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이 9일 오전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정씨는 참여정부 정책이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라며 좌파는 커녕 '블레어 우파의 우파'로 불릴 수밖에 없다고 깎아내렸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유시민 의원 책을 읽었다. <대한민국 개조론>. 제목이 거창하다. 이미 베스트셀러란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매력있는 정치인 유시민 의원이 어떤 생각으로 대선에 나서려 하는가를 알고파서였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으로는 한 기사 때문이다. 얼마전 <오마이뉴스>에 유시민의 출판기념 강연회 풍경을 담은 기사가 실렸는데 제목이 "유시민이 나오면 대선판 커진다, 열광하는 현장, 비호감 벽 넘을까"였다. 아마도 특정 대선주자에 대한 열렬한 지지 현장을 이다지도 생생하게 전한 기사도 드물 것이다. 다른 후보들이 질투할 정도였다.
정원 500석이 차고 보조의자까지 나왔단다. 강연 후에는 사 든 책에 사인을 받기 원하는 지지자들이 줄을 이었고, 뒤풀이 호프집에까지 100여명이 함께 했다고 한다. 대단하다.
그래서 나도 읽어봤다. 역시. 유시민 의원은 글을 잘 쓴다. 서비스정신이 있다. 술술 잘 읽힌다. 시원하다.
정태인 "유시민의 책은 서평 쓸 가치조차 없다"
그의 책의 핵심은 대한민국 개조를 위해 밖으로는 선진통상국가를,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전제에 한미FTA가 있다. 현재의 고통일지라도 미래의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책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박현채 선생은 한국 현대사의 고전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민족경제론>을 집필한 진보적 경제학자입니다. 한미FTA 반대파의 아이콘이 된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도 물론 박현채 선생을 최고로 존경합니다....FTA를 반대하는 진보세력이 좋든 싫든 대한민국 앞에 놓인 길이 하나뿐임을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큰 틀에서는 이와같은 국가발전전략을 수용하고 협력하는 결단을 내려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작고하신지 벌써 12년이 되는 박현채 선생도, 만약 살아계시다면 그러하실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32-42쪽)”
그렇다면 한미FTA 반대의 아이콘 정태인(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이 대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그의 오랜 친구 정태인씨를 만났다. 둘은 모두 서울대 경제학과 78학번이다. 한미FTA가 추진되기 전까지 두 사람은 30년 동지였다. 정태인씨는 말했다. "유시민의 책은 서평 쓸 가치조차 없다. 나는 그와 결별했다".
그 정태인씨가 오늘(10일) 오전 민노당에 입당했다. 생에 처음으로 정당의 당원이 된 것이다. 이유는? '새 친구' 심상정 의원에 반했기 때문이란다. 그와는 한미FTA 반대 동지다. 민노당에서 대선을 맞아 심상정 의원과 함께 한미FTA 반대를 제대로 해보려 하기 때문이다. 공식직책은 한미FT저지 사업본부장.
그런데 공교롭게 심상정도 서울대 78학번이다.
정태인. 그에게 한미FTA는 무엇이길래 30년 친구 유시민을 버리고, 새 동지 심상정이 있는 민노당에 입당했을까? 처음 그를 만나고 싶었을 때는 유시민의 책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나를 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만나고 보니, 정태인의 선택이 더 흥미로웠다. 아니 유시민, 심상정, 정태인 3인의 서울대 78학번이 대선공간에서 벌이는 새로운 관계가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정태인과의 만남은 8일(수) 저녁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이뤄졌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며 2시간 반가량 대화를 나눴다.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20년 지기 선후배여서 '야자타임' 어투가 되기도 했다. 때론 두서가 없었다.
나는 자연스런 인터뷰를 위해 무엇을 위한 만남인지를 사전에 밝히지 않았다. "선배, 오랜만에 저녁이나 합시다"였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기사는 뭐가 포커스인데?"라고 질문을 몇차례 했다. 인물연구 정태인일 수도 있고, 인물연구 정태인, 노무현, 유시민, 심상정 일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의 대화는 그의 마지못한 허락으로 처음부터 녹음되었고,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김한내)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현장에서 노트북으로 기록했다.
