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사랑한다"는 신념을 가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조성일
"정부부처 중 과학기술부가 있는데, 사실 우리 정부의 예산 중 기술 쪽에 90%가 가고 과학에는 10%에 불과합니다. 국민총생산액 대비 연구비 비율이 선진국 못지않다 이렇게들 얘기하는데, 총액이 중요합니다. 좀 과장하면 과학기술부 예산 중 반은 기술, 반은 과학 이렇게 배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줄어든 기술 분야의 투자비는 기업이 적극 나서서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지원보다 삼성의 과감하고 전폭적인 투자의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최 교수는 자신이 미국에서 돌아올 무렵인 10여 년 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지가 한국특집을 다루면서 했던 조언을 상기해보자고 했다.
"네이처는 한국에도 이젠 세계적 기업이 나왔다면서 국가가 국민 세금으로 기업을 도울 필요가 없다, 대신 그 돈은 기초과학에 지원하고, 응용과학은 기업이 투자하게 하라, 이런 내용이었는데, 10여 년 전의 제언이었지만 지금도 매우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황 교수 사태, 안타까운 일
개미와 벌, 까치 등 동물의 사회적 행동과 인간의 행동 비교 연구로 유명한 최 교수는 과학도 실험실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해야 하고 과학적 진실이 사회적 진실과 통해야 한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그런 그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면 그가 이번에 개정판을 낸 책의 부제를 '생태학자의 세상보기'라고 단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는 황우석 교수 사태로 불거진 과학과 윤리 문제에 관심이 많다. 경희대 도정일 교수와 만나 인문학과의 소통을 시도한 <대담>(휴머니스트 펴냄)의 작업에서도 알 수 있다. 이대에서 마련한 연구실 한 켠에 그런 소통을 위한 '통섭원'을 마련하는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최 교수는 과학 윤리 문제는 인문학자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과학자들 스스로 챙겨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얘기가 나온 김에 책도 함께 냈던 인연을 내세워 황우석 교수 문제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했다. 한참을 머뭇하던 최 교수는 황우석 교수가 과학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고 전제하면서 이젠 이런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황 박사는 과학자라기보다 기술자 쪽에 가까운 분인데, 우리가 그를 불편한 자리에 올려놓고 엉뚱한 기대와 반응을 보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습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황우석 교수가 첫 기자회견을 하던 날 아침 일찍 서울대 수의대로 황 교수를 찾아갔었다고 했다. 책을 함께 낸 동갑내기여서 무척 친한 사이로들 알고 있는데,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서 최 교수는 안타까움에서 만나야겠다고 생각돼 그날 거길 갔었다고 했다. 그러나 황 교수가 출근하지 않아 만나지 못한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모만 남기고 서둘러 나왔고, 텔레비전을 통해 황 교수의 기자회견을 보고 "저건 아닌데"하는 아쉬움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진정한 자유는 스스로를 구속하는데서 나옵니다. 모든 걸 털고 가시지요. 그리고 다시 일어서면 아마 우리는 당신 뒤에 설 것입니다."
인생을 이모작 하라
청년 시절에는 여자 친구가 먼저 전화를 걸어오면 감히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전화를 거느냐고 화를 낼 만큼, 어린 시절에는 결혼한 이모가 한집에 살면서 늦잠 때문에 출근하는 이모부를 배웅 못하는 것을 보고 당장 일어나 이모부를 배웅하라고 안달할 만큼, 가부장적 기질을 타고 났던 그가 성평등주의자가 되었던 것은 동물을 연구하면서부터라고.
최 교수는 요즘 '인생이모작론'을 전파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같은 제목의 책까지 내면서 그가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겪어야 할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고령화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0년이면 우리나라의 인구가 490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되면 65세 이상의 노령 인구가 15세 미만의 어린이 인구를 앞지르는데, 여기에는 노동인구의 절대 부족이라는 함정이 있다는 것.
그래서 최 교수는 다른 동물과 달리 번식을 멈춘 후에도 계속해서 삶은 영위하는 별난 동물인 인간의 고령화 문제에 대한 생물학적인 대안으로 '인생이모작'을 내놓은 것이다.
인생이모작이란 그동안 번식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번식 후기에는 덤으로 엉거주춤 따라가도록 내버려두던 것을 이젠 번식기처럼 똑같이 중요하게 임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00세 시대가 멀지 않은 만큼 50살까지 제1인생기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시기라면 나머지 50년인 제2인생기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기라고 말한다.
애초 돈 버는 재주가 별로 없어 주변에서 노후 걱정들을 많이 해주는데, 스테디셀러 북 10여권만 쓰면 노후 준비가 되지 않겠느냐며 최 교수는 '알면 사랑한다'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서너 권의 스테디셀러 북을 썼으니까 이 희망사항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갈무리하며 30분 이상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약속자를 만나기 위해 기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이 닭을 낳는다 - 생태학자 최재천의 세상보기
최재천 지음,
도요새, 2007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