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우반
생활의 상향평준화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먹을 것인가'라는 처참한 고민대신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즐거운 고민을 가져다줬다. 최근엔 한국에도 음식·요리전문 케이블 TV까지 생겼으니 이제 '먹는다'는 것의 문제는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닌 21세의 화두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이런 추세에 발 맞춰 음식칼럼 혹은, 맛집기행 등을 묶어낸 책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출간러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런 책들에는 그저 '음식' 이야기뿐 음식을 통해 다른 것을 성찰하는 고민이 빠져있다. 최근 출간된 <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와 <꿈을 끼운 샌드위치>(삼우반)는 바로 이런 아쉬움에 뭔가가 허전했던 독자들의 무릎을 치게 한다.
1946년 합동통신사 기자를 시작으로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등에서 명쾌한 문장으로 필명을 날리다가 75년 동아일보 광고사태 때 언론계를 떠났던 홍승면(1983년 타계)이 20여 년 전에 출간한 <백미백상(百味百想)>을 재출간한 <대밭에서...> <꿈을 끼운...>의 가장 큰 미덕은 음식을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는 풍류와 운치가 곳곳에 묻어있다는 것이다.
그 미덕은 세기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감성적 즐거움과 함께 지적인 만족감을 넉넉하게 제공한다.
저자는 꽁치와 새우젓, 탕평채와 비빔밥을 설명함에 있어 <동국세시기>와 <자산어보> <조선상식문답> 등 우리의 고전과 소동파와 도연명, 처칠과 토마스만 등 동서양 학자와 정치가를 인용하는 독특함을 보인다.
책에서 무시로 만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홍승면의 애정과 해박한 지식은 '음식이란 그저 배를 채우는 수단'이라는 세간의 말들이 터무니없는 낭설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옛날에는 흔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먹거리를 안타까워하며 환경보존을 역설하는 저자의 말에서는 현대사회의 환경파괴를 예언한 선지자의 모습까지 읽힌다.
홍승면의 음식칼럼을 읽는다는 것은 음식을 통해 인생을 읽어내는 기쁨인 동시에 음식과 함께 인생을 곱씹어 보는 즐거운 체험에 다름 아니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는 죽순(竹筍) 먹는 것을 고풍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성(性), 수치와 폭력의 역사
- 한스 페터 뒤르의 <은밀한 몸> <음란과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