에는 '만드는 사람들'을 나열하고 있다. 기자 오연호, 편집위원 박형준·정태인이 함께 있다. 당시 젊은 진보 사회학자 박형준·정태인은 기자 오연호를 '지도'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해 그 달 <말>의 특집은 <벗이여, 새날이 온다>였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다. 그 동안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라는 '새 날'이 차례로 왔다. 그러나 2007년 여름, 정태인은 민주노동당에, 박형준은 한나라당(2004년 5월 17대의원 당선·부산 수영구)에 가 있다. 세상은 많이 좋아졌건만, '새 날'에 대한 기자 오연호의 갈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혹스런 장면은 어제 밤과 오늘(14일) 아침 사이에도 있었다.
철야농성 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힘든 투쟁인지를. 이명박 후보의 측근들이 어젯밤 그것을 했다. 폭우까지 맞아가면서. 검찰이 이명박 후보의 땅투기 의혹과 관련해 '도곡동 땅 가운데 이 후보의 맏형 이상은씨 몫은 차명'이라고 발표한 것에 항의해서다. 박형준 대변인도 거기 있었다. 항상 말쑥한 차림으로 TV에 나오는 신사 대변인박형준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대검찰청 앞에서, 그것도 새벽에 구호를 외치는 장면은 당혹스러웠으리라.
"잠 못자는 게 제일 힘들어... 고3 때보다 열심히 일해"
옛날의 진보 사회학자 박형준, 옛날의 동아대 교수(91년 부임) 박형준은 오늘 그렇게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다.
잠도 못 자고 오늘은 또 어떤 표현으로 '이명박의 결백'을 주장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그가 떠올랐다. 지난 10일 여의도의 이명박 캠프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내가 던진 첫 질문도 잠 이야기였다.
- 경선 막바지여서 더 바쁘겠다. 잠도 제대로 못잘텐데.
"제일 어려운 게 잠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보통 새벽 1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드는데, 아침 5시 정도 일어나 7시에 출근해야 한다. 잠은 뭐 대중이 없지. 대변인을 맡고 나니까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 없어."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고3 때보다 더 힘들어."
- 기자(80년대 초중반 한때 <중앙일보> 기자였다)·교수·국회의원을 다 해보았다. 정치인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점이 있다면?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본성이 '놀이하는 인간'이라고 한다면 놀이적인 성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정치다. 사람들이 정치에 빠져드는 이유 중에 하나가 권력을 놓고 벌이는 짜릿한 승부가 있기 때문이다."
때론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여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나도 가끔 최근에 두려울 때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회의스러울 때도 있죠, 사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자극을 즐긴다.
"이 정치영역은 끊임없이 자극이 주어지는 곳이고 그 자극에 반응해야 한다. 특히 선거 국면에서는 모든 자극에 시간단위로 대응을 해야 하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짜릿함을 더 느낀다."
오늘이 바로 그런 시간단위의 대응이 필요한 날이다. 경선국면의 최대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는 "이명박 후보 사퇴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엔 선량한 마키아벨리스트가 필요"
박형준 의원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문인이나 기자를 하고 싶었다". 고려대 사회학과 78학번인 그는 "79년 10ㆍ26사건과 80년 광주를 거치면서 사회과학 이론에 빠져들기 시작해 좌파이론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러던 그가 나중에 사회학과 교수가 된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그런데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부자연스럽게.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처음엔 없었는데…. YS정권때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하면서 청와대 프로젝트를 많이 했는데 그 때, 아 시민운동의 시각에서 보는 사회와 국정의 시각, 통치의 맥락에서 보는 사회라는 게 상당히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죠.
그 과정에서 제일 많이 배운 것은 YS개혁이 의도와 결과가 왜 달라지는가를 보면서였다. 다원화된 사회, 다원화된 이익갈등을 통제·조종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개혁을 한다 하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본 거다. 그래서 정말 국가경영능력이 중요한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정치 입문의 계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정치판에 뛰어든 정치인 박형준은 '선량한 마키아벨리스트'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논리이긴 하지만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하죠. 리더는 비전도 있어야 하지만 실제 운영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선량한 마키아벨리스트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선량한 마키아벨리스트. 그는 그 리더십을 현재 이명박을 통해 구현해보려는 것이다.
"국가경영이란 복합적이고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 그런 분야는 착한 사람이어서도 안되고,그렇다고 선의만 가진 사람이어도 안되고, 지사형도 바람직하지 않고, 이데올로기스트도 바람직한 게 아니다. 의지는 선량하게 갖되 풀어가는 방식은 상당히 실용주의로 풀어가는 선량한 마키아벨리스트가 필요하다."
"이명박에겐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