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곶이다리이정근
사냥을 끝낸 임금일행이 녹양평에서 일박 후, 환궁 길에 살곶이(箭串) 냇가에서 술자리가 베풀어졌다. 세자 양녕대군을 비롯한 왕자와 종친 그리고 대소신료가 연회에 참석했다. 산해진미가 마련되고 풍악이 연주되는 풍성한 자리였다.
"이 과일이 무엇이냐?"
"감귤(柑橘)이옵니다."
지신사 김여지가 대답했다.
"보기도 좋고 맛이 좋구나. 어디에서 나는 토산품이냐?"
"구주의 토산품이오나 제주에 이식하여 생육한 과실입니다."
"백성들을 풍족하게 먹이려면 육지에 심는 것이 좋겠구나."
이후, 상림원별감(上林園別監) 김용을 제주에 보내 감귤나무 수백 주(株)를 순천, 고흥 등지의 바닷가에 위치한 고을에 옮겨 심게 하였다. 감귤 나무의 최초 육지 상륙이다. 그뿐만 아니라 종묘에 천신하는 시물(時物)에 감귤을 포함하도록 명했다. 감귤이 임금님의 제사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신하다
여흥이 무르익고 임금이 술에 취하자 칠성군(漆城君) 윤저에게 춤을 추게 했다. 갑작스러운 하명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윤저가 어쭙잖은 춤사위를 선보이고 자리에 앉자 술잔을 내려주며 물었다
"경은 마땅히 나의 과실을 바른 대로 말하라."
"전하가 신민(臣民)의 위에 계시어 모든 하시는 일이 반드시 바른 대로 하시는데 주상의 하는 일이 만일 그르다면 신이 어찌 감히 따르겠습니까? 신은 생각하건대 빈잉(嬪媵)이 이미 족하니 반드시 많이 둘 것이 아닙니다.”
윤저가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곡을 찌르는 바른 말이다. 후궁들이 많은데 화산군(花山君) 장사길의 기생첩 복덕(福德)의 딸 장씨를 후궁으로 들여와 순혜옹주(順惠翁主)로 삼은 것을 꼬집는 말이다. 모든 신하들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수군대기만 했지 누구 하나 감히 입을 열지 못한 사안이었다.
"무릇 인신(人臣)의 도리는 먼저 인군(人君)의 사심(邪心)을 공격하는 것이 가하다. 윤저가 비록 배우지 않았으나 학문의 도(道)가 어찌 여기에 더할 것이 있겠느냐?" - <태종실록>
도리에 어긋난 임금의 잘못을 지적해주어 고맙다는 뜻이다. 지신사 김여지를 돌아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태종이 세자 양녕을 돌아보며 말했다.
"칠성군은 태조를 따르면서부터 오늘에 이르렀고 또 내 잠저(潛邸) 때에 서로 보호한 사람이다. 질박 정직하고 의를 좋아하는 것이 누가 이러한 사람이 있겠느냐? 너는 나이 어리니 마땅히 독실하게 믿고 공경하여 무겁게 여겨야 한다."
"신이 이미 늙었으니 다만 주상의 은덕을 입을 뿐입니다. 어떻게 세자 때까지 보겠습니까?"
윤저가 감격하여 울면서 말했다. 이에 감동한 태종이 윤저에게 타던 안마(鞍馬)를 주었다. 임금이 타던 말을 내려준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현대적 의미로 풀이하면 대통령이 타던 승용차를 아랫사람에게 내려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윤저가 사양하니 태종이 말했다.
"경이 사양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가 주는 것이니 오늘 받았다가 명일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가하다."
윤저는 황송한 심정으로 말(馬)을 받았다.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말이 어떤 말인가. 장식이 화려한 어마(御馬)는 뭇 백성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말이지 않은가. 태종이 타던 말을 하사받은 윤저가 그 말을 타고 다녔는지 가보(家寶)로 모셔 두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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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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