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11 12:00최종 업데이트 24.07.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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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녹색연합 새친구 캠페인 중. 77번 국도 충남 태안 송남교차로 방음벽에 새충돌 저감을 위한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녹색연합

 
한 해 1000만 마리, 하루 3만 마리의 새가 투명 유리창과 같은 인공구조물에 부딪혀 죽는다.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새들은 애초에 투명한 유리창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 눈이 양옆으로 달려 있어서 사방을 빠르게 둘러보며 천적을 피할 수 있는 대신, 정면에 있는 물체와의 거리를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날아갈 때 자신 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지 않는 특성도 갖고 있는데, 유리로 반사된 환경을 현실로 착각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하늘을 날다가 반짝이는 건물, 투명 방음벽, 아파트 유리창을 장벽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쉽게 부딪히고 만다. 그건 새에게 매우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비행에 최적화되어 있는 새의 얇고 속이 비어있는 골격 구조상 충돌을 버텨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립생태원이 추정한 년간 1000만 마리 개체 수의 죽음도 애석한 일이지만, 야생조류의 개체수가 빠르게 줄어들면 장기적으로 생태계에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생태계 건강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네이처링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연간 3억 5000만 마리 이상, 캐나다에서는 2500백만마리가 희생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네이처링은 '자연활동 공유플랫폼'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검색하는 도구로서, 다양한 자연활동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오픈 네트워크다. 자연을 기록하는 회원들이 생태계 보전에 기여하는 시민과학자가 되는 것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네이처링은 '우리나라(한국)도 도시 밀집도에 따른 건물 유리벽과 투명방음벽의 증가가 야생조류 개체군 몰락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하며, 주변에서 발생하는 야생조류 유리벽 충돌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있다. 

새를 살리는 5X10 규칙... 점으로 새를 살리는 중입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 황구지교에서 한국썬팅필름협동조합 관계자들이 야생조류 충돌 방지 필름을 부착하고 있는 모습. 2021.6.1 ⓒ 연합뉴스

 
높이 5cm, 폭 10cm 공간 사이로 새들은 비행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건물이나 구조물 유리창에 5x10 간격으로 점을 찍거나 선을 표시하면, 자신들이 지나갈 수 없다고 인지한 새들은 비행 경로를 바꾼다. 

녹색연합이 2019년부터 새가 유리창을 인식하지 못해 부딪혀 죽는 일을 막기 위해 스티커 부착 활동을 벌이는 이유다. 새 충돌 저감을 위한 '새친구' 캠페인이다. 투명 방음 벽면에 새 충돌 저감 스티커를 부착할 장소와 구간을 정하고, 참여할 시민들을 모집한다. 인원이 모집되면 스티커 부착에 앞서 먼저 교육을 진행한다. 새 충돌 문제의 원인, 현황, 해결방법과 더불어 모니터링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당일 현장에 도착하면 이미 방음벽 아래 죽어있는 사체를 발견하기도 한다. 새 충돌 저감 조치가 필요함을 각인하는 순간이다.  

시민들은 스티커 부착 방법과 안전 수칙을 안내받은 후 작업을 시작한다. 스티커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우선 유리창의 먼지를 깨끗이 닦고 건조시키는 일부터 시작한다. 단순한 작업이긴 하지만, 방음벽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작업은 인력이나 시간·비용이 많이 든다. 투명벽을 처음부터 새 충돌 저감 스티커를 부착한 채로 설치했더라면 이 번거롭고 어렵고 어찌 보면 위험해 보이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었을까?

그렇게 수차례 모니터링, 캠페인을 진행하며 꾸준히 새 충돌 문제를 알려왔고, 나아가 수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지지·요구에 따라 드디어 지난해 6월 야생생물법이 개정되었다. 인공구조물에 부딪히거나 추락하여 죽는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공기관이 관리하고 필요한 조치를 시행하도록 법이 바뀐 것이다. 야생생물법개정안 (법률명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 8조 2)에 따라 공공기관은 건축물, 방음벽, 수로 등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동물 충돌·추락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인공 구조물을 설치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법이 바뀐 지 1년이 지났다.   

새 충돌을 막기 위한 야생생물보호법 개정, 그러나... 
 

