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 죽음이 너무 마음 아픕니다"

에세이집 <걱정 말아요 그대> 낸 로커 전인권

등록 2005.06.16 20:53수정 2005.06.1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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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에세이집 <걱정 말아요 그대> 내는 로커 전인권씨.

에세이집 <걱정 말아요 그대> 내는 로커 전인권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곤혹스럽다.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서 순식간에 연예인이름 1위로 뛰어오르는 괴력(?)을 발휘한 그였기에, 이 인터뷰 기사를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14일에 했던 인터뷰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다 말고 그에게 전화를 넣었다. 핸드폰 ‘보내기’ 버튼의 글자가 지워질 정도로 누르고 눌렀고, 메시지도 수차례 보냈다. 묵묵부답. 그의 매니저도, 홍보담당자도, 모두 일부러 전화를 받질 않는 것 같았다. 어찌어찌하다 시간은 6월16일 오후 2시50분경을 막 넘어설 즈음, 핸드폰이 강하게 몸을 떨었다.


“전인권입니다!”

“추억 얘기하다 우연히 나온 것일 뿐”

쓸데없는 ‘설’이 더 이상 길어지면 독자들에게서 몰매를 맞을 것 같다. 이쯤에서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전인권이 기자와 인터뷰했던 다음 날인 15일 보도된 대로 고 이은주를 사랑했느냐는 것과 일이 터지고 난 지금의 심경이 어떠한지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그는 “팩트는 맞다”고 했다. 그는 사랑한 것도 죄가 되느냐며 은주의 죽음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쏟아지는 궁금증에 대해 일일이 대꾸하지 않겠지만 책 출간을 앞둔 시점이어서 책 홍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고백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에 대해서만큼은 강하게 부인했다.

전인권은 이 사실을 처음 보도한 기자와는 평소 안면이 있었던 사이였고, 인터뷰 도중 여러 가지 추억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사를 처음 썼던 그 기자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뜻을 전해왔었다고도 했다.


예기치 않은 돌발 사태에 대해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만큼이나 22일 출간일을 앞두고 막바지 손질을 하는 출판사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 같았다.

자, 이쯤하자. 사실 전인권에 관해 지금 회자되고 있는 내용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것이 전부다. 전인권은 혹시 차질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애초 예정대로 발리로 여행을 떠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 여기서 미리 덧붙이면 그의 책에서 이은주에 관한 언급은 책 ‘머리말’ 맨 마지막 줄에 “은주가 있다면 ‘애쓰셨어요. 전인권 만세.’ 문자 하나 왔을 텐데…….” 하는 표현이 전부다. 본문에는 단 한 줄도 언급이 없다.

책도 나오기 전에 한 신문이 그의 책 출간 소식을 먼저 보도함으로써 책 나올 때를 맞춰 그와 인터뷰하려고 기다리던 모든 매체가 덩달아 분주한 가운데, 6월14일 저녁 무렵 서울 삼청동 청와대 입구에 있는 한 북카페 야외 테라스에서 소낙비 연주를 들으며, 다음 스케줄을 위해 옮기는 그의 차를 함께 타고 가며 2시간동안 그를 인터뷰했다.

‘인권이 라이프’로 본 대중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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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에세이집 <걱정 말아요 그대>(청년사 펴냄)를 내는 전인권(52)은 “내 글이 책방에 그 서적들 사이에 있게 된단 말이지.”라고 쓴 머리말 첫 문장처럼 책 낸다는 사실에 몹시 들떠있었다. 그의 책 낸 소감은 “황홀하다!”였다.

그는 이 책에서 1980년대의 문화에 대해 말한다. 자유와 억압이 길항하던 그 시절, 음악으로 젊은 영혼들의 타는 목마름을 적셔주던 얘기를 한다. 그가 출연했던 한 CF의 카피를 빌려 표현하면 ‘인권이 라이프를 통해 본 대중문화사’라고 하는 것이 그의 책에 대한 적당한 설명일 것 같다.

“재미있게 썼으니까 그냥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기왕이면 자세히 읽어주면 더욱 좋고.”

그의 대답은 담백하다. 어떤 양념도 치지 않은 날것이었다. 늘 바뀌지 않는 ‘청바지·회색 티셔츠·검은색 재킷·뾰족구두·검은색 색안경’을 쓰고 헝클어진 머리 못지않게 불뚝한 배가 시선을 끄는 그를 ‘자유인’라는 말 말고 다른 표현이 가능할까.

아직도 ‘들국화’라는 이름에 놀라기도 한다는 그는 이 책을 ‘환각의 정체’라는 제목을 단 대마초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대마초’는 앞서 얘기했던 ‘이은주’와 함께 강한 휘발성을 가진, 그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코드이다.

“글을 쓸 때 대마초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몹시 억울했었습니다. 어떤 때는 한 시간씩 글을 쓰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대마초를 피웠다는 사실이 포승줄에 묶여 치욕적으로 죄인 취급까지 받아야 하는 일인지에 대해 지금도 이해가 안갑니다.”

사상범이 아니어서 양심의 가책을 그다지 느끼지 않으며 ‘다시는 대마초를 안 하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나왔던 그는 더러워서 5년은 안하겠다고 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안한다고 했다.