어떻게 인터뷰를 정리할까? 횟감에 '정리'의 칼을 들이대는 순간 신선도가 확 떨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날 것' 그대로 전달한다. 재정리 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할 것이다. 말투도 고치지 않았고, 어떤 해설도 보태지 않았다. 자, 지금부터 독자여러분을 저녁밥상을 앞에 둔 선후배의 저녁 술자리로 초대한다.
"(유)시민이와 나는 항상 신분격차가 있었다"
- (유시민의 책 <대한민국 개조론>을 보이며) 이거 읽어봤어요?
"<한겨레21>에서 서평 쓰라 그랬어. (근데 안 썼어, 청탁한 기자에게) 서평 쓸 가치가 없다 그랬어. (유시민) 자기주장이거든. 대부분은 자기 보건복지부 장관할 때 하소연 뭐 이런 거."
- 이번에 민노당 입당 의미는?
"한미FTA."
- 민노당 밖에서 사회단체를 다 아울러 한미FTA 반대 해왔잖아.
"난 개인적으로 움직였어. (FTA반대하는 연대단체인) 범국본 정책자문단장 정도 내가 맡았는데…. 한미FTA (반대운동의) 발은 민노당 밖에 없어요. 실제로 전국적으로 움직이려면 전국조직 있어야 하잖아. 민노당이 (이번) 대선에서 다섯개 위원회로 재편 했어요, 전체를. 비정규직, 한미FTA 등 주제별로. 그중 하나 (한미FTA반대 사업)본부장 하는 거지."
- 그전에 심상정 의원 지지한 거는 타이틀이 뭐?
"자문위원이지. 한미FTA 때문에 만난거지 뭐."
- 무슨 뭐 대학친구라며.
"대학교 때 같은 학번이지, 근데 뭐 알았나."
- 심상정 의원은 그러면 과가 다른가?
"(서울대) 사대 역사교육과. 시민이는 (나랑 함께 서울대) 경제학과."
- 유시민 의원과는 친했나.
"같은 과니까. 근데 친하진…. 상정이나 시민이는 리더고, 나는 돌 던지는 사람인데. 신분의 격차가 커서, 하하하. (걔들은) 당시 학생운동 지하에 있으니 지들끼리 돌아다니고 나는 매일 열두시쯤 오더(order) 받아. 걔네는 전술 짜고, 나는 돌 던지는 애고.
시민이랑은 항상 그 정도 신분의 격차가 있었지. 가령 시민이는 MBC하면 난 CBS(라디오), 시민이 <동아> (칼럼니스트) 난 한겨레, 시민이 우리당 난 민노당.
- (유시민이) MBC <백분토론> 진행할 때 CBS <시사자키> 진행했잖아요.
"그랬지. 그 정도의 신분격차가 계속 유지된 거지. 그동안 좀 가까워졌다가 다시 신분의 격차가 벌어진 거지."
"유시민과 함께 노무현 후보 TV토론 답변 작성"
- 근데 노(무현) 캠프엔 어떻게 해서 연결된 거예요, 어떤 인연으로?
"2001년 11월에, 지금 (청와대)비서관하는 한 친구가 대통령 누구 됐으면 좋겠냐 해서, 노무현 그랬더니, 자기 노무현 캠프서 일하는데 경제학자가 없다고 해서 그때부터…. 가서 한 한 달쯤 지나서 유시민(이 노 캠프에) 왔고."
- 타이틀이 뭐였어?
"아무 타이틀 없었지. 그러니깐 첨에 가서 한 일이 경제학자들 불러다 대통령(후보 노무현) 놓고 토론시키고, 그 담에 시민이랑 내가 경선준비 했지. 그땐 지금처럼 정책 정교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TV토론에 나올 질문에 후보 답변 만들어주는 거지. 2분짜리 답변으로. 5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엄청 발전한거지. 지금은 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거든. 그때는 답만 있었지. 이명박은 딱 5년 전 수준이야, 답만 만드는."
- 그럼 그렇게 하다가 청와대로 들어간 거야?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응. 나랑 유시민(을 포함해),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날 젊은 학자 6명 불렀어요. 당신들이 인수위 구성해야 한다. 당선 다음날이니 얼마나 기분 좋아. 여섯명 불러 처음 한 말이 '혹 뗐다'였어. 정몽준 지분 줄 필요 없으니."