녹색연합 새친구 활동 직전에 방음벽 아래에서 발견된 촉새 (77번 국도 충남 태안 송남 교차로) ⓒ 녹색연합

 
법이 바뀐 것은 분명 성과다. 하지만 처벌조항 등을 비롯한 강제조항이 없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잘 적용될 지는 의문이었다. 개정 법률 시행을 앞두고 작년(2023년) 녹색연합에서 서울 시내 25개 구청을 대상으로 유리창 새 충돌 저감조치를 시행하고 있거나, 계획이 있는지 물었을때도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했다. 25개 자치구 중 구로구, 금천구, 노원구 3곳만이 저감조치를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로구는 추진 계획을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보내왔을 뿐, 대부분의 자치구가 저감조치를 시행한 적도,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무응답인 자치구도 15곳이나 되었다. 

1년이 지나 녹색연합은 서울 시내 25개 구청을 대상으로 유리창 새 충돌 저감조치 시행 여부에 대해 다시 물었다.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설문에 응답한 자치구가 8곳에 불과했다. 물론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유의미한 새 충돌 저감을 위해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지자체도 있었다. 강동구, 관악구, 구로구, 노원구, 성동구, 중랑구는 개정 야생생물법 시행 이후 새 충돌 저감 조치를 시행했거나 계획하고 있었다. 1년 전 3개 자치구였던 것에 비하면 증가한 셈이다.

특히 강동구는 조류 충돌 저감 조치를 일부 구간에 시행하고 있었고, 관내 공공기관이나 회사, 단체 등에도 독려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또한 조류 충돌 저감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관악구도 관련 부처와 협력하여 저감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며, 예산 확보에 힘쓰고 있었다. 성동구도 올해 3월 몇몇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조류 충돌 저감 조치 시행을 독려한 바 있고, 올 하반기에는 국립생태원과 협업으로 직원과 시민을 대상으로 야생조류 인공 구조물 충돌 저감 교육과 활동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2024년 건축물·투명 방음벽 조류 충돌 방지 테이프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원을 신청한 자치구도 관악구청 1곳에 불과했다. 다른 자치구는 지원 사업 자체를 몰랐거나 지원 규모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환경부의 지원사업 공모는 투명 유리창 조류 충돌을 저감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동물 피해를 방지하는 정책의 필요성을 알리고 민간의 자발적 확산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민간의 참여를 독려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아쉬운 일이다.   

변하지 않는 사이, 죽어가는 야생조류들
 

태어난 지 약 2개월 된 멸종위기종 새호리기가 강남구의 한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어있다. 2023년 8월 12일 관찰기록 ⓒ ⓒ얌얌 at 네이처링

 
서울 자치구 곳곳에서 새 충돌 저감 조치 시행에 늑장을 부리는 사이, 건물 유리창에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수많은 조류가 충돌하는 사고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도 서울 강남구에서 멸종 위기인 새호리기가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네이처링에 기록된 데이터를 보면 천연기념물인 소쩍새(관악구)와 새매(서대문구)도 건물 유리창과 충돌해 죽었고, 칡부엉이(송파구)는 충돌 직후 얼마간 정신을 잃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23년부터 올해 2월까지 멧비둘기, 참새나 까치를 포함해 밀화부리, 박새, 소쩍새, 직박구리, 멋쟁이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울새, 흰눈썹황금새, 노랑지빠귀, 오색딱따구리 등 약 56개 종의 새가 유리창에 충돌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2023년부터 올해 2월까지 최근 1년 1개월간 시민들이 직접 기록한 서울 시내 유리창 새 충돌사고는 946건인데, 중복되어 기록된 충돌 흔적이나 종을 특정하기 어려운 개체의 기록을 제외해도 대략 383건이다. 그중 방음벽에 충돌하는 사고는 127건, 건물 유리창 충돌 사고는 143건이었으며 난간 등 기타 구조물에 충돌하는 사고는 113건이었다. 이 데이터는 새 충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이 서울 각지에서 발견한 새 충돌 사고를 자발적으로 '네이처링'에 기록한 것이므로, 실제 충돌 건수는 이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다. 

법이 바뀌는 것은 쉬운 과정이 아니다. 조문 하나를 더 넣기 위해, 단어 하나를 넣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시민들의 제안과 요구가 쌓여 국회에서 발의가 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본회의를 통과한다. 그러나 적극 행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조차도 무용해지기 마련이다.

지금도 유리벽 충돌로 죽어가는 수많은 새들이 더 이상 방치되지 않도록 서울시 자치구에 요구해보자!
덧붙이는 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녹색연합 응원하기! https://me2.kr/nEuW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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