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4월 한국을 공식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맞이하는 김대중 대통령.김녕만
"전임 대통령들이 좋은 것도 남기고 나쁜 것도 남겨준다. 다 말할 수는 없고, 제 전임(김대중 전 대통령)만 말씀드리면 한국의 행정이나 정치가 가져야 할 기본 틀, 인권이나 사회복지, 역사 문제, 적어도 기본적인 틀은 마련해서 자리를 잡아줬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그대로 두면 흐지부지되겠지만 제가 착실히 내용을 채워나가면 국가의 틀이 반듯하게 세워지겠다는 믿음 갖고 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지 이런 틀을 잡아줬다. 외교하러 나가면 내가 주목, 대접받는다. 그럴 이유가 없지 않냐. 정치와 경제가 그만한 수준이고 국민들이 세계 도처에서 역량 발휘해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위에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해 갖고 있었던 존경이 있다. 인권 지도자, 민주주의 정치 지도자로서, 일관성 갖고 왔던 지도자로서의 명성이 있고, 남북관계 북핵 푸는데 있어서도 큰 방향을 잡은 게 세계 지도자들 공감을 얻고있기 때문에 명망 있다. 전 덕분에 다니며 대접 잘 받는다."
노 대통령은 공식환영식에 이어 1일 저녁(한국시간 2일 오전) 버킹엄궁 2층 연회장에서 여왕이 마련한 국빈만찬에서도 다시 한번 최고의 영접을 받았다. 무려 3시간여 동안 진행된 만찬에서는 여왕이 53년 대관식 때 사용한 고풍스런 유리잔과 함께 1985년산 적포도주인 '샤또 그뤼오 라로스 상 줄리앙'이 나왔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만찬사에서 "본인이 즉위했을 당시 한국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고 말하고 "불행하게도 50년이 지났음에도 한반도는 아직 분단된 채로 남아 있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여왕은 또 "필립공(에딘버러공)과 내가 5년 전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고 우리는 방문했던 곳마다 한국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던 것을 매우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국 방문을 회고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5년 전, 한국에서 보여주신 폐하의 따뜻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고 화답했다. 노 대통령은 또 "한국전쟁에 모두 5만7천명의 영국 젊은이들이 참전했고 사상자만 4300명에 이르는데 이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고 양국간 우의를 강조했다.
노 대통령 "나도 결심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나도 결심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계승 의지'뿐만 아니라 '극복 의지'도 분명히 밝혔다.
노 대통령은 "국내소비 어렵다"고 전제하고 "소비가 늘지 않아 어려운데, 무리하게 소비를 진작시키려고 했던 것이 현재 우리 경제에 큰 부담 주는 큰 원인이다"면서 "지금부터 소비를 회복시키는 과정에서도 무리수를 쓰지 않겠다는 게 제 결심이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제 임기동안에도 내 욕심으론 분명한 회복 기조를 바로잡아서 국민들이 자신감과 희망 갖고 힘차게 자기 일들 해나갈 수 있도록 하려 하지만 아울러 제 임기 동안에 발생한 원인이 그 다음에 또 새로운 경제 부담되는 일은 절대 없게 하겠다고 결심하고 있다"면서 "인기가 좀 떨어지더라도, 경제 어려워서 원성이 빗발치더라도, 원칙은 흐트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뿐만 아니라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반드시 풀어낼 거고 그게 단지 핵문제 푸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풀기 위해 회담 테이블 앉았던 6개 국가가 앞으로 동북아가 상호간에 협력하고 서로 공동의 번영을 꾀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확실히 다지고 번영 추진하는 논의의 틀이 되도록 만들도록 준비하고 있다"면서 "전화위복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고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의 긴장문제가 해결되고 평화 번영 시대 들어서면 동북아가 가진 자원의 크기를 생각해 보라"고 반문하고 "엄청나다"면서 "그게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고 확신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장애가 없는 거 아니겠지만 한국 국민들의 뜻을 벗어나는 걸 누구든 강행할 수 없다"면서 "어느 나라라도 그렇게 할 수 없고 국민역량이 그만한 걸 담보한다"고 주체적인 국민역량을 역설했다.
마치 입을 맞춘 듯 손발이 척척 맞는 전·현직 대통령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영국 국빈방문 하루 전날인 11월30일 '21세기와 한민족'을 주제로 열린 건국대 특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문제에 대해 열성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적극 두둔해 눈길을 끌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후 처음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날 강연에서 한 청중의 질문을 받고서 "내가 볼 때 노 대통령이 남북문제 대단히 열성적으로 잘하고 있다"면서 "남북문제만큼은 여야 모두가 당 입장을 떠나 협력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남북문제에 대한 초당적인 협력을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최근 정부 여당의 정책을 둘러싼 '좌파' 논란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서 좌파나 이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이고 시장경제이고 복지사회"라며 "한 두 사람이 특별한 얘기를 한다고 몰아세울 필요는 없고 국민여론을 통합시켜 나가면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1월9일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 참석차 유럽을 방문해서도 "그동안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거부하고 확실한 보상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서 미국이 전향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북핵문제 및 6자회담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한 노 대통령의 'LA 선언' 직전의 일이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충분히 가능합니다…그동안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거부하고 확실한 보상 의사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제 부시 행정부 2기에 들어서면서 북한 핵문제 해결에 대한 유연한 대책이 발표되기를 한국민은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전쟁을 반대합니다. 북한 핵도 반대합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해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지난 2년을 되짚어보면, 대북송금 특검 수용으로 서먹서먹해진 전·현직 대통령의 관계는 대북송금 관련자에 대한 사법처리와 분당(分黨)으로 김 전 대통령의 대북 '햇볕정책'을 지지한 평화세력과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의 이탈로 이어졌다.
사실 하늘 아래 '최초'인 것이 어디 있으랴만, 처음부터 두 사람은 2인3각 관계였고, 노 대통령의 성공은 곧 김 전 대통령의 성공이었다. 그런 점에서 뒤늦게나마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두 전·현직 대통령의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언행을 보이는 것은 두 사람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도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국운이 상승할 길조다. God Save The President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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