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보험사 로고생명보험협회
[사례] 전문직업에 종사하는 한아무개씨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하여 벌써 13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있는 한씨는 시어머니, 자녀 2명과 함께 24평 빌라에 살고 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한씨 부부는 요즘 걱정이 많다. 월 평균 45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리고 있고, 낭비를 한 것 같지 않은데 모아놓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몇 년 전 지인으로부터 카드 사기를 당해 4천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넓은 평수 아파트로 옮기고 싶다. 하지만 저축도 못하는 지금 형편으로는 꿈도 꿀 수 없다.
고민 끝에 전문가로부터 상담을 받아보니 수입에 비해 매월 지출하는 보험료가 너무 많았다. 국내보험사 설계사로 일하며 보험을 맹신하는 시어머니 권유로 하나둘 가입하게 된 보험이 어느덧 12건이다. 모두 보장성 보험으로 지출되는 보험료는 한 달에 110만원이 넘는다.
전문가의 권유대로 꼭 필요하고 적정한 수준의 보험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70여만원을 저축하고 싶다. 하지만 완강한 시어머니의 반대가 두렵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큰 평수 아파트는 고사하고 교육비나 노후자금 준비도 어려울 것 같다. 더구나 남편은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기간이 앞으로 10년 정도라고 말한다. 이래저래 한씨 부부의 고민은 깊어간다.
① 보험이 내 아이 교육비를 뺏어간다면...
@BRI@한씨 부부는 너무 과다한 중복보장과 비효율적인 보험설계로 인하여 돈의 낭비가 너무 심한 경우이다. 그리고 보험은 불의의 재무적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지출하는 최소한의 비용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이대로 보험을 유지할 경우 한씨 부부는 매월 110만원을 20년간 지출하여야 한다. 원금만 2억 6천만원이 넘는다. 전문가의 조언대로 적정 수준으로 보험을 감액하고 발생하는 여유자금 70만원을 5% 수익률로 20년간 저축한다면 2억 4천만원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자녀 교육비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노후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한씨 부부의 경우 시어머니는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작은 확률의 위험만을 생각한 나머지 아들 부부가 자산을 모아서 편안히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길을 완강히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② 보험회사는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
잘 아는 보험설계사로부터 크건 작건 보험을 권유받고 난감해 하던 경험은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사례처럼 시어머니 같은 어려운 가족이나 친척이 보험설계사를 하고 있을 경우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입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억지로 가입한 경우 형편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보험 해약을 고려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납입한 보험료는 일정기간이 되기 전까지 거의 돌려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돌려받는다.
뿐만 아니라 보험을 권유함으로써 받은 설계사 수당까지 보험회사가 다시 가져간다. 다시 말해서 보험가입자의 손해는 고스란히 보험회사의 이익이 된다. 그리고 보험회사가 그 이익의 전부를 가져가는 근거도 불명확하다.
③ 보험회사 교육은 누구를 위한 교육?
보험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보험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세뇌당하다시피 교육을 받게 된다.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이해수준이라면 다행이지만 교육의 정도는 설계사로 하여금 보험에 대한 맹신 수준까지 이르게 한다.
맹신의 결과, 가장이 죽었을 때 가족의 생계비 및 자녀교육비 등을 준비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철저한 정신무장을 갖추게 되지만, 살아가면서 꼭 준비해야 할 교육비, 노후자금, 주택자금 등에 대해서는 은연 중 무시하도록 교육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보험을 판매하며 설계사로서 가져야 할 도덕적 윤리에 대한 교육은 철저히 도외시하고 있다.
외국계 보험사에서 대졸 설계사를 채용하면서 보험영업을 위한 논리적 이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더 높은 보험료로 보험을 판매하려고 가입자의 재무적 유동성까지 무시한 무리한 판매가 고객을 위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희한한 궤변적인 이론까지 만들어 비정상적인 영업방법을 교육하고 강요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