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견공의 죽음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66), 개를 묻어주면서

등록 2005.01.07 10:43수정 2005.01.0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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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생명체의 죽음은 다 같다


지난 30여 년 살았던 북한산 기슭의 내 집, 지금은 아이들이 살고 있다
지난 30여 년 살았던 북한산 기슭의 내 집, 지금은 아이들이 살고 있다박도
지난해(2004년) 초가을,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서울 집에 갔을 때 일이다. 내 집은 북한산 비봉으로 가는 길의 마지막 집으로 언저리가 온톤 빈 집 터(개발제한지구)나 산이다.

이른 아침 집 안팎을 청소하는데 옆집에 사는 부인이 인사와 아울러 안타까운 표정으로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빈 터에 개가 한 마리 죽어있다고 했다. 당신 남편은 일찍 출근했다면서 나에게 그 처리를 부탁하는 눈치였다.

멀리서 부인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흰 개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삽을 들고 가까이 가자 그새 고약한 냄새가 나고 파리들이 들끓고 있었다.

역겨운 생각에 멀찍이서 삽으로 흙을 떠서 10여 번 덮어주자 개의 시신이 모두 흙에 묻혔다. 그리고는 손발을 털고 닦고 안흥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시골집에서 지내는데 문득 문득 개의 무덤이 떠오르면서 내가 너무 무성의하게 흙을 덮어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흙을 몇 삽 더 떠서 제대로 땅에다가 묻어줄 일이지, 무엇이 더러우며 참혹하다고 외면하다시피 멀리서 흙만 몇 삽 끼얹고는 제대로 밟아주지도 않고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던가.


물론 그 개가 살았을 때는 나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어떻게 그 개의 시신이 거기에 놓인 지도 모른다. 제 발로 와서 죽었는지, 주인이 죽은 개를 거기다가 버리고 갔는지…. 그러나 아무튼 이 세상에서 내가 그 개의 마지막 목격자 겸 땅에다가 묻어주는 이가 된 셈이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처지로 볼 때, 이 세상에서의 뭇 생명체의 죽음은 다 같다. 사람이 죽음이라고 대단하고 개의 죽음이라고 하찮지는 않을 것이다.


고려 때 문인 이규보는 <슬견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피와 기운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결같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습니다.”

개의 환영

높은 곳에서 계신 분이 나에게 “기왕에 좋은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무슨 일을 그렇게 소홀히 하였느냐”고 꾸짖는 것 같아서 며칠간 불편하게 보냈다. 그 새 비도 한 차례 내렸다. 혹이나 흙무덤이 비에 씻겨 개의 시신이 드러나지나 않았는지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던 중, 일주일 만에 한 모임의 일로 다시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 모임에 참석한 뒤 하룻밤을 서울 집에서 묵고 이튿날 아침, 삽을 들고 개의 무덤으로 갔다. 내 염려와는 달리 다행히 시신은 드러나지 않았다. 다시 삽으로 흙을 20여 차례 떠서 더 덮어주고 발로 꼭꼭 밟아주었다.

옛날 어른들은 어린 손자들에게 “내 죽으면 무덤을 꼭 꼭 밟아 달라”고 하셨다. 아마도 그 어른들은 그 점이 가장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몹시 어렵게 다녔는데 그때 동창 한 어머니는 늘 나의 주린 배를 채워주셨다. 그러면서 이따금 이런 부탁하셨다. “내 죽으면 네 발로 내 무덤을 꼭 꼭 밟아다오.”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학교에 결근까지 하면서 두건을 쓰고 그 부탁을 그대로 들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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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어찌 그 시절을 잊겠습니까

아마도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죽음’이라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관문을 어떻게 지나치느냐에 염려치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골집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골집박도
설사 죽음이 자연을 돕고 이롭게 하고,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위한 하나의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언정, 자기의 시신이 천박하게 이 지상에 굴러다니지 않기를 모든 생명체는 바랄 것이다.

그날 개의 무덤에 흙을 더 덮어주고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차창 밖에서 개의 환영이 고마움의 표시로 나에게 꼬리를 치면서 ‘멍멍’ 짖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004년 겨울호 <불교평론>  '사색과 성찰' 란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해 가을에 쓴 것으로, 잡지가 나온 뒤에 올리느라고 글의 내용과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2004년 겨울호 <불교평론>  '사색과 성찰' 란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해 가을에 쓴 것으로, 잡지가 나온 뒤에 올리느라고 글의 내용과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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