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만큼 '셰익스피어'가 싫다!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쓴 박홍규 교수

등록 2005.03.29 12:53수정 2005.07.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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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를 쓴 박홍규 영남대 교수.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를 쓴 박홍규 영남대 교수. ⓒ 조성일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청어람미디어 펴냄)의 지은이 박홍규 교수(53·영남대 법대)와의 인터뷰는 모 방송사 PD와 있었던, 지금도 진행 중인 송사 얘기로부터 시작됐다.

경북 경산 영남대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하려던 인터뷰를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걸어서 4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그의 집으로 걸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패거리주의에 대해 얘기하던 중 자연스럽게 이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의심되는 '고백'의 순수성' 기사(2003년 8월 29일 게재)에 대한 약간의 섭섭함을 토로하며, 박 교수는 지검에서 무혐의 처리되었던 명예훼손 피소 건이 다시 항고가 되어 고검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등 끝나지 않은 송사가 매우 성가시다고 했다.

구내식당에서 떡국으로 점심을 먹은 후 꽤 오랜 시간 함께 걸으면서 탐색전을 펼친 덕분에 그의 집에 도착해서는 낯익히기를 위한 의례적인 인사치레 따위가 필요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제국주의적 절대왕정 위해 복무하다!

"마치 햄릿의 망령처럼, 카키색 군복을 입고 수천 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북한을 침략하라고 부시에게 미친 듯이 고함치는 셰익스피어의 망령이 분명히 보인다."

a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표지.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표지. ⓒ 청어람미디어

박홍규 교수는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진술하면서 재선에 성공한 미국대통령 '부시'만큼 '셰익스피어'가 싫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둘 다 제국주의자라는 게 이유다.

부시가 제국주의자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문필가 토머스 카알라일의 표현을 빌려 '인도와도 바꾸지 않을'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가 제국주의자라는 주장은 의외다. 아니 충격이다.


우리가 그동안 절대 권위를 인정하며 그의 작품들을 경전으로까지 숭배(?)해 왔는데, 이 무슨 발칙한 폄하란 말인가.

"셰익스피어 하면 떠올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햄릿>, 뿐만 아니라 <리어왕>이나 <맥베드> 등 거의 모든 작품들이 집안 간이나 왕가의 살육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살육 투쟁의 구도는 당시 대두한 제국주의적 침략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보면 셰익스피어의 제국주의적 성향이 보다 분명하게 이해된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는 1564년부터 1616년까지 살았는데, 특히 그가 작품을 쓴 1580년대 후반부터 1610년대 전반까지의 영국은 그야말로 대영제국의 깃발을 높이 펄럭이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대신하여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었다.

1588년 영국을 정복하려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드레이크가 괴멸시킨 사건을 계기로 식민지 지배의 주도권을 잡은 영국은 왕권신수설을 이데올로기로 한 절대군주인 엘리자베스 여왕(튜더왕조)이 국가를 통치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도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는 본격적으로 희곡작업을 합니다. 이때 셰익스피어는 정치적으로 절대왕정을 옹호하여 '튜더적 화해'를 희곡의 정치적 주제로 삼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셰익스피어는 '장관극단' '국왕극단'의 호칭을 받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책을 쓰며 자부한 적이 없는' 박홍규 교수가 "특히 자부심을 느끼는"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셰익스피어의 키워드는 "국제관계 내지 세계사적 관점에서의 제국주의이고, 봉건사회로부터 절대주의 국가로의 이행이며, 공동사회로부터 이익사회로의 전환"이다.

셰익스피어에 빠지면 제국주의자가 된다!

박홍규 교수가 자신의 전공도 아닌, 더더욱 영문학의 중심인 셰익스피어에 대한 비판작업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a 셰익스피어를 읽되 비판적으로 읽자고 제안하는 박홍규 교수.

셰익스피어를 읽되 비판적으로 읽자고 제안하는 박홍규 교수. ⓒ 조성일

이것 말고도 그의 외도는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내친구 빈센트> <오노레 도미에> <카뮈를 위한 변명>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와 같은 다수의 전작에서 이미 전방위적으로 선보인 바 있다.

"사실 제 정신적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오리엔탈리즘>의 에드워드 사이드에게서 시사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이드가 직접적으로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라고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문학을 '제국주의 문학'이라고 표현합니다."

온 세상이 떠받드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그의 회의는 여기서 시작됐다.

이쯤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자.

2003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이드의 영전에 바치는 책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를 펴낼 정도로 정신적 제자를 자처하는 박홍규가 '20세기 최고의 사상가'라 부르는 사이드를 처음 만난 것은 1978년에 나온 사이드의 대표작 <오리엔탈리즘>을 통해서다.

당시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이 저작을 만난 그는 서울의 한 대학 영문과 교수에게 번역을 권유했지만 그가 끝내 하지 않자 자신이 직접 번역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뜻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가 없어 번역원고를 들고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교보문고에서 출판했는데,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는 60여 쪽에 이르는 '옮긴이 말'이 회자될 정도다.

그런 그가 저만치 떠받들어지는 사람들, 소위 '위인'들을 종횡무진 헤집고 다니면서 그들에게 들씌워진 신화와 아우라를 벗겨낸다.

