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 초원에서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얼룩말 떼김성호
대학을 마무리하던 4학년 여름방학 때 텐트를 넣은 배낭을 메고 혼자 훌쩍 떠났다.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를 누비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는 아직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여행은 느낌이 올 때, 필이 꽂힐 때 바로 떠나는 것이다. 느낌은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떠나는 자의 몫이다. 지리산과 해인사, 덕유산, 동학사 등 우리나라의 서부쪽을 종단하는 배낭여행이었다. 나 혼자 떠난 졸업여행이었다. 우리의 산과 바다와 강, 마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여행은 그렇게 나를 일깨운다.
언젠가 나는 배낭하나만을 메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가 되리라 꿈꾸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 제일 먼저 아프리카로 달려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자와 얼룩말이 뛰어노는 초원에서 마구 달리고 싶은 어린시절의 꿈과 제국주의 희생양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대륙을 해방시키겠다는 게바라의 혁명열정이 어린 아프리카는 늘 꿈의 대상이었다.
영화 <말아톤>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BRI@어느 날 오랫동안 잊혀졌던 아프리카의 꿈이 다시 나타났다.
"아프리카에 있는 세렝게티 초원은 지구상에 얼마남지 않은 야생동물들의 천지입니다…. 기나긴~ 건기가 끝나고 드디어 세렝게티 초원에 우기가 왔습니다…세렝게티 초원에 비가 내리면, 얼룩말이 뜁니다."
자폐아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 <말아톤>이 하루하루의 삶에 쫓겨 가는 사회생활 속에서 뒷전이 되어버린 꿈을 다시 일깨운다. 나의 가슴은 다시 뛰고 있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얼룩말과 달리기를 하겠다는 나의 어릴 적 꿈은 <말아톤>의 주인공 '초원'이에게 그대로 옮겨져 있다. 주인공 '초원'이에게 달리기는 자유이자 해방이고, 평등이다. 달리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장애와 비장애를 초월한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는 얼룩말은 '초원'이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면서 꿈이자 이상이다. '초원'이와 얼룩말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같이 달릴 때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뛰어넘어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이 침팬지로부터 마지막으로 진화되기 6백만년 전에는 인간과 동물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그렇게 뛰어놀았다.
<말아톤>에 이어 비슷한 시기에 상영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은 나의 가슴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친구와 함께 떠난 오토바이여행을 통해 남미의 모순과 압박받는 민중의 삶을 보면서 젊은 의대생 체 게바라가 인간해방과 혁명의 길로 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여행이 평범한 인간을 어떻게 혁명적 인간으로 바꾸어 놓는지를 너무나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23살의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1952년 12월 친구인 29살의 생화학자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4개월 동안 중고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모터싸이클을 타고 중남미를 여행하는 8000km의 대장정에 나선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발해 칠레, 페루 등 남미를 여행하는 모습 그 자체는 일반 여행객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에게 말한다. "아니야, 알베르토, 무엇인가가 잘못됐어"라고 나지막이. 그리고 게바라는 다시 마음속으로 외친다.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과거와 같은 난 없다"라고 큰 소리로. 평범한 오토바이 여행영화와 같으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영화가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세상을 바꾼 여행'이라 불린다. '이제 과거의 나는 없다'고 선언한 게바라는 3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로지 인간해방과 혁명, 진보의 한 길을 걸어갔다. 그곳이 쿠바이든, 볼리비아이든, 저 멀리 아프리카이든 주저하거나 마다하지 않았다.
또 다른 '부드러운 혁명가' 김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