“요즘 대마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대마초 합법화까지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마초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술과 마찬가지로 받는 사람이 있고, 안 받는 사람이 있는데, 받는 사람에겐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독성은 전혀 없습니다. 대마초를 허용하는 나라도 있지 않습니까. 대마초를 피웠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처벌하지 말고, 피우고 무엇을 했느냐를 보고 처벌을 하든지 말든지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대마초를 피우는 것이 남을 해코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록 음악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선택했었다고 했다.

전인권을 키워준 8할은 ‘삼청동’

자신을 키워준 8할이 바람이었다고 한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려, 전인권을 키운 것 중 8할은 ‘삼청동’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자랑스럽게 말하던 ‘삼청동’, 그래서 ‘좋은 데 산다’는 부러움을 받게 한 삼청동, 북한산 줄기 중 산 아래 터가 가장 좋다는 ‘삼청동’, 할아버지부터 그의 아들딸까지 내리 4대가 사는 그런 삼청동 토박이인 그에게 있어 삼청동은 놀이터이자, 학교이자, 사회였다.

“전 어떻게 보면 고맙게도 삼청동이 만든 가수라고 생각합니다. 산이라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소리 지르는 것은 제가 가수가 되기 이전에 놀던 놀이였거든요. 사실 그게 배움이란 것을 안 것은 들국화 시절이었지만……. 그런 곳이 김신조가 넘어온 이후 철망이 쳐져서 들어가지 못해 아쉽지만…….”

삼청동에서 그는 노숙자가 되었다고 들리는 춘길이 형님을 중심으로 그렇게 여러 친구들과 자유의 열망을 튜닝 했다.

“동아일보를 보든 뭘 보든 아저씨들하곤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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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동아사태’가 일어났을 무렵, 집안 사정으로 구파발로 이사를 갔다가 <동아일보>를 끊으라는 동네 새마을 청년반장의 요구를 “너무 심하신데요. 우리가 동아일보를 보든 뭘 보든 아저씨들하곤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요”라고 대들었다가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던 추억을 가진 전인권은 ‘삼청동 왕족’이었다.

어느 날 그는 ‘하이 센스’한 음악인들이 저항하던 곳, 신촌에서 젊은 문화를 미풍양속이란 이름으로 마구 죽여 대던 박정희에게 저항하던, 그에게 음악적 스승이 된 김민기, 그리고 김민기를 찬양하며 반항어린 록 음악을 추구하던 친구들에게서 재미있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가 살고 있는 “삼청동에 왕족이고 대마초를 무지 즐기며 기타 실력이 아주 뛰어난 아티스트가 살고 있다”고. 그가 누굴까? 궁금해졌다. 이사를 왔나?

반전은 독자들의 눈치를 배반하지 않는다. 전인권,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책에서 굳이 자세하게 얘기하길 꺼리는(?) ‘들국화’를 빼고는 전인권을 설명할 수 없으리라.

야생화 ‘들국화’는 그와 허성욱, 그 음악에 애틋함과 절규를 느낀 최성원, 끊임없이 술을 마시며 탈퇴와 결합을 계속했던 조덕환, 그렇게 네 명으로 구성됐었다. 들국화는 엄청나게 성공했다.

“전 지금도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게, 들국화만큼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그룹은 없다고 봅니다. 내로라하는 우리나라의 훌륭한 뮤지션의 라이브 무대를 보아왔지만 들국화만큼 끝이 안 보이는 저 끝까지 사람들을 보내준 팀은 없었습니다.”

자신은 우드스탁 세대이긴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음악적 목표는 히피시대의 사이키한 음악이라고 말하는 전인권은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다다르는 그런 사이키델릭한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낸 책제목과 같은 새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아이디어는 <돌고 돌고 돌고>가 가장 좋은 노래이지만, <걱정 말아요 그대>가 최고의 노래가 될 것이라고 그는 입술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해댔다.

a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로커인 전인권, 록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 록의 부활을 위해 온 몸을 바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로커인 전인권, 록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 록의 부활을 위해 온 몸을 바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러나 전인권은 그런 들국화가 왜 해체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긴 하지만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미국에 갔다가 자신들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

그 이후 그는 자신을 벼리고 벼려, 전인권표 로커로 거듭났다. 지금 그는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방송사에서 그에게 끊임없이 제의를 한다. 그러나 그는 너무 자주 나가면 식상하다는 생각에서 이쯤에서 방송은 중단하고 라이브 공연에만 열중한다. 지금까지의 공연회수가 무려 2800여회 정도 된단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로커인 전인권, 록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 록의 부활을 위해 온 몸을 바치고 있다. 그 작업으로 그는 지금 라이브 카페가 모여 있는 미사리의 ‘아테네’에서 록 공연을 한다. 출연하는 가수에 불과하지만, 아테네를 록 전용 클럽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뜻을 이루기 위해 그는 미쳐 노래 부른다.

오늘도 공연하러 대구에 가는 전인권은 ‘아름다운 퇴폐’를 경험해보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면서.

걱정 말아요, 그대 - 김제동과 사람들,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시간

JTBC '김제동의 톡투유' 제작진 지음, 버닝피치 그림,
중앙books(중앙북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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