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권오일한상언
- 공연중인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번이 5번째 연출작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일텐데 작품에 관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은 시공을 초월한다.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 갔다 놓아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래서 관객들이 좋아한다.
이 작품은 발달되는 물질문명과 급변하는 사회현상에 눌려서 인간이 외소해지고 처참해져서 결국은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너무나 리얼하게 그려놓은 작품이다. 1940년대 미국의 현상을 주제로 한 작품이지만 오늘 우리 나라 현실에도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작품이다. 아파트 틈에서 조그마한 단독주택을 지키기 위해 25년동안 주택부금을 붇고, 평생 고생을 해서 결국 집이 자기 것이 되니까 거기 살 사람이 없다. 바로 우리 현실과 너무나 부합되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특성 중에서 가장 와 닿는 것은 인간의 심리 분석이다. 또한 극적 구성이 아주 탄탄하다. 작품이 현실이면 현실 그대로 쭉 흘러가는 게 보통의 흐름인데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제4의 벽을 허물어 자유롭게 공연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옛날 것이 현실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이야기들이 중간중간에 등장해서 옛날을 회상하게 된다. 이러한 특수 기법을 구사하면서도 작품이 쉽게 와 닿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내가 지금 5번째 공연인데 할 때마다 새로운 감흥이 샘솟는다. 일단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가족이다. 큰아들과 아버지가 계속 다툰다. 그런데 그게 서로 미워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 쌓여서 싸우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 관한 기대가 너무 크다. 우리나라 아버지들이 자식에 대한 기대가 큰 것처럼. 거기에 부응을 못하니까 아들에 대한 잔소리가 심하고 아들은 적응을 못한다. 평생토록 아버지가 아들을 잘났다고 이야기 해줬기 때문에 아들은 어디도 적응을 못하고 건달이 됐다.
그리고 여기 등장하는 어머니, 윌리 로먼의 부인인 린다가 등장하는데 이건 바로 우리 나라의 어머니이다. 윌리는 외골수로 고집 세고 심술 잘 부리고 투정 잘 하고 걸핏하면 아내를 윽박지르고 말도 못하게 하고 이러면서도 때로는 따뜻한 애정을 표현한다. 부인이 남편을 섬기는 모습은 꼭 우리나라 어머니이다. 동양적인 어머니이다. 아들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이것도 꼭 우리나라 가정에서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베푸는 그런 사랑이다. 그래서 이 연극은 처음에도 언급을 했듯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 갔다놓아도 현실과 부합되고 잘 이해되는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는 작품이다."
- 주인공 윌리 로먼역은 중년 이상의 배우라면 꼭 해보고 싶어하는 역입니다. 이전 공연에선 전무송씨와 윤주상씨가 윌리역을 맡았고 이번에는 이호재씨가 그 역을 맡았습니다. 이호재씨에게 윌리역을 맡긴 이유와 윌리역을 맡았던 세 배우의 연기를 비교한다면?
"주인공 윌리 역을 1대, 2대는 전무송씨, 3대, 4대를 윤주상씨, 이번 5대는 이호재씨가 맡았다. 세 사람 모두 특색이 있다. 1대, 2대를 한 전무송씨는 상당히 감성적이다. 대사도 아주 부드럽다. 2대, 3대의 윌리 윤주상씨는 현실적인 윌리이다.
철저한 작품분석을 토대로 배역에 접근하는데 그야말로 계산된 연기를 하는 연기자이다. 그리고 이번에 이호재씨는 양면을 다 지니고 있는 배우이다. 이호재는 우리나라 배우 중에서 대사 구사법이 가장 정확하다. 구강조직이 가장 잘 된 배우이다. 어쨌든 리얼리즘 연극은 대사가 바탕이 되니까 대사 구사를 제대로 못하는 배우는 리얼리즘 연극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이호재는 윌리로서 매우 성공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
- TV연기자로 유명한 전양자씨가 린다역으로 24년만에 다시 무대에 섰습니다. 전양자씨를 다시 무대에 세운 이유가 궁금합니다.
"전양자씨 이름은 관객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많이 들었을 것이다. 젊을 때는 연극을 많이 했다. 광장이라는 극단에서. 이호재씨와도 두 편 정도 같이 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 24년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왔다. 솔직히 연출자로서 캐스팅을 할 때 이 배우가 20 몇 년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와서 성공 할 수 있을까 미지수였다. 그래서 선뜻 캐스팅을 망설였는데 이호재씨도 그렇고 주변에서 전양자를 아는 사람들이 잘 할거라고 해서 용기를 냈다.
캐스팅을 해놓고 보니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력이 탄탄하고 책임감이 있다. 스타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전양자라는 스타도 자기가 그만큼 책임 있게 노력하고 자질이 있고 하니까 그 정도 레벨에 올라 갈 수 있는 것이다. 연습태도도 성실하고 감각도 좋다. 연극은 보통 두 달, 석 달 같이 지내야한다.
우리도 15명정도 되는 식구들이 스텝까지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고 같이 생활했다. 그런데 인화가 안되면 연극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연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인데 전양자씨는 연극을 떠나있던 사람이다. 이 사람이 와서 연극적인 분위기에 얼마나 적응할까 하는 것도 사실은 걱정이 됐다. 그런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자기가 솔선해서 '식사하러 가자', '소주 한 잔 하자' 등 아주 후배들도 잘 다스려주고 분위기도 잘 맞춰주고 그래서 아주 편하게 연극을 했다.
이번에 30대 중반의 배우들이 6명 나온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연극만 하는 배우들이다. 이들이 공부하는 자세로 덤비니까 작품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젊은 혈기도 좋고. 50대 두 사람이 나오는데 이봉규, 한상혁 이 두 분은 연극을 20년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중간 허리 역할을 잘해주고 그래서 이번에 연출이 아주 쉽게 편하게 연출했습니다. 관객들이 와서 보시면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