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을 축하하기 위해 전남 광양서국민학교 교정에 모인 군민들한길사
해방전후사 및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에 대해 젊은이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여주면서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연구하는 '운동'은 힘을 얻었지만, 정치권력으로부터 사갈시되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2>가 어느 날 '판금' 목록에 들어 있었고, 최장집 교수가 편집한 <한국현대사 I>(열음사)과 송남헌 선생의 저서인 <해방 3년사>(까치) 등이 같은 조치를 당했다.
더 나아가, 집권당의 고위간부가 이런 '운동적 연구·출판·독서현상'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현실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책'에 그 책임이 있다는 식이었다. 1985년 11월 하순, 정부와 민정당은 날로 격화되고 있는 학원사태의 발생이 일반적으로 8·15 이후의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고, 문교부·문공부 등 관계부처와 국사편찬위원회·정신문화연구원 등 관계기관들과의 협의 아래 현대사를 '전면 재기술'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11월 26일 정부와 민정당은 민정당사에서 열린 당정정책조정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는데, 이 회의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은 "일부 대학생들이 8·15 이후의 현대사를 독재·부정선거·장기집권 등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고 기성세대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역사가 야사·비사·소문에 의해 오염되고 흥미 위주로 왜곡되는 것도 사회혼란의 근본요인이 되고 있으니 현대사를 시대별·정권별로 재정립하는 일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노 대표위원의 주장에 따라 정부측은 8·15 이후의 현대사를 획기적으로 재조명하여 대학생을 포함한 청소년들의 역사의식 강화에 초점을 두어 다시 기술한다는 것이었다. 자유당 시대와 1960년대 초반까지 군사정권에 대해 강한 비판적 태도를 보이던 <경향신문>은 발행인이 정부에서 일하던 사람으로 바뀌고 하면서 정부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보도태도를 보였는데, 1985년 11월 28일자 사설 '재정립해야 할 역사관-자기비하적 역사기술 청산하자'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나왔다.
"사실상 지난 몇 해 동안 이른바 민중사관이 확산되면서 제1공화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인하고 마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인 것처럼 기술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때 단정으로 독립정부를 세우지 않았더라면 통일된 독립정부가 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식의 논리야말로 지나치게 감상주의적인 재단논리(裁斷論理)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가 발족되기 이전에 이미 북한 전 지역엔 각급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사실상의 행정기능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논의가 얼마나 허구에 찬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사설은 이어 "역사의 기술이 지나치게 국수적인 경향으로 흘러 종족우월을 강조하는 것이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자기 역사를 비하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있는데, 특히 '춘추사관' '식민사관' '민중사관'을 같은 선상에 놓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었다.
"유교적 대의명분만을 지나치게 앞세웠던 조선왕조시대의 춘추사관, 한민족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했던 식민지사관, 그리고 국가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는 오늘날의 민중사관 등에 의해 그 동안의 우리 역사는 잘못 기술된 부분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따라서 특정사관을 세우기 앞서 민족이 걸어온 길을 하나의 경험사로 받아들이는 객관적 기술이 앞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특정사관에 지배되어 민족사의 참모습을 왜곡하고 국가의 정통성을 위태롭게 하는 자기비하적 역사기술이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 여당의 우리 현대사 전면 재기술 방침이 지금까지의 이지러지고 훼손된 광복 40년사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크나큰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궁형 겪으면서 쓴 <사기>는 왜 오늘에도 읽히나"
한편 <동아일보>는 '역사를 쓰는 자세'라는 같은 날짜의 사설에서, 정부 여당이 직접 현대사를 쓰겠다고 나선 사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우리는 집권당이나 그 세력이 자기들의 안목으로 본 사실을 되도록 긍정적인 시각에서 풀어 가겠다는 것을 굳이 마다하지는 않는다. 사실의 축적으로서의 역사는 언제나 표리를 이루는 법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적어도 '역사의 이름'으로 서술하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고도 염려스러운 점이 예견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당사(黨史)나 정권사의 수준에 머무른다면 몰라도, 그것을 국민들에게 이것이 바른 역사라고 내세우는 건 매우 온당하지가 않다. 역으로 야당이 그런 식의 관점에서 역사를 엮어 간대도 마찬가지다.
