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메뚜기를 '보는·잡는·먹는' 세 가지 즐거움

달내일기(74)-지금 달내마을 논에는 벼메뚜기가 '버글버글' 합니다

등록 2006.10.23 13:59수정 2006.10.2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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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병원 가시는 마을어른과 출근길에 함께 하면서 올 농사가 어떠냐고 여쭤보았다. 농사가 잘 되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이것저것 묻고 답하던 중, 평소에 궁금한 게 우리 달내마을에선 벼농사에 얼마나 약을 많이 치느냐였다.


어른 말씀이 올해는 약을 거의 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많이 치는 해도 한두 번쯤이지만 이상하게도 올해는 병충해가 별로 없어 대부분 약 냄새 한 번 풍기지 않았을 거라는 말씀이었다. 약을 치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대뜸 떠오른 게 바로 벼메뚜기였다. 들뜬 마음으로 물었다.

"그럼 벼메뚜기를 잡을 수 있겠네요?"
"아침에 보니까 제법 많이 보이던데…."


왼쪽은 한 마리, 가운데는 암수 두 마리, 오른쪽은 사마귀에 잡아먹히기 직전의 벼메뚜기
왼쪽은 한 마리, 가운데는 암수 두 마리, 오른쪽은 사마귀에 잡아먹히기 직전의 벼메뚜기정판수
벼메뚜기는 보는 즐거움, 잡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하여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우선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메뚜기가 산다는 건 논에 그만큼 약을 치지 않았다는 증거일 테고, 또 그만큼 논이 살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벼가 익을 무렵의 메뚜기는 누렇게 익은 소위 황금벼와 빛깔이 같다. 누런 벼 잎사귀에 달라붙어 있는 녀석들의 모습은 마치 엄마 등에 업혀 있는 아가랑 닮아 있다. 고 예쁜 모습에 반하면 잡을 때 망설이게 되지만.

논에는 벼메뚜기가 한 마디로 말하면 '버글버글'했다. 한 녀석만 붙어 있는 경우도 있고, 암수 두 마리가 붙어 있는 경우, 심지어 세 마리가 붙어 있기도 했다. 논둑에 가까운 부분만 보아도 이럴진대 논 중심부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을지….


메뚜기 잡는 아내의 모습. 나보다 훨씬 즐거워했다
메뚜기 잡는 아내의 모습. 나보다 훨씬 즐거워했다정판수
40년만의 도전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땐 곧잘 잡으러 다녔기에 그때의 감격을 다시 맛보면서 손을 휘둘렀으나 역시 처음엔 잘 안 잡혔다. 손을 훑고 나면 메뚜기 대신 벼나 잎사귀가 손 안에 들어왔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50%의 확률에서 60% 70% … 이내 90%의 포획률을 이루었다.

아내와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논을 휘젓고 다녔다. 아내는 잡는 대로 페트병에 넣고 나는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며 강아지풀에 등을 끼웠다. 날씨만 흐리지 않았더라면 좀더 즐거운 시간을 가졌을 텐데….


추수하시던 이장댁 아주머니가 지금보다는 아침 해 뜰 무렵에 나오면 메뚜기가 힘도 못 쓰니 잡기 훨씬 쉽다고 거드신다. 햇빛이 쨍쨍할 때가 많기는 더 많지만 그때는 활발해서 잡기 힘들고. 또 논이 아니더라도 논과 개울 사이의 풀밭에도 많다 하신다. 정말이었다.

왼쪽은 강아지풀에 끼운 메뚜기, 오른쪽은 1차로 볶은 메뚜기.
왼쪽은 강아지풀에 끼운 메뚜기, 오른쪽은 1차로 볶은 메뚜기.정판수
보는 재미, 잡는 재미가 있다면 삼락(三樂) 중의 백미는 먹는 재미가 아닐까? 프라이팬에 올려놓자 이내 불그스레해졌다. 이걸 바로 먹기보다는 다시 한번 더 볶아야 한다. 즉 날개를 다 떼버리고 볶는 작업을.

불그스레한 빛깔이 다시 약간 거무스레한 빛깔이 되면 먹을 때가 되었다. 익었다고 하여 따뜻할 때 바로 먹으면 내장 씹히는 듯한 느낌이 있으니 식혀서 먹는 게 좋다. 식어야 바삭바삭하여 씹는 느낌이 살기에. 그리고 맛소금은 볶은 뒤에 치는 게 더 좋다.

볶은 메뚜기는 그대로 먹어도 되고, 간장에 졸여 먹어도 된다. 술안주나 간식거리로는 그대로가 좋고, 반찬으로 쓰려면 간장에 졸인 게 좋다.

전부터 벼르고 있던, 담근 술을 맛볼 기회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메뚜기를 안주로 하여 오디주, 칡주, 오가피주, 앵두주를 한 잔 한 잔씩 맛보는 동안 가을밤은 익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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