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선죽교의 봄. 북한 화가 홍석남의 작품이다.홍석남
방원이 동대문 쪽으로 진출하리라는 것을 예견한 방간이 마정동(馬井洞)에 보졸(步卒) 40여명을 매복 시키고 전목동(典牧洞) 동구에 기병 20여기를 대기시켜놓아 방원의 피해가 컸다. 매복 작전에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이다. 하지만 맨 앞에 서서 군사를 지휘하는 이숙번을 꺼꾸러뜨리기 위하여 방간의 군사들이 집중 공략했으나 화살은 비켜나갔다.
정종임금은 대장군(大將軍) 이지실을 현장에 보내 방간에게 전투를 중지하게 하려 하였으나 화살이 비 오듯이 쏟아져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방간이 비록 성미가 광패(狂悖)하나 그 본심이 아니다. 반드시 간인(奸人)에게 매수된 것이다. 골육(骨肉)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정종 임금은 탄식했다. 곁에 있던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하륜이 아뢰었다.
"교서(敎書)를 내려 달래면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하륜에게 명하여 교서를 짓게 했다.
"부덕한 몸으로 종실과 대소 신하의 마음을 다하여 태평에 이를까 하였더니 뜻밖에 동복아우 회안공 방간이 무뢰한 무리의 말에 현혹되어 골육을 해치려하니 내가 심히 애통하게 여긴다. 방간이 군사를 해산하고 사저로 돌아가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교지를 내린 뒤에 곧 해산하지 않는 자들은 용서하지 아니하고 군법으로 처단하겠다."
좌승지(左承旨) 정구로 하여금 교서를 방간에게 전하도록 했다. 이무렵 상당후(上黨侯) 이저가 경상도 시위군을 거느리고 검동원(黔洞源)을 거쳐 묘련점(妙蓮岾)에 도착했다. 검동(黔洞)앞 노상에서 이저를 맞이한 방원이 시위군들에게 명했다
"만일 우리 형을 보거든 화살을 쏘지 말라. 어기는 자는 베겠다."
명을 받은 이저의 군사들이 이화의 군사들과 합동으로 남산에 오르며 (角)을 불자 방간의 군사들이 혼비백산 퇴각하기 시작했다. 허둥지둥 도망가는 방간의 군사 중에서 숙번이 한 사람을 지목하며 궁수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자 명중했다. 그는 방간의 조아(爪牙) 입속의 혀 이성기였다.
이 때였다. 목인해(睦仁海)가 탔던 말이 잔등에 올라탄 주인이 화살을 맞고 나딩구러지자 겁을 먹고 도망하여 자신의 마구간으로 돌아왔다. 이 말은 방원이 내준 말이었다. 깜짝 놀란 민부인은 싸움에 패한 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싸움터에 나아가 방원과 함께 죽으리라 다짐했다.
민부인이 대문을 박차고 나서자 이에 놀란 시녀 김씨(金氏)와 종 다섯 사람이 만류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이 때 종 한기(韓奇)가 대문을 들어서며 승전보를 알리자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들어갔다. 이 때 만류했던 시녀 김씨가 훗날 태종의 제2부인이 되어 경녕군을 낳은 효빈 김씨이며 민부인과 애증관계를 엮어간 여인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