우선 어느 개인의 논문형식이라면 몰라도, 역사라는 말을 덮어씌우기에는 그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무리가 아닐 수 없으며, 역사기술의 필수조건인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판단을 결여하기 쉽기 때문이다. 더구나 역사가 야사나 비화나 소문에 오염되는 걸 바로잡기 위해서라면, 우리 정치사는 왜 '백주의 당당한 논리'가 은폐되고, 그런 골목에서만 맴돌았는가를 반성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궁형(宮刑)을 겪으면서도 바른 역사를 쓰고자 했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가 왜 오늘날도 평가를 받으며, 앙드레 모로와의 <영국사>가 어찌하여 오늘날까지도 명저로 높이 평가받는가를 지금 생각할 때다."
<한국일보>는 1985년 11월 29일자 사설 '우리 현대사를 보는 눈'에서 '제3의 시각'으로 "부정을 위한 편향이나 긍정을 위한 편향이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설은 그러나 정부 여당의 '현대사 기술'이 '관찬(官撰)현대사'나 '정권안보' '당정차원'이 안 되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우선 해방전후사에 관련된 정보·자료의 대담한 공개부터 선행시켜 민간의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민적 차원의 해방전후사 조명 및 편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정부 여당은 그 후 '현대사의 재기술'을 위해 국사편찬위원회의 예산을 증액하는 한편 그것의 구체적인 작업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는 간행물 <말>(1986년 3월)의 '논설'을 통해 정부 여당의 현대사 재기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첫째, 해방 40년에 대한 관심이 사학계가 아닌 집권당이나 정부당국에서 먼저 나타났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역사연구는 일부 독재국가를 제외한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한결같이 민간 사학자들의 자유로운 연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로 인식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수백 년간 역사서술은 왕도 관여하지 못하는 엄정한 기록으로 존중되어왔다. 그런데 8·15 이후 우리 사학계는 일제 식민사관에 관여한 일부 사학자들에 의해 지도받아왔고 그간 국사를 전공한 학자도 수백 명이 넘을 것으로 짐작되나 이들은 신생국에 있어 가장 주요한 해방 40년사의 연구를 고의로 외면하고 현대사는 역사학의 대상이 아닌 듯 강변하고 심지어 학사논문이나 석사논문이 현대사를 테마로 잡는 것조차 심히 못마땅하게 여겨온 것은 오늘날 세상이 다 아는 바와 같다.
정부수립 이후 4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또 그간 국사편찬위원회가 설립되고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으면서도 읽을 만한 현대사 한 권 내놓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늘날 젊은 세대간에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아지고 있으나 사학계가 이 같은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학과나 사회학과 등에서 주목할 만한 현대사 연구업적이 나오고 있는 데 대해 사학계는 우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고 책임을 통감할 줄 알아야 하겠다.
둘째, 집권당이 지난번 개최한 '현대사 재조명' 세미나에서 당국의 견해를 대변하는 대부분의 연사들이 지금까지 나온 현대사 특히 젊은이들의 해방 40년사관이 지극히 부정적이라고 한결같이 비난한 바 있다. 그리고 그간 발간된 몇몇 권의 현대사 관계 출판물이 판금조치 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는 집권당이 말하는 이른바 '부정적인 시각'이 무엇인지 구체적 설명을 못 들어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또 판금조치된 몇몇 권의 현대사 서적이 과연 말 그대로 부정일변도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에 현대사 연구는 세 가지 시각에서 출발되어야 하리라 본다."
10년에 걸쳐 59명이 참여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