- 음… 근데 이제 결국 (정태인 선배는) 한미FTA 반대에 유시민 의원(이 그의 책에서) 표현한 것처럼 하나의 아이콘이 돼버렸는데…. 제가 오늘 여쭤보고 싶은 게 도대체 왜 우리가 이렇게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옛날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지경이 됐을까, 그게 핵심이에요. 소통의 부재 뭐 그런 게 있는 거 같아, 아니면 기본적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는 가치관, 이데올로기 차이 같아요?
"대통령이 바뀐 거지."
- 근데 왜 대통령이 바뀐 거야?
"그러니깐 개혁론에서 보자면, 첨에 개혁론은 사회대통합, 사회협약 이쪽이었는데 이런 거 1~2년 지나며 포기한 거야. 첨에 물류연대 등 노조랑 몇 번 부딪치고 나서 이건 안된다. 그담이 대연정, 옆으로의 연합. 그것도 안 되니 외부쇼크에 의해 내부개입 하겠다. 한미FTA는 통상문제 뿐 아니라 내부 민영화와 연결된 것이지."
- 선배는 언제 (한미FTA 추진 사실을) 첨 들었어요?
"(2005년) 11월 첨 들었어. 난 이미 행담도(사건) 땜에 짤린 상탠데. 문성근한테 연락이 왔어. 한미FTA 추진된다, 청와대 내 반대할 사람 하나도 없다, (반대할) 경제학자 없으니 대통령 한번 만나줬음 좋겠다."
- (노무현 대통령은) 근데 (한미FTA에 대해 줄곧) 굉장히 확신에 차 있어요.
"점점점. 일단 저질러진 물이니 스스로를 세뇌하고, 계속 (장점이 강조된) 그런 보고를 받고. (내가 문성근 요청 받고 그후 몇몇 한미FTA 반대자들과 대통령 만났을 때) 마지막으로 요청한 게 대통령이 드라이브 걸면 온통 그쪽으로 장밋빛 보고서 올라온다, 근데 대통령이 신중하면 반대쪽도 올라올 것이다(라고 했어요)."
- 이 책 읽어보면 유시민 의원도 (한미FTA 추진에 대해) 대통령 못지 않은 확신을 갖고 있는데.
"이미 했으니깐, 저질렀으니."
"시민이도 처음에는 한미FTA반대 했는데..."
- 대통령 자문하던 시절, 2001년 11월, 정태인과 유시민의 경제노선이랄까, 그런 게 비슷했을 것 같은데, 그땐.
"시민이는 독일형. 독일에서 공부했으니깐. 나는 스웨덴형. 둘 다 유럽형인데 대륙형, 북부형 차이 있지만 큰 차이 없었지. 근데 유시민은 멕시코형으로 바꾸자는 거지. 미국과 FTA 맺으면 멕시코처럼 되는 거지."
- 스웨덴형의 핵심은?
"사회적 대타협, 연대정책이지. 스웨덴형이 복지가 훨씬 더 보편성이 강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강조되고, 독일형은 복지노선이 스웨덴보다 훨씬 덜하지. 노조가 스웨덴보다 덜 협조적이고."
- 지금 두 사람 차이는 한미FTA만이 아니잖아.
"시민이는 자유주의 성향이 원래 강해. 근데 이제는 신자유주의적이지. 대통령이 (2002년) 후보일 때 한번 그러더라고. 유시민은 자유주의자고 정태인은 좌파 맞죠, 이러더라고. 이 정도 차이가 있었는데, 유시민은 이제 신자유주의라 봐야지. (유시민이 책에서 주창한) 사회투자국가가 결국 제3의 길인 거고 영국노동당 캐치프레이즈인데 대처가 완전히 신자유주의 국가로 만든 다음에 과거 복지 정책을 타협적으로 만들어 놓은 거다. 지금은 두 개 다 하자는 거지. 대처와 블레어 동시에 하겠다는 거지."
- 그 책보니깐, 전략과 그 방향은 좌파식으로, 그러나 실행은 우파식으로 하겠다고 하던데.
"다 아니지, 다 우파야."
- 한미FTA에 대해 유시민 의원과 상의한적 있나?
"시민이도 첨에는 반대했지. (내가 반대문건 만들어 노대통령에게 전할 때) 유시민과 같이 문건 만들어 검토하고 함께 들어간 거니깐. 대통령하는 일에 시민이는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이라크 파병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