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10 16:38최종 업데이트 24.07.1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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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들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개인택시 어때요?"

가끔 은퇴 전후인 사람들이 직업으로서의 개인택시에 관해 묻는다. 돈은 얼마나 벌 수 있느냐가 핵심이겠지만 그러기까지 겪어야 할 고난과 역경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빼놓지 않는다. 


은퇴 후를 고민하는 이들은 몇십 년 사회생활을 하며 온갖 일을 경험한 터라 질문이 막연하지 않고 구체적이다. 얼마 전에는 평범한 사무직 회사원으로 보이는 50대 여성이 택시에 타서 내릴 때까지 조목조목 개인택시에 대해 물어 보는데 벌써 아는 게 많았다. 

운전대를 잡는 이가 본인인지 남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지하게 따져보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요즘 부쩍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가 있다. 

2021년부터 차종과 관계없이 일반 운전면허로 5년 무사고인 사람도 일주일 양수 교육만 받으면 개인택시를 살 수 있게 되었다. 법인택시 무사고 3년 경력이라는 문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면서 개인택시 희망자가 급증했다는 사실은 3수 4수도 힘들다는 개인택시 양수 교육 예약 전쟁이 대신 말해주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4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993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19.2%를 차지하고 있고 2025년이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은퇴 후 직업으로 개인택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로망과 현실의 간극

지난달 택시에 탔던 점잖은 한 노인의 독백 같은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은퇴 후 삶에 대한 보편적 고민을 담고 있었다. 

"기사님, 제가 교육직에만 30년을 있다 은퇴했는데요. 한 1년은 정말 행복하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니 노는 것도 지루하고 목적도 없는 무료한 삶이 견디기 힘들어서요. 제가 잘하는 문서 작성이나 엑셀을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았는데 안 써줍니다. 조금 능력이 떨어져도 소통이 편한 젊은 사람을 쓴다는 거예요. 

그래서 경비 일이라도 하려고 자격증 따서 면접을 봤는데 이번에는 경력자에게 밀리는 겁니다. 면접관도 평생 순한 일만 하던 사람이 이런 험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대놓고 말하고요. 크게 돈 걱정은 없지만 그보다 더한 인생 걱정이 나이 들어 이렇게 닥칠 줄은 몰랐습니다. 일 없는 일상이 고통입니다."


현직에서 죽을 둥 살 둥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돈 걱정 없이 놀기만 하는 것도 유효기간이란 게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1년 혹은 2년일 수도 있는 그 기간이 분명 존재한다. 

오래전 시골로 귀농했을 때 도시에서는 로망이었던 흙길과 산과 들에 만발하는 꽃들과 맑은 공기와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집 앞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경이로웠다. 그렇게 2년 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처음의 경이로움이 익숙한 평범함으로 변해 있음을 느꼈을 때의 당혹감을 기억한다. 

로망과 현실의 간극은 크다. 예쁜 꽃도 만날 보면 식상해지는 게 연약한 인간의 마음이다. 휴가나 여행은 일하는 중에 보상으로 작용할 때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가치이지 그 자체가 삶이 되는 순간 노인의 말처럼 '지루하고 목적없는' 시간으로 변하기 쉽다. 

예컨대 900cc 뇌 용량을 가진 호모에렉투스가 사라지고 출연한 호모사피엔스의 1450cc 뇌 용량이 20만 년 지난 지금 인류의 뇌 용량과 같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인간의 지성이 직립보행 로봇을 만들어낸 현재도 300만 년 전 시작된 장구한 인류의 진화 과정 안에서 보자면 아직 우리 인간의 몸은 매일 먹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정글 숲을 헤매는 사바나 세계에 머물고 있다는 뜻을 수도 있다. 

일이 인간의 몸 안에 깊게 새겨진 생래적 차원의 숙명이라는 이 말의 진의는 진화인류학을 전공하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 두고 다만 나는 택시를 몰면서 알게 된 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쓴다. 

택시는 혼자 하는 일이다
 

요즘 택시미터기는 기계식이 아닌 전자식 터치형으로 진화했다. 차와 장비가 세련되게 진화해도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는 택시노동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다른 하나가 더 있다. 개인택시는 성실한 만큼 보상이 따른다. ⓒ 김지영

 
택시는 매일 적게는 6시간에서 많게는 12시간 이상 운전한다. 택시 운전하는 사람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크게 두 종류다. 생계형과 은퇴형이다. 6시간에서 8시간 정도를 운전하는 사람은 돈보다 일이 필요한 사람이고 8시간에서 12시간 이상까지도 운전하는 사람은 일보다 돈이 필요한 사람이다. 

어떤 유형이든 공통점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함께 오랜 시간 운전을 한다는 점이다. 내가 택시 운전을 하면서도 오랜 시간 좁은 차 속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를 찾아내지 못했는데 저 노인의 말을 곱씹어보니 답이 떠올랐다.

