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10회

등록 2004.08.26 07:31수정 2004.09.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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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춘.”
“예. 대부”
“균대위에 대해 따로이 조직을 가동시켜 알아 봐. 그간에 걱정은 많았지만 미루어 놓았던 일이야.”
“알았어요.”
“실수하지 말고 차근차근...”

자춘이 영 미덥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제가 한두살 먹은 어린앤가요.”

두 사람만 있게 되자 마치 부자간의 대화 같다.

“균대위의 일이 막중해서 하는 말이야. 다른 지부에서도 알아 보고는 있지만 정확한 것이 나오지 않아. 더구나 움직이지도 않았고...”
“그들의 움직임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게 홍무 25년이었지요. 남옥(藍玉) 대장군이 역모죄로 처형되던 그 해던가 ...”

타인이 있을 때에는 멍청한 듯이 보이던 자춘은 어느덧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선황(先皇)과 균대위의 끈은 누가 가지고 있었을까요?”


선황이라 하면 명 태조를 가르킨다. 상대부의 시선이 자춘을 향했다.

“분명 선황께서는 직접 움직이시지는 않았는데.....”


자춘은 실마리가 될 중요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선황만이 아는 독립조직이었을까요? 아니면 상황에 따라 조직되던 임시조직이었을까요?”

그의 의문은 상대부에게 묻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묻는 것이었다.

“선황 때 지출장부를 보면 해마다 명목은 금의위 쪽으로 나간 것으로 되어 있지만 금의위 쪽에서는 수입으로 잡히지 않는 막대한 재정지출이 있었죠.”

상대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도 생각하고 있었던 바였다.

“제법이구나. 더 파고 들어가 보아라.”

12살 고아로 떠돌다 자신의 눈에 띄었던 아이였다. 외로웠기 때문에 거둬들인 아이였고, 키우고 가르쳤다.

“남앞에서는 좀 더 자신을 갈무리하고....”

항상 상대부는 자춘에게 가르쳤다. 너무 똑똑하면 일찍 시들기 쉽다. 더구나 환관이란 언제나 그늘에 있어야 하는 위치다.

“황상의 지위는 아직 완전하지 못해. 그것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잘 알고 있어요.”

아직도 영락제가 황위를 찬탈한 것에 대해 반발하는 세력이 곳곳에 잠재해 있었다. 그것을 제거해야하는 일이 상대부의 일이다. 그는 현 황제인 영락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 있었다. 아니 그 뿐이 아니라 환관들 대부분이 그랬다. 그들의 부와 지위는 현 영락제가 만들어 주었다.

명 태조 주원장은 환관들의 폐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태조는 명을 건국하고 나서 환관들에게는 고위관직을 주지 않았고, 크게 활용하지도 않았다. 환관들은 관리들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해야 했으며 황궁 내에서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지냈다.

하지만 영락제가 북경에서 기병했을 당시 환관들은 금릉 내의 모든 기밀을 영락제에게 제공했고, 그 정보들은 영락제에 투항한 몽고 기병군과 함께 영락제의 숫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4년간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황위에 올랐고, 환관들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다. 이제는 관리들이 환관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이러한 혜택을 계속 누리려면 영락제의 황권이 튼튼해야 한다.

상대부는 자춘을 바라보았다. 자춘의 나이 십팔세 되던 해 그는 직접 자춘의 남성을 거세했다. 이런 세상이 오리라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궁 밖으로 내 보내고 싶지 않았고, 나간다 하더라도 큰소리치지 못하고 살 바에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춘은 의외로 자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중추절(仲秋節)인가....? 그 때까지는 일을 마무리 해 봐.”

상대부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 × ×

삼년간의 공백은 너무나 컸다. 삶의 의욕을 잃은 채 팽겨쳐 버린 삼년(三年)은 그에게 너무나 큰 시련을 요구했다. 유연하던 근육은 모두 녹슨 쇠처럼 삐꺽거리고, 혈(穴)에는 탁기만 응어리져 있었다. 가까스로 대혈만을 건들며 소주천(小周天) 한 그는 장절 하구연의 구섬분천에 당한 가슴의 상처가 쉽게 치유될 것이 아님을 느꼈다. 겉의 상처는 시일이 흐르며 아물면 그만이지만 대혈 몇군데는 기혈이 역류되어 막혀가는 상태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복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는 쓰러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기혈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천천히....조금씩....) 그는 초조해지는 감정을 다스리려 애썼다. 단전으로부터 오르기 시작한 진기가 유문혈(幽門穴)에서 막히기 시작하면서 중요대혈인 거궐형(巨闕穴)에 이르니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장절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은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번 시간은 단 이틀 뿐이었다. 그 안에 자기의 몸을 예전으로 만들어야 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는 무리하게 다시 한번 진기를 끌어 올려 유문을 지나 거궐혈에 맹렬히 부닥쳐 갔다.

“억---!”

그의 입에서 저절로 비명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울컥 올라오는 핏덩이. 거궐혈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머리가 하애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

처녀 특유의 긴장감과 조심성 때문이었을까? 잠결에 무슨 소린가 들은 것 같았다.

“......?”

그녀는 언제 잠들었는지 얼마나 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억지로 눈을 떳다. 그녀는 운기하는 자청을 지켜보며 두 다리를 가슴까지 끌어 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열흘간의 피로와 조금 쉴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그런 자세로 그냥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자청은 가부좌의 자세가 아닌 사지를 벌린 채 널부러져 있었다. 아마 그녀가 잠결에 들은 소리는 그가 널부러지는 소리였던 것 같았다. 입가의 선연한 핏자국과 굵은 식은 땀으로 얼굴은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안이했다고 자책했다. 겉으로는 표시내지 않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자청의 상태가 어떤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의술에 탁월한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술에 입문한 적이 있었던 그녀였다. 그녀는 자청에게 다가갔다. 온몸이 불덩이였다. 열이 난다는 것은 겉의 상처 뿐 아니라 내부의 상처에도 화농(化膿)이나 열상(熱傷)이 있다는 말이다.

“................”

그녀는 상황이 무척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놔 둔다면 생명을 잃을 런지도 몰랐다. 그녀는 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산속의 샘은 차갑다. 그녀는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얼마 동안은 그가 그녀를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를 지켜주어야 했다.

(3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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