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들어오면 나가는 일은 하늘의 뜻이다. 뱃길을 묶은 바람 덕에 하루를 더 즐겼다.김준
보길도 큰애기 쌀 서말 먹고 시집가기 어려웠다
보길도는 서남쪽으로 망월봉(364)-격자봉(433)-수리봉(406)-광대봉(310)이 능선을 이루며 고산이 자리를 잡았던 부용동을 감싸 분지를 이루고 있다. 논은 거의 없다. 부용리와 부황리을 감싸 도는 하천이 북쪽으로 흐르면서 형성된 약간의 논과 근래에 월송리와 통리 사이 간척지가 전부다.
보길도의 경지면적은 전국의 평균 경지면적은 말할 것도 없이 인근 섬들 중에서도 적다. 그래서 30여 년 전까지 고구마와 보리가 식량이었다. 오죽했으면 '보길도 큰애기 쌀 서말 먹고 시집가기 힘들다'는 말이 있었겠는가. 1960년대 백도, 통리, 중리, 여황리 일대에 지주식 김양식이 시작되었으며, 1980년대 부류식 김양식과 톳양식이 주소득 원이었다.
청별항을 기점으로 백도, 중리, 통리, 예송리 등 동부는 톳양식과 전복양식 등 기르는 어업이 중심이며, 선창, 보옥리, 정자리 등 서부는 멸치, 돔 등 활어를 잡는 어업이 발달해 있다.
노화도와 소안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섬들이 감싸고 있는 동부마을들은 갯벌이 발달해 일찍부터 지주식 김양식이 시작된 마을들이다. 반면에 추자도와 제주도로 이어지는 터진 바다 서부 지역은 멸치잡이가 중심이었으며 최근에는 정자리 등 일부 지역에서 전복양식을 시도하고 있다. 멸치잡이를 가장 많이 하는 선창리의 경우 총 120여 호 중 24호가 멸치잡이를 하고 있으며 나머지 가구들은 연승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길도 주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의료문제다. 신안 비금과 완도 노화에서 운영되던 대우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노화도, 소안도, 보길도 지역의 주민들의 의료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뱃길로 5분이면 갈 수 있던 병원이 문을 닫자 급한 경우 뱃길만 1시간여 걸리는 해남과 완도로 나가야 하며, 그곳에서도 병원까지 가는 길은 물론 병원도 낯설기만 하다는 것이다.
섬사람들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던 예전과 달리 육지병원은 치러야 할 절차들이 까다롭다. 교육문제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지만 의료문제에 비할 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