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리벨라 시내 입구의 아침 이른 모습김성호
방안에 들어와 잠을 청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허름한 민박집이라고 해야 할 숙소는 호텔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아예 가건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주인집은 언덕 아래에 있고, 뒤편에 한참 떨어진 언덕 위에 컨테이너 같은 사각형 시멘트 건물을 지은 뒤 방안에 나무 침대만을 갖다 놓은 격이다. 방문의 열쇠 자체가 없고, 허술한 나무걸이 형태로 되어 있어 사람이 밀치면 바로 문이 열리게 되어 있다.
도난방지나 보안장치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으니 어둠이 깔리자마자 마치 공동묘지나 유령의 집처럼 변했다. 시멘트 건물에 덩그러니 침대 하나 놓여 있는 숙소들에서는 언제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어두운 정적이 감돌았다.
밤 9시가 되어 화장실을 찾아갔다. 낮에 젊은 종업원이 건물 뒤쪽 제일 구석진 곳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줘 대충 장소는 알고 있었다.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손전등을 배낭에서 꺼내 화장실을 찾는 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방안에서 나와 일단 오른쪽으로 가다 다시 왼쪽으로 돌아서 가니 흙벽으로 막혀 있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다시 뒤쪽으로 돌아가니 어두운 곳이 보인다. 화장실이다. 마치 미로를 찾는 것 같았다. 텅 빈 숙소들을 지나가는 데 방안에서 으스스한 느낌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두운 구석 중간에 높이 30cm 정도 높이의 사각형 시멘트 가운데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어놓았다. 동그란 구멍이 바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곳이다. 그런데 사각형 시멘트의 용도가 그 위로 올라가 발판으로 삼아 재래식 변기처럼 사용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좌변기처럼 변기 받침대나 커버로 사용하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예 우리네 재래식 화장실처럼 평지에 밑으로 구멍을 내놓았으면 고민을 하지 않을 텐데, 30cm 높이의 시멘트 사각형을 만들어 놓은 다음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놓으니 사람을 헷갈리게 하였다.
엉덩이를 차마 더러운 시멘트 위에 덥석 내려놓을 수는 없어 발판용도로 삼아 올라갔다. 화장실 문도 없어 발판에 올라가 쭈그리고 앉으니 숙소가 높아서 아래쪽 집들이 어두운 가운데도 희미하게 보인다.
앞이 확 트인 시멘트 변기 위에 앉으니 시원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몇 년 전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인터넷 편지 메일 서비스에서 주최한 '몽골에서 말 타기' 단체여행에 참가해 몽골 초원의 나무 판잣집 화장실에서 똥통에 빠지지 않으려고 나무발판에 조심스럽게 발을 올려놓고 초승달을 바라보며 일을 보던 때가 떠올랐다.
화장실 문이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몽골초원에서의 화장실은 낭만이 있었다. 그런데 랄리벨라 화장실은 어둡고 음침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일을 본 뒤 화장실에 물을 넣으라고 플라스틱 물통에 물이 담겨 있고 반쪽으로 자른 커다란 페트병이 놓여 있었다. 반으로 자른 페트병으로 물통의 물을 적당히 담아서 화장실에 뿌리라는 것이다.
수세식 화장실처럼 오폐물로 처리되어 하수구로 흘러가는 것 같지는 않은데, 페트병으로 물을 붓도록 하는 것은 또 왜일까. 어두컴컴한 아프리카 화장실에 앉아서 쓸데없는 생각까지 해봤다.
공동묘지에서 잠자는 것 같은 공포의 밤을 보내고...
방으로 돌아왔으나 잠이 올 리가 없다. 화장실 갔다 온 것이 마치 지옥의 미로를 헤매다 온 것 같았다. 방문 자물쇠가 없으니 솔직히 잠자는 사이에 누가 몰래 들어와 배낭을 통째로 훔쳐갈 수도 있거니와 강도가 들어와 몸이라도 다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떨칠 수 없다. 바하르다르에서 처음으로 현지버스를 타고 블루나일 폭포를 구경 갔을 때의 당혹스러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너무 돈을 아끼려고 싼 숙소에 왔다가 꼼짝없이 강도를 만나 여행 자체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고. 더구나 숙소에는 여행객이라고는 나 혼자밖에 없으니 누구하고 이 어둠으로부터의 위안을 같이 나눌 사람도 없다. 아프리카 여행 닷새 만에 맞는 최악의 공포의 밤이다.
그러잖아도 뒤숭숭한데 이번에는 박쥐가 날아드는 듯 처마 밑에서 파닥파닥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무로 된 문고리가 바람에 덜컹덜컹 거리면서 방문도 흔들리고, 침대도 몸을 뒤척이는 데 따라 삐거덕삐거덕하면서 여기저기 이상한 소리가 뒤섞이면서 공포감이 내 몸속으로 엄습해왔다.
천장에서는 오래된 슬래브 지붕이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둑이 담을 넘어 지붕을 타고 들어오는 소리 같아 바짝 신경이 쓰이고, 머리칼이 뻣뻣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 살펴볼 수도 없다. 소리 내지 않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사람의 인기척을 내지 않는 것이 도둑을 피하는 상책이다.
눈을 부쳤다 땠다 하기를 몇 차례, 몸을 엎치락뒤치락하기를 또 몇 차례를 하다 보니 "꼬끼오∼"라는 닭소리에 눈을 떴다.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랄리벨라의 음습한 밤기운에 잠 못 이루는 여행객에게 새벽을 알리는 닭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아직도 새벽 4시 30분. 역시 나처럼 잠을 설친 새벽닭이 밤이 무서워 울었나 보다.
나는 방안에 비상용으로 놓아두었던 초를 꺼내 불을 붙이고 아예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로 작정했다. 아침 6시가 되자 칠흑 같은 어둠이 조금씩 벗겨지고 성경을 읽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스피커 소리와 함께 새벽닭들도 여기저기서 울기 시작하자 공동묘지 같은 공포는 멀어지고 종교적 도시의 평안함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아침의 밝은 빛을 보면서 밤새 공동묘지에서 나 홀로 밤을 새운 공포감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맛보았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지붕의 슬래브 몇 조각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어젯밤 지붕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바람에 슬래브 조각이 미끄러지면서 땅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였던 것 같다. 랄리벨라는 이처럼 낮에는 신비로운 종교의 도시였다면, 밤은 기괴한 공포의 도시였다. 밤낮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두 얼굴을 가진 도시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무리 가난한 배낭여행이라도 이처럼 무조건 싼 숙소가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싼 숙소는 가축우리와 별 차이가 없고 안전장치가 없다 보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공포감에 휩싸일 수 있다.
홀로 다니는 여행객은, 특히 중간 가격의 숙소를 고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여행 자체가 안전을 위해 상당한 긴장과 경계를 필요로 하는데, 숙소에서조차 여행의 즐거움은커녕 공포감을 체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린이 구호단체 플랜(Plan)의 간판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