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산에서 내려다 본 강화도 앞바다박상건
서울과 가까운 곳, 승용차로 당도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섬 아닌 섬 강화도.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곳은 마니산(摩尼山 : 468m). 이 곳은 동서남북의 들과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쓰이던 곳이다. 400년경 고구려 영토였던 강화도는 1895년 강화군으로, 100년 후인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되었다.
본래 강화도는 김포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오랜 침식작용에 의해 구릉성 섬으로 분리됐다. 그러다가 한강과 임진강에서 유출되는 토사가 쌓이면서 다시 김포반도와 연결됐고 한강에서 물줄기가 갈라지면서 김포와 강화 사이 해협이 만들어지자 다시 섬이 되었다. 그러니 강화도는 태생부터 지난한 역사의 흔적을 가진 섬이다.
강화도 앞바다의 물결은 지금 성산대교 앞까지 밀려왔다. 자유로 주변에 아직도 갯벌 잔등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런 생태적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사람들이 강화도를 찾는 일은 서울 앞바다에 일렁이는 조상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강화도 가는 길에 들어서면 벌판이 먼저 여행객을 맞는다. 이곳은 유기농의 터전이다. 죄다 갯벌을 간척한 땅이다. 논바닥 아래로 바다의 숨결이, 뻘강의 호흡소리가 고스란히 젖어 들고 있다.
그렇게 평온한 듯 애잔한 강화도는 애당초 굴곡의 세월이 녹아든 땅이다. 그래서 강화도 길은 툭 트이는가 싶으면 굴절의 모퉁이가 나오는 지리적 환경을 보여준다. 그런 길을 역사의 숨결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99㎞에 이르는 해안선마다 역사의 굴곡만큼이나 많은 여러 문화유산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강화도는 긴 역사 속에서 한민족의 땀방울과 애환을 다독이면서 한편으로는 현대의 후예들과 동시 교통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강화도는 역사와 문화, 생태환경이 3박자를 이루는 섬이다.
강화도 가장 아랫도리에 위치한 마니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불린다. 첨성단의 단군 이야기가 서린 곳이다. 매년 개천절이면 언론의 포커스가 되는 곳이다. 918개의 돌계단을 다 올라서면 서해의 올망졸망한 섬과 평화로운 바다 풍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화도 역사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39년 동안 몽고에 대항했던 사실이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구한말 외세침략의 아픈 흔적이 너무 깊게 패여 있기에 풀 한 포기에서 불어오는 바람결도 애잔하다. 돌멩이 하나 함부로 할 수 없음은 곳곳에 버티고 선 고인돌이 귀중한 청동기 역사유물인 탓이다.
몽고의 침입이 있자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해 지은 고려궁지, 몽골 2차 침입에 대항해 만든 토성인 강화산성은 병자호란 때 파괴돼 다시 지은 아픔의 흔적이 서려 있다. 프랑스 미국 일본의 잇따른 강화도 침범 앞에서 우리 수비군들이 화포를 맹렬히 쏘아대며 대항했던 초지진.
곳곳에 포탄 자욱이 선명한 돈대 중앙에는 그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포 1문과 아직 죽지 않는 노병의 기개로 서 있는 한 그루의 노송이 그 때의 상흔을 해풍을 맞으며 다독이고 있었다.
연개소문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고려산 아래는 청동기시대 유물인 고인돌이 120여 기가 산재해 있다. 이 때문에 강화도에서는 고인돌 축제를 여는데 청소년들에게 생생한 역사현장 체험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축제는 원시생활체험, 미니움집 만들기 맘모스를 잡아라, 원시인으로 분장해서 원시인과 사진찍기, 고인돌 역사교실, 고인돌 영화제, 설화 연극, 용두레질노래, 강화두레농악을 비롯 강화역사기행, 갯벌탐험 등 매우 다양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이다.
또한 고려산의 가을 억새밭도 볼거리다. 이 곳에서 보는 일몰은 강화 8경 가운데 하나다. 바다에서 직접 노을을 보고 싶다면 외포리로 가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석모도행 철부선을 타는 게 좋다. 석모도는 서해안 3대 일몰 중 하나로 온통 바다와 섬을 짙게 물들여 해안가의 여행객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