성취였다. 그것도 매번 다른 사람을 낯선 곳에서 태우고 내려주는 작은 성취의 반복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말하자면 크든 작든 목적 있는 일의 연속이 시간을 이겨내는 힘이었다. 만약 자동차를 주면서 매일 10시간을 아무 데고 상관없이 운전만 하라고 한다면 일당을 준다 해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건 견디기 힘든 무료함과 지루함이다. 제아무리 고급 차라도 마찬가지다. 그건 마치 돈 걱정은 없지만 일도 없는 은퇴 후의 지루함과 같다. 

매일 택시에 오르면서 시간을 잊고 일을 할 수 있는 이유였다.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고 또 다른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는, 매번 새롭게 갱신되는 짧은 시간이 쌓여 하루를 만들었다. 새로운 출발지와 목적지의 무한한 반복이 택시의 운명이었지만 그 반복은 곧 작은 성취의 연속이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원대한 꿈은 오히려 게으름과 포기의 명분이 되니 지금보다 딱 한 계단만 더 높은, 그러니까 지금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꿈을 가지라고 말해왔던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였던 셈이다.

그런 성취감이 삶을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고 그 발걸음의 총합이 잘나든 못나든 지금 내가 사는 삶의 모습이다. 그런 발자국을 만드는 일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적성에 맞는 일이면 더 좋겠다. 말하자면 로망이 현실이 되어도 동요 없이 지속되는 삶이다.

택시는 혼자 하는 일이다. 개인택시는 일과 보상을 스스로 정한다. 돈 버는 방식은 단순하고 매출도 그만큼 정직하다. 열심히 하면 보상을 많이 받고 게으르면 보상이 적다. 택시가 가진 독립성과 단순성은 내 성향과 맞았다. 

나는 복잡하게 돈 버는 일을 하지 못하지만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하려 노력한다. 그게 아니라도 나이 들어 돈은 단순하게 벌고 머리는 맑게 쓰자 했다. 택시가 가진 독립적 노동과 단순한 매출구조는 내 적성에 맞다. 

과거 회사에 다닐 때 점심시간이 곤혹스러웠다. 지금은 밥값을 '엔빵' 하는 차이만 있지 이삼십 년 전에도 회사 점심은 동료들과 어울려 먹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그때도 나는 점심시간 직전에 먼저 조심스레 자리를 떠서 혼자 식당으로 향했다. 손에는 언제나 그날 신문이 들려있었다.

혼잡한 식당 거리를 지나 일부러 외진 단골 식당을 찾아 백반을 먹으면서 네 번 접은 신문을 돌려가며 읽는 시간이 내겐 가장 황홀한 시간이었다. 정말 좋았던 것이 활자인지 혼자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읽는 것과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시 점심 문화에서 '혼밥'하는 나는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내에게는 매우 미안하지만 나는 부동산이나 주식 등 '투자'라는 단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자본주의적이지 못한 사람이고 돈과 관련해서는 더욱 복잡한 것이 꺼려지는 단순한 사람이다. 다만 주어진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려 노력하고 보상까지 정직하면 더 없이 만족하는 성향이다. 

개인택시를 하기 전 법인택시를 해보라
 

18년 전 귀농 후 유정란 농장을 했다. 생명을 기르는 소중한 일이 현실에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았다. 다시 도시로 나와 택시를 하는 지금도 충분히 그 때만큼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 김지영

 
회사와 도시를 떠났던 40대 이후로 단순노동에 끌렸던 이유가 다 있었다. 택시가 20대 후반에 한 번, 제주에 살던 40대 후반에 또 한 번, 그러다 서울로 와서 60을 바라보는 지금 다시 직업으로 다가온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혼자 일하고 단순하게 노동하며 일하는 만큼 벌 수 있는 직업에 대한 선망이 자연스럽게 나를 개인택시로 이끌었다. 

나이 들어 현역에서 은퇴하면 개인택시를 사서 일을 놓치지 않되 자유롭게 살겠다는 소망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아이들에게 가지지 말라 했던 원대한 꿈이었다. 법인택시 3년 무사고 경력과 억대에 이르는 면허 값은 내가 넘어서기 어려운 벽이었다. 

그런데 자격요건이 완화되었고 어렵사리 돈도 마련되어 60이 안 된 좀 이른 나이에 개인택시를 시작할 수 있었다. 로망이 현실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돈을 주고 몸까지 쓰면서 실패한 귀농에서 (농사는 내게 맞는 직업이 아니었다는 것과 함께) 배운 바를 나는 잊지 않았다. 

1년 6개월간 투잡으로 법인택시를 운전하며 택시가 내 삶이 되었을 때의 현실을 미리 체험해 본 후였다. 두 가지 일을 해내느라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평범한 일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진상손님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택시를 해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내 생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나와 함께 할 택시라는 직업을 사람들이 물을 때 나는 선뜻 해보라고 권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설명할 수 있는 사실만을 전달한다. 그저 손님을 태우고 내리는 단순한 노동처럼 보이지만 말로 설명되지 않는 비언어의 영역이 택시 안에도 존재한다. 

그건 당사자가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다. 똑같은 경험도 해석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우린 각자가 너무 다른 존재이고 너무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은 확정적이지 않은 조건에서의 사전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개인택시를 하기 전 법인택시를 해보라는 말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내가 살아온 인생의 경험으로 말한다면 '개인택시 어때요?'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다음과 같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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