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판 위의 모들김현
모내기가 끝나고 김을 맬 무렵이면 아버지는 삽 한 자루를 겨드랑이에 끼고 시너브라 불리는 논으로 향했습니다. 걸어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논입니다. 논 한 평 마련하기 위해 몇 년을 고생했던 아버진 그 논을 보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요 논배미가 어떻게 해서 생긴 줄 아느냐. 이거 너그 애미가 못 먹고 안 쓰고 배 골아쥐고 모아 산 논배미다. 애비는 암 것도 한 것이 없다. 다 너그 애미가 한 거지."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표정은 노을처럼 붉게 탔습니다. 한땐 많은 땅을 소유했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아버지께서 노름으로 다 날리고 어머니가 시집 올 때쯤은 땅 한 뙈기 없었다 합니다. 그런 집에 얼굴도 모르고 시집온 어머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요.
가뭄이 들면 물꼬를 터서 논에 물을 대었고, 장마가 들어 물이 넘치면 고랑에 물을 빼기 위해 물꼬를 손보곤 했는데 가끔 난 아버지를 따라 논에 가곤 했습니다. 가끔 물꼬를 치다 큼지막한 미꾸라지가 나오면 아버진 그놈을 잡아 풀 꼬챙이에 아가미를 꿰어 내 손에 쥐어주곤 했습니다. 그 미꾸라지를 내게 구워줄 요량이었지요.
평생을 흙을 파고 물꼬를 트며 농사를 짓던 젊은 날의 아버진 이제 백발이 성성한 팔십 줄의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잘한 논일과 밭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막내아들은 아버지의 농사를 물려받아 오늘도 트랙터를 몰고 논으로 갑니다.
늙은 아버지와 아직 젊은 아들을 바라보면서 이성부 시인의 시 '전라도'를 생각합니다. 시인의 글엔 농투성이로 살아온 늙은 농부의 성난 얼굴이 있고, 용서가 있고, 삶의 뿌리가 있습니다.
노인은 삽으로
영산강을 퍼올린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머지않아 그대 눈물의 뿌리가 보일 때까지
노인은 다만
성난 사람을 혼자서 퍼올린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인은 끝끝내
영산강을 퍼올린다 가슴에다
불은 짊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논바닥은 붉게 타는데
바보같이 바보같이 노인은 바보같이
-이성부 '전라도.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