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3호선 시즈먼역의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설작업.김종성
서로 믿지 못하는 중국인들
외국인의 판단이라서 일정한 한계가 있겠지만,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인들의 정신적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중국인들 간의 상호신뢰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적인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간에 상호불신이 크게 만연해 있다면, 그런 큰일을 함께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고 또 설령 성공한다 하여도 그것이 국민통합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대도시에서 상호신뢰가 부족하다는 점은 치안문제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청년이나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왕바(피시방)에서도 상호신뢰 부족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중국의 왕바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베이징 시내 곳곳의 왕바에서는 컴퓨터 본체에 철로 만든 커버를 씌운 뒤에 자물쇠로 채워놓은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원 버튼을 누를 손가락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뚫려 있을 뿐이다. 마치 컴퓨터에 중국식당 '철가방'을 씌운 다음에 전원 버튼을 누를 수 있을 만큼만 구멍을 뚫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USB 디스크 같은 것은 원칙상 컴퓨터에 꽂을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왕바에서는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이메일을 확인하는 정도의 작업밖에 할 수 없다. 한국 영사관 직원과 한국인 유학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베이징의 왕바는 다들 그렇다고 한다.
왕바 몇 곳을 돌아다녀 보니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느 대학 앞에 있는 왕바에 가서 "USB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직원이 열쇠를 갖고 와서 커버의 잠금장치를 푼 뒤에 USB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 직원이 30분 내내 필자의 컴퓨터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USB에 저장된 문서를 꺼내서 작업하는 동안에, 그 직원은 주변을 계속 서성거리면서 '해방된 컴퓨터' 쪽에 관심을 놓지 않고 있었다.
직원이 걱정하는 것은 혹시라도 컴퓨터 본체에 있는 부품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컴퓨터 부품을 절도범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베이징 시내의 왕바들이 대대적으로 잠금장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절도범 하나를 경계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수많은 손님들에게 불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왕바들이 아직은 기업정신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중국사회의 상호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업체가 재산 보호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이처럼 삭막하게 컴퓨터를 보호하는 걸 보면서 베이징에 상호불신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화합해서 올림픽을 준비해도 부족할 판에 이처럼 서로를 불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