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5.29~6.1)이 열리고 있는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 3층 다이아몬드홀에 프레스센터에 중앙일보 기자의 노트북이 놓여져 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이거 뭐하는 짓이야?"
"<중앙일보> 기사 때문에 기자단 내부에서 얼마나 논란이 많았는데 신속하게 결정했다니…."
31일 오전 9시께 남북장관급 회담 프레스센터가 있는 그랜드힐튼 호텔 3층 다이아몬드 홀에서는 난데없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통일부 기자단 간사인 한겨레 이아무개 기자와 KBS 김아무개 기자가 <중앙일보> 이아무개 기자에게 거칠게 항의를 했다.
<중앙일보> 이 기자는 지난 30일 '정부, 장관급 회담 열리자 대규모 기자실 개설, 필요할 땐 써먹고 불리할 땐 없앤다?'라는 기사를 쓴 사람이다.
깜짝 놀란 일부 기자들이 "선배 참으세요"하면서 두 기자의 몸을 붙들고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주먹다짐도 벌어질만한 상황이었다.
사건의 원인은 31일 <중앙일보> 5면에 실린 기사였다.
<중앙일보>는 전날 통일부의 자사 기자에 대한 프레스센터 출입 제한 조치에 대해 통일부 기자들이 성명을 낸 것에 관련한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기사에 첨부된 '30일, 통일부 프레스센터 어떤 일 있었나'라는 표에서 "통일부 기자단은 신문·방송·통신·인터넷 등 36개사 60명, 간사는 <한겨레신문> 이○○ 기자, 부간사는 이○○(연합뉴스), 김○○(KBS) 기자"라는 내용을 넣었다.
간사단의 이름을 박아 넣은 것이다.
또 <중앙일보>는 '이재정 장관의 횡포…'라는 기사에서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자칫 남북 회담 내용은 묻혀버리고 이 장관과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만 부각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실제로 이 사태는 '순식간'에 통일부 출입기자단의 항의 성명으로 발전했고…"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의 기사대로라면 통일부 조치에 대해 전 출입기자들이 격노해 일사불란하게 의견을 모았으며, 이를 <한겨레>와 KBS, <연합뉴스> 기자로 이뤄진 간사단이 주도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진보 성향이 많은 인터넷 언론사 등을 포함해 전 언론사들이 모두 통일부 기자단의 성명에 적극 가세한 것처럼 보인다.
3차례나 회의...격론
그러나 실상은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우선 전날 통일부 기자단의 성명이 나오기까지 기자들은 남북장관급회담 이라는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무려 3번이나 회의를 열어야 했다.
오전 10시30분에 열린 회의는 1시간 30분이 걸렸고, 오후 3시 회의는 1시간, 저녁 8시 회의는 40분이 걸렸다.
'순식간에' 성명이 나왔다면 3번씩이나 회의를 열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진통을 겪었던 것은 기자단 내부에 통일부의 <중앙일보> 프레스센터 출입 제한 조치에 대해 극명한 시각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앞두고 나온 언론 자유 침해라는 의견과 통일부와 <중앙일보> 개별사간의 다툼에 불과하다는 견해로 갈렸다. 간사단은 후자의 입장이었다.
전자의 견해가 후자의 견해보다 2배가 많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단순히 다수결로 결정하기 힘든 문제였다.
또 첫 번째 입장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중앙일보>의 기사에 대해 동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였다. 한 기자가 "솔직히 말해 <중앙일보> 기사도 마음에 들지 않고 통일부 조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오후 3시 회의에서 통일부 기자단 공동 이름으로 성명을 낼 것인지, 아니면 원하는 언론사만 개별적으로 참여할지를 놓고도 격론이 벌어졌다. 기자는 "이런 성명은 본사의 지침을 받아야지 기자 개인이 결정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 "그런 생각이라면 기자단을 탈퇴하라"는 반박을 받았다.
결국 결론이 나지 않자 기자단 공동의 이름으로 성명을 낼 것인가를 두고 무기명 비밀 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통일부 기자단에 가입된 총 37개사 가운데 25개사가 참여해 찬성 16표, 반대 8표, 기권 1표로 결론이 났다.
오후 3시회의 과정에서 한 기자가 "기자단 내부에 통일부에 항의하자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고 투표를 통해 빨리 결정할 수 있는데, 간사단이 되레 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부 기자들이 이에 동조했고 간사단의 이 기자와 김 기자는 "이번 사건을 신중하게 보자는 뜻이지 결코 시간을 지연할 생각은 없다"며 "간사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그만 둘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