이 책도 그런 입장에 있던 그가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눈 한 셰익스피어 전공자로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이 절대로 제국주의적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쓰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지난 4백년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그의 위대함에 대해 말했으니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나 같은 사람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박홍규 교수는 셰익스피어를 열심히 신주 단지 모시듯하면 제국주의자가 된다고 경고한다.

"셰익스피어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읽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문학전집이니 하는 것에서 빠지지 않고, 특히 문학도에게 성경 같은 존재인 것을 보면 일반인에게 얼마나 읽히는지 알 수 있죠. 소위 대일본제국을 꿈꾼 옛날 일본에서야 읽힐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제국을 꿈꾸지 않는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이같은 주장이 셰익스피어를 읽지 말자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말한다. 이 작업은 나이 쉰이 넘어 간이 부어(?) 겁낼 것 없고, 더더욱 명예훼손 당할 우려가 없어서 만용을 부려본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엄청난 권위로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 재검토해보자는 겁니다. 대부분 서양 것들인데, 도대체 왜 우리에게 권위로 다가오느냐, 혹시 실제적 가치보다 서양주의에 따른 무작정 숭배 같은 것이 아니냐 하는 평소 생각에서 셰익스피어를 한번 건드려 본 겁니다."

톨스토이나 조지 오웰, 앙드레 지드 같은 대문호들이 셰익스피어에 대해 시비를 건 적이 있다는 점에서 용기를 얻은 박홍규 교수는 아마도 세계적으로 유일하지 않을까 싶게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셰익스피어를 해부했다. 읽되 비판적으로 읽자는 게 그의 제안이다.

독도 문제는 일본의 제국주의 부활 상징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제국주의가 무엇이기에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실체를 까발리며 폭로하는 것일까.

a 일본은 체질적으로 제국주의자라고 말하는 박홍규 교수.

일본은 체질적으로 제국주의자라고 말하는 박홍규 교수. ⓒ 조성일

"제국주의는 침략과 지배와 억압, 차별 등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용어입니다. 즉 민족이나 국가가 힘에 의해 힘이 없는 국가나 민족을 침략, 억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는 반인간적 체제이기에 당연히 악입니다."

이렇게 제국주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박 교수는 자연스럽게 요즘 우리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드는 일본에 대해서 발언했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체질적입니다. 아시아에서 맹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죠.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이같은 야욕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만큼 구조화 되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일본에 양심적 세력이 있다고 한들 역부족입니다. 미국의 우경화와 직결되는 일본의 우경화는 국제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설정한 생존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봅니다. 아시아를 멸시하고 서양과 대등해지려는 목표가 있는 한 일본은 이같은 제국주의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의 우경화가 전쟁을 낳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독도 문제를 독도 문제로 국한해서 보지 말고 하나의 상징으로 보고 그 뒤에 숨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본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박 교수는 주장한다.

최근 탈민족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그것이 당위론적으로는 일면 타당성이 있을지는 몰라도,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민족주의는 포기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라고 박 교수는 반박한다.

"셰익스피어를 제국주의의 입장에서 씌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제국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그 근거가 되는 서양의 가장 '위대하다'는 고전을 해부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양문화 대부분은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서양문화를 철저히 상대화하여 우리의 입장에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 시절 마르크스가 애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다시 셰익스피어 전집을 들춰보았던 유치한(?) 추억을 갖고 있다는 박홍규 교수는 셰익스피어는 17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적 세계질서를 바라보는 하나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박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말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제국주의적 냄새가 이 땅에서 지워지길 희망했다.

"다시는 미국이 개입하는 전쟁이 이 땅에서 없기를 바랍니다. 이 땅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타나는 제국주의적 냄새 또한 이 땅에서 지워지길 바랍니다."

a 전방위적 저작활동을 하는 그의 집 서가는 에술 관련 책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전방위적 저작활동을 하는 그의 집 서가는 에술 관련 책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 조성일


박홍규는 누구인가
'왕따'를 자처해 집필에 몰두하는 괴짜 교수

수염이 인상적인 박홍규 교수(53)는 스스로 말하길, 아나키스트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아나키즘에 상당히 경도돼 있는 노동법 전공의 법학자이다.

일본과 영국, 미국, 독일에서 법학을 연구하기도 한 그는 1985년 니콜라스 발티코스의 <세계 최저노동기준> 번역 출간을 시작으로 40여 권 이상 저술하고 번역하는 등 왕성한 출판활동을 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물론, 자본주의 국가 사회의 시스템을 비판한 이반 일리치도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박 교수는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대표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데 필요한 이론틀을 제공했으며 10년 전에 이미 배심원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함께 하던 동료 여럿이 새정부 들어 요직에 발탁되자 지식인은 권력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이유로 창립멤버로 활동하던 대구사회연구소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르네상스형 저술가답게 전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그는 특히 우리나라 출판의 취약 부분으로 지적돼온 평전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형편이 괜찮은 큰 출판사에서 주는 인세야 마다하지 않지만 규모가 작은 신생 출판사의 경우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인세를 받지 않는 소위 '카피 레프트'를 실천하기도 하는 박 교수는 도시락을 싸서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출근하여 연구실에서 책 읽고 집필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그는 거의 모든 집단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패거리주의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생각에서 그 정도의 왕따는 감수한다.

그 왕따는 그의 왕성한 집필의욕을 자극하여 한 해에 적어도 서너 권의 책을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Let it be!(날 내버려 둬!)" / 조성일 기자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 박홍규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박홍규 지음,
청어람미디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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