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된 여성들이 팔라샤 방식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공장김성호
에티오피아 유대교 신자들이 떠난 마을에는 폐허만이...
내가 공항에서 바로 찾은 곳은 성곽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유대인이 살고 있다는 웰레카라는 마을이었다.
오래전 에티오피아에도 흑인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책을 통해 읽고서 언젠가 에티오피아를 가면 유대인 마을을 방문하리라 꿈꾸고 있었다. 어떻게 백인 유대인들이 아프리카까지 흘러들어 갔으며, 또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하더라도 2, 3천년 사이에 외모가 흑인으로 바뀌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시내에서 5km 정도 떨어진 웰레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집들이 몇 채 남아 있지 않아 거의 폐허나 다름없었다. 마을주민 몇 명이 길가에서 도자기나 보자기, 머플러 등 공예품을 팔고 있는데, 여행객들도 발길을 끊었는지 아무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난 1984년부터 1991년 사이 마을주민들이 대부분 이스라엘 정부가 주도한 대량 비행기 수송을 통해 이스라엘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아주 일부만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로 이주한 사람은 무려 2만2000여명에 달한다.
'팔라샤(Falasha)' 또는 '베타 이스라엘(Beta Israel)'이라고 불리는 이들 에티오피아 유대교도들은 4세기에 기독교가 국교로 채택된 이후에도 개종하지 않고 1600년 이상을 자신들의 신앙을 꿋꿋이 지켜왔다.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토지를 몰수당하자 농사를 짓지 못하고 대부분 도자기를 굽는 도공이나 대장장이, 천짜기 기술자 등 장인으로 살아와야 했다. 에티오피아 유대교도들만의 독특한 마을과 문화를 형성해 왔던 것이다.
팔라샤들이 일하던 옛날 도자기 공장이나 실 짜는 작업장은 현재 미혼모 등 홀로된 여성들을 위한 기능훈련장 겸 공동생활체로 사용되고 있었다. 내가 공동생활체를 찾아가자 40대 중반의 여성책임자가 입구에서 오래간만에 찾아온 외국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일일이 공장 등을 소개해 주었다. 도자기 공장에는 5명의 여성이 열심히 흙을 반죽하기도 하고, 술병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다.
도자기 공장 앞에는 7, 8명의 여성들이 한 명은 물레를 이용해 실을 짰고, 나머지는 베틀을 이용해 수공업식으로 천을 짜고 있었다. 공장 뒤의 넓은 텃밭에는 채소를 가꾸는 여성들이 열심히 김을 매고 있었다.
여성 책임자는 "43명의 홀로된 여성들이 이곳에서 일해 134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팔라샤들이 떠난 빈공간을 여성들을 위한 기능훈련센터이자 공동생활체로 활용하는 것은 훌륭한 계획으로 보였다. 공동생활체 안에는 도자기와 보자기, 스카프 등 공예품을 파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옛날 팔라샤들이 만들었던 도자기처럼, 여성들이 팔라샤들의 방식대로 만든 도자기에도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의 전설에 따라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이 함께 침실에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