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Bulls)'는 시카고만의 상징이 아니다. 황소다리 주변 마을엔 황소로 집 주위를 장식한 가구들이 종종 보인다.문종성
뉴욕을 출발한 이래로 지금까지 만사형통, 모든 일이 순리대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적어도 17일 저녁 7시까지는. 어쨌든 여행을 하다보면 부침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난 그 날만 유독 그런 줄 알았다. 오후 내내 하늘은 습자지에 탁한 먹물을 빨아들인 듯 어두웠지만 용케도 비를 꾹 참아내고 있었다. 이윽고 저녁이 되고 해거름이 시작되면서 숙소 찾기가 시작되었다. 뉴욕 주에서 코네티컷 주로 바로 넘어선 경계에 있는 황소다리(Bulls bridge)에서 캠핑을 시도하려 했다. 마침 무료라서 '옳지' 싶었다. 하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했던가.
"이 봐, 젊은이. 자네 눈엔 저 시커먼 하늘이 보이지 않는가? 오늘 밤에 폭우가 쏟아진다구! 여기서 자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게."
"유감스럽지만 내 생각은 오늘 밤은 안 될 것 같은데.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거든. 괜찮다면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모텔이 있는데 그리로 가든지."
사람들은 한결같이 황소다리에서 텐트를 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캠핑장 바로 옆에는 시내가 있어서 비가 내리면 금방 넘쳐흐를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은 8시를 넘어가고 이제 태양은 그 힘을 잃고 어둠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몇몇 사람들에게 캠핑 자리에 대한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결국 자전거를 타고 모텔이 위치해 있다는 남쪽방향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허나 이내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바람을 타고 내 얼굴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 속도로는 자정까지도 도저히 모텔에 도달하지 못할 듯싶다. 더구나 남쪽으로 가는 도로는 산으로 향해 있어 잘못하면 산에서 하룻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젠장'. 절박한 상황은 이제 악몽같은 현실로 다가왔다. 밤9시. 난 가로등 하나 없는 언덕 도로 위에 어중간하게 있었고, 이미 집과 사람이 보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간간히 헤드라이트를 켜고 질주하는 차량들만 지나갈 뿐이다.
주위는 온통 짙은 녹색으로 마치 귀곡성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음산했다. 냉정한 결단이 필요했다. 어차피 황소다리에서 하트포드로 넘어가려면 북동쪽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룻밤 보내기 위해 먼 남쪽행을 자청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생각을 굳히고 다시 핸들을 돌려 원래 있었던 지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