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에 대고 맹세를?... 주목할만한 이 주의 새 책들

<가족> <배꼽 아래 10Cm> <환희와 열정의 지구촌 축제기행> <명화의 비밀>

등록 2003.10.07 14:03수정 2003.10.0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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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슬픔과 눈물의 공동체
- MBC 다큐 제작팀의 못 다한 이야기 <가족>


북하우스
삶 혹은, 인생이란 단어 속에는 기쁨보다는 슬픔, 웃음보다는 눈물이 좀 더 많은 비율로 녹아 있다. 이 비율은 재벌과 가난뱅이가 다르지 않고, 또한 대통령과 서민이 다르지 않다. 하여 수많은 철학자들은 "슬픔은 인간의 주성분"이란 말로 간단찮은 세상살이를 푸념하기도 했다.


슬픔과 눈물로 점철된 인간의 삶.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그 고통의 길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존재는 없는가?

MBC 다큐멘터리 '가족'의 제작진이 800여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내놓은 책 <가족>(북하우스)은 위 질문에 "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라고 답하고 있다. 기쁨과 웃음이 아닌 슬픔과 눈물의 공동체라 할 가족.

지난 9월21일 밤부터 방송되고 있는 MBC의 다큐 '가족'은 여러 사람을 울리고 있다.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는 가족. 잡다한 방송장치나 장황한 꾸밈없이 단순한 인터뷰만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대체 가족이 왜 중요한 존재인지를 구구한 설명 없이도 시청자들에게 절절하게 전달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책 <가족>은 바로 이 다큐 프로그램에 다 담지 못한 사연들을 실었다.

거기에는 내리 딸 여섯을 낳았다는 이유로 평생 더운 밥 한번 먹지 못하고 살아온 할머니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있고, 반항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전락한 늙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한숨이 있으며, 여기에 더해 맨몸 맞대고 살아오면서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하소연까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슬픔과 눈물 속에서도 서로의 체온에 기대 힘겨운 발걸음으로 세파를 헤쳐 가는 가족. 그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확인한 한 딸은 방송국 시청자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벌써 잊어버렸어요. 둘째 아이 힘들게 낳으면서 '엄마'하고 울었는데,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해서… 우리 엄마도 이렇게 힘들게 날 낳으셨구나. 정말 잘해드려야지 했는데 벌써 잊어버렸더라구요. 잊어버린 마음 찾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다큐멘터리 '가족'이 아닌 책 <가족>을 읽은 독자들 역시 이런 마음이 아닐지.

성기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모험
- 테리 해밀턴의 <배꼽 아래 10Cm>


미토
'태초에 자지는 없었다. 보지도 없었다. 동물의 화장실 노릇과 생식을 담당하는 일종의 다목적 공간인 배설강(cloaca)이 존재했을 따름이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첫머리를 장식한 발칙한(?) 책이 출간됐다.

인간 성욕의 역사와 발전과정을 연구해온 테리 해밀턴(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의 <배꼽 아래 10Cm>(미토·박소예 역).

성(性)과 성기에 관한 담론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오랜 기간 '금기와 은폐의 영역'이었다. 제대로 된 성담론은 "거침없이 입에 올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는 해밀턴 교수는 이번 책에서 성기를 둘러싼 동서양의 전설과 괴담, 거기에 과학적 상식까지를 동원해 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벽을 허물고 있다.

이를 위해 해밀턴은 <카마수트라>와 <소녀경> 등 고전 성애물에서부터 '죠스'와 '고질라' 등 헐리우드 영화, 심지어 <성경>까지 경계를 두지 않고 인용한다.

<배꼽 아래 10Cm>를 통해 새롭게 접한 상식 하나. 옛날엔 남자들이 신념을 맹세할 때 자신의 성기에 대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단다. 예컨대 이런 거다. "나는 오늘의 이 원수를 갚기로 내 페니스에 대고 맹세한다." 재밌지 않은가?

일상을 떠나 축제의 현장으로!
- 허용선의 <환희와 열정의 지구촌 축제기행>


예담
도시에서의 일상이란 다장조의 지루한 동요와 같다. 날이면 날마다 "제발 눈이 확 뜨일 대단한 일이 내게 일어나게 해다오"라고 간절히 기도해보지만 요절한 시인 박정만의 말처럼 이제 이 땅엔 혁명도 안타까운 그리움도 없다. 마른 빵을 씹는 것만 같은 무미건조한 하루하루.

세계 90여 개 국을 여행하며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소개해온 사진작가 허용선의 <환희와 열정의 지구촌 축제기행>(예담)은 우리에게 잊고 살았던 '환희'와 '열정'을 추억을 잠시나마 돌려준다.

저자는 아프리카 오지 원주민들의 전통 부족축제에서부터 섹시함으로 점철된 브라질의 삼바축제, 100만 개의 토마토가 폭죽처럼 터지는 스페인 뷰놀축제까지를 두루 둘러보고 에너지로 넘쳐나는 그곳의 숨소리를 사진과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기기묘묘한 가면이 넘쳐나는 스위스의 크로이세축제가 실은 추운 겨울 먹을 것이 떨어진 걸인들이 마을로 내려오며 창피함을 피하려고 가면을 쓴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것까지 꼼꼼히 조사한 허용선의 세심함은 책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사진 같은 그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 남경태 역 <명화의 비밀>


한길아트
숨소리에 흔들리는 콧수염과 미세한 피부모공까지도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정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보면 놀라울 때가 있다.

그 그림의 제작 연대가 자그마치 몇 백년 전이라는 사실은 '대체 저걸 어떻게 그렸을까'라는 의문을 동시에 부른다. 그 의문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것이었나 보다.

앨런 존스, 키타이 등과 함께 60년대 영국 팝아트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데이비드 호크니는 '과거 화가들이 보여주는 그토록 정밀하고 생생한 묘사 뒤에는 대체 무엇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좇아 2년을 소비했고, 그 성과물로 <명화의 비밀-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한길아트·남경태 역)을 내놓았다. 고래로부터 명화라 일컬어져온 그림들의 비밀을 푸는 또 하나의 열쇠를 만든 것이다.

호크니가 명화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제시한 것은 '렌즈'와 '거울'. '그 시대 화가들이 그려낸 작품의 기법이 실상은 사물을 렌즈로 자세히 관찰하는 노동자의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호크니의 추론은 발표되자마자 '영원불멸'과 '천재화가'를 신봉해온 유럽 미술사학계를 발칵 뒤집었다. 호크니가 옳은지, 미술사학자들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제 독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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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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