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시 하나에 삶 하나] 병상에 계신 어머니를 보며 생각합니다

등록 2007.05.19 15:24수정 2007.05.1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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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침상에 누워 어머니가 가늘게 코를 골며 주무시고 있습니다. 벌써 병원 생활도 13일째입니다. 처음 일주일 동안 어머니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주사만 맞았습니다. 하나의 링거 줄엔 여러 개의 약들이 매달려 있어 맞는 사람이나 바라보는 사람이나 마음을 착잡하게 합니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6일)부터 조금씩 미음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의 음식만 들어가면 구역질하던 어머니가 하루는 저에게 미음을 끓여 그 물만 먹었으면 하는 말을 했습니다. 줄곧 아무 것도 먹기 싫다고만 했는데 뭐라도 먹고 싶다는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내는 장모님 생신이라 친정집에 가고 없는 터라 미음은 내가 끓여야 했습니다. 그동안 아내는 시어머니 간호 하느라 몸이 지칠 대로 지쳐 친정집에 가서 푹 쉬고 오라고 했습니다. 친정에 가서도 아내는 어머니 걱정 때문에 틈만 나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쉬라고 해도 그게 잘 안 되나 봅니다.

미음은 해준 것만 먹어 봤지 한 번도 끓여본 적 없는 난 누룽지로 대신했습니다. 누룽지를 약한 불에 오랫동안 끓여 불린 다음 으깨어 그 물만 보온병에 담아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먹을 만하다며 잘 드십니다. 컵에 물을 따라 입에 대줘도 잘 마시지 않았는데 괜찮다며 드십니다.

"속에서 거부 안 해?"
"먹을 만하다. 근디 이거 어떻게 해 왔냐. 에미도 없는데."
"그냥 물 부어 팍팍 끓였지 뭐. 엄마 먹는 거 보니 좋네."
"에구, 내가 니들 고생만 시키는구나. 니들 고생 안 시키려고 했는데…."
"또 그 소리. 그러니까 고생 안 시키려면 잘 드셔야지."
"누가 안 먹고 싶어서 안 먹는다냐. 속에서 안 받으니까 그러지."


미음을 먹고 나서 '참외도 좀 드실래요'했더니 한 조각만 달라고 합니다. 한 입 베어 물더니 '이건 받는다 야'하며 웃으십니다. 병원에 입원한 뒤 처음으로 어머니께서 웃었습니다.


"웃으니까 보기 좋네요. 할머니."

앞 침상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 환자분이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보고 한 마디 합니다. 그 아주머닌 혈압 때문에 입원했는데 성격이 좋아 가끔 우스갯소리로 병실을 환하게 합니다.


병실에 있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병실은 각기 다른 삶의 이력들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환자들은 환자들끼리 누워서 때론 앉아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거나 하면서 서로 위안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기도 하고, 보호자들은 보호자들끼리 이런 저런 이야길 주고받습니다.

지난 일요일부터 음식을 드시기 시작한 어머닌 이제 잘 드십니다. 아직 밥을 먹는 상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동안 아내는 매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죽을 쑤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밤이 되면 아내 대신 아들이 병원으로 향합니다. 보온병엔 아내가 쑤어 준 죽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밤마다 병실을 지키며 당신의 삶을 떠올려봤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의 시를 떠올렸습니다.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입니다. 그 시엔 내 어머니, 아니 우리들의 어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 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 중 자다깨어 방 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심순덕


시 속의 이야기처럼 내 어머니도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다 집에 잠시 들어와 부뚜막에 앉아 찬밥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들일 하러 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밤늦게 집에 들어오면 자식들 배고플까 봐 피곤에 지친 당신 몸 뉘이기는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부엌에 들어가 저녁밥을 지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던 그땐 어머니란 존재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다 그 자식이 나이 들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보니 그때의 부모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자식이 늙은 부모한테 더 잘하고 그러는 건 아님을 봅니다. 어느 순간 자식은 자신을 그렇게 고생하며 키워주신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제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훨씬 큼을 봅니다. 마음은 알면서도 손길은 제 자식에게 감을 발견하면서 '그래 너도 어쩔 수 없구나'하는 생각에 헛웃음을 흘리곤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어머니가 누워 있는 병실 침상에 앉아 간호하며 함께 할 때가 행복한 건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 어쩌다 부모님이 사시는 시골에 내려가면 잠시 얼굴만 보고 몇 마디 이야기만 나누다 오곤 했는데 병원에 누워 계실 땐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겠지요. 가끔 얼굴만 보더라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시는 모습이 훨씬 좋으니까요. 해서 병실을 나설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루를 살아도 일 년을 살아도 건강하게 살아가게 해 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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