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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돈 걱정 없는 사람, 고작 이 정도입니다

[우리 시대의 은퇴 1] 은퇴할 수 없는 나라

등록 2024.07.02 10:21수정 2024.07.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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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회적 정년을 맞아 은퇴한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먹고 살기 위해 다시 노동시장으로 회귀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은퇴 나이는 72.3세다. 정년은 비자발적 실업이며 경력 단절일 따름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나라다. 우리 시대의 은퇴란 무엇인가. 생애 후반부는 어떤 모양으로 조각해야 하나. 인생 곡선은 어떻게 그려야 할까. 이글은 퇴직과 정년, 은퇴와 수명이라는 변곡점을 통과하는 중년/장년/노년의 고령자들이 좋은 삶(good life)을 살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성찰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기자말]
많은 사람이 은퇴 후의 삶을 걱정한다.
정확히 말하면,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30년 가까운 세월의 강을 무사히 건너려면 준비가 잘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노후 준비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조건 반사처럼 돈을 먼저 떠올린다. 개인의 삶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노년의 빈곤은 곧 재앙