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초상화가 밖으로 비치는 성 조지 교회 벽에서김성호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안장되어 있는 삼위일체 교회를 둘러본 뒤 점심을 전통음식인 인제라로 때우고 진한 에티오피아산 커피를 마시니 노곤해진다. 오전에 빠듯하게 돌아다니다 보니 피곤한 것이다. 그렇다고 첫날부터 여유를 부릴 수는 없다. 식당에서 가까운 성 조지교회와 근처 메르카토 재래시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 조지 교회에 들어서니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에티오피아는 6월부터 비가 오는 우기가 시작되는 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많은 비가 오지는 않는다. 우산 없이도 비를 맞으면서 구경할 수 있을 정도이다. 8각형 모양의 성 조지 교회는 삼위일체 교회만큼 웅장하지는 않았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와 전임 조디투 여황제의 대관식이 열렸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대관식 장면이 동쪽 벽에 그려져 있고,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의 그림과 최후의 심판 등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처럼 실내벽화로 유명한 곳이다.
'맨발의 영웅' 아베베는 살아있다
@BRI@성 조지 교회에 이어 근처 메르카토 재래시장을 대충 둘러봤다. 비만 내리지 않았으면 더 오래 시장통을 샅샅이 누비려고 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내가 오늘 가장 가고 싶었던 곳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바로 '맨발의 영웅'으로 유명한 세계적 마라톤 선수 아베베 비킬라가 묻혀 있는 공동묘지이다.
마침 내가 탄 택시의 운전사가 아베베의 공동묘지를 안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 30분을 넘고 있었다. 아디스아바바도 오후 접어들어 차량이 늘어나면서 여기저기서 교통체증이 나타났다. 1시간 정도 걸려서 시내 외곽에 위치한 아베베가 묻혀 있는 곳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공동묘지 입구는 비가 와서 인지 곳곳에 물들이 고여 있고, 땅은 질퍽질퍽하였다. 공동묘지의 이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바로 성 요셉 교회 공동묘지이다. 공동묘지 가운데로는 흙길 그대로 인도가 뚫려 있고, 양옆으로는 돌로 된 비석과 묘지들이 쭉 들어차 있었다. 공동묘지 뒤쪽으로는 초라한 집들이 둘러싸고 있다. 비록 시내 외곽이지만, 유럽식으로 마을과 붙어 있는 묘지이다.
공동묘지 맨 안쪽 끄트머리 한 가운데에 아베베가 묻혀 있었다. 10평 정도 크기의 둥그런 그의 묘지에는 잡초들이 무성히 자라났다. 왼쪽에는 커다란 나무 한그루만이 그의 묘지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뒤로는 흰점과 검은 점이 얼룩진 긴 뿔의 황소 한 마리가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철제 울타리로 쳐진 그의 무덤 안에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두 번 우승한 그를 기념해 2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가 우승 테이프를 끊을 때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 놓은 동상이다. 오른쪽 동상은 1960년 이탈리아 로마 올림픽 당시 우승할 때의 모습대로 가슴에 11번의 번호를 달고 두 손의 손가락을 펼쳐 든 채 맨발로 결승선에 들어오는 장면이, 왼쪽 동상에는 1964년 일본 도쿄 올림픽에서 두 손을 힘차게 내저으며 운동화를 신고 들어오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아베베를 바로 여기서 만나다니.
동상 옆에는 암하릭어와 영어로 그의 일생에 대한 간단한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안내문이 지구의를 반으로 나눈 모양의 둥근 거울 철제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지구의 서로 다른 두 대륙인 유럽의 로마와 아시아의 도쿄에서 우승한 것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를 나눈 둥근 거울 모양의 안내문에는 아베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영웅 여기에 묻혀 있다.
대위 아베베 비킬라
1933년 자토 데브레 비르한에서 출생
1973년 아디스아바바에서 사망
올림픽 마라톤 2회 우승자
1960년 로마
1964년 도쿄
그의 업적은 전 세계 스포츠정신의 귀감이 되다."
아베베와 손기정은 마라톤을 통해 독립과 해방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