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심>의 박정희 연출한상언
- 연습과정을 지켜보았다. 공연 형태가 극적 구조가 강조된 드라마적인 연극과는 다르다. 연극을 접근하는 방식과 관점이 다른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극적 구조가 강조되어 있는 작품을 많이 올린다. 그렇다고 그와 반대로 '극적 구조를 버리고 이미지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 따라 다르다. 일단 이야기 구조에 있어 드라마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게 필요하면 그 구조를 찾아간다. 우리 나라 연극계가 이야기 중심의 연극을 하니까 저 같은 경우는 양식적으로 조금 다른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이야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모티프를 차용해서 각색 할 적에 인문학적인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노력을 한다. 이야기가 중심이 된 연극을 한다 치더라도 대사에서 오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찾아내야 하고, 구태의연하게 이야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뭔가 새로운 것들을 찾아낼 것이다."
- 현재 연습중인 작품 제목이 <평심>(平心)이다. 자주 쓰는 말은 아니다.
"영어로 하면 어떻게 될지 한번 생각해봤다. '오더너리 하트(ordinary heart)인가? 불교에서 일상의 마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평심을 찾는다. 인생에 있어 욕망이나 좌절이 몰려올때 항상 마음을 평정함으로써 그것을 흘려 보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평심이라고 한다.
이번에 박상륭 선생님의 작품을 과격하게 모티프만 차용해서 거의 재창조를 했다. 박상륭 선생님의 소설 <평심>은 싯다르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연 초반에 꼬마애가 읽는 것이 <평심>의 한 부분이다.
박상륭 선생님의 <평심> 개념은 파도가 몰아치는 방파제를 생각하면 된다. 방파제는 무정(無情)이다. 끊임없는 파도는 유정(有情)이다. 그림상으로 그 두 개가 같이 있는 것. 방파제가 있는 바다의 모습이 평심이다. 욕망이 일어나는 부분과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 그 두 개 자체의 상호 모순되는 것이 바로 평심이라는 것이다. 방파제가 없으면 파도에 의해 쓸려 다니고 방파제가 있어도 아무런 욕망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평심이 아니다."
- 박상륭 선생의 소설을 무대화 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박상륭 선생님은 제가 생각하기에 천재이다. 동양적인 것만 아니라 동, 서양의 종교에서 추구하는 본질적인 것들을 말씀하신다. 정신적인 스케일이 크다.
| | | [미니 인터뷰] 음악/드라마투르그 최정우 | | | |
- 음향과 음악이 독특하다. 음을 즉석에서 만들기도 하는데.
"일단 의도한 바는 아니다. 영화음악도 그렇고 연극 음악도 그렇겠지만 보통 어떤 개념을 가져와서 적재적소에 쓰게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드라마투트그이기도 하니까 기회가 좋아서 배우들의 리딩때부터 참여를 했다. 그렇게 배우들과 연습과정을 함께 하면서 음악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때, 그때 이런 것이 어울리겠다 해서 만들다 보니 음악이 라이브한 형식이 되어서 단순히 녹음으로 하기엔 조금 어렵게 됐다. 그러다보니 음악이 곡으로 독립되어 있기 보다 섞여들어 간다고 할까. 아니면 독립된 음악의 개념이 아니라 대사들과 어울리는 소리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과 같은 방향으로 형성이 되었다."
/ 한상언 | | | | |
연출은 사실 허망한 직업이다. 왜냐하면 공연을 올려놓고 보면 사실 연출 것은 없다. 연출이 제일 중점적으로 생각해야 될게 작업 과정에선 컨셉이지만 전체적으로 하모니, 조화를 생각해야 된다. 그러니 공연을 올려놓고 보면 연출은 없다. 과연 여기서 이런 직업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생각해 봤다.
우리 나라에 박상륭 선생님 같은 분이 있고 그 분의 정신적인 스케일을 대중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김승옥 선생님의 <무진기행>같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듯이. 왜냐하면 문학은 민족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사고가 언어로 지속되는 것이니까.
또 소개라는 측면에서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을 조금 더 밀도 있게 알아서 그것에 맞는 작품으로 그를 알리고 싶다. 윤이상 선생님은 우리 나라에 이데올로기 때문에 못 오시고 돌아가셨다.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대중들에게 정신적 고향이 될 수 있는 그런 분들의 작품을 대중과 만나게 하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다.
박상륭 선생님은 <남도>, <열명길> 그런 것으로 만났다. 너무 본질적인 것들을 이야기하셨다. 선생님 문학을 '대속(代贖)의 문학'이라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다고 한다. 선생님 작품 <죽음의 한 연구>는 계속 성교를 하고 죽이고, 성교를 하고 죽이는 그런 엽기적인 이야기이다. 그것은 선생님이 그러한 유정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마치 무당처럼 쓰면서 해방시켜준다. 그래서 '대속의 문학'이라고 한다. 또한 문체가 굉장히 세련됐다. 맨 처음 접하기는 힘든데 읽다 보면 정말 한국말의 그 세련됨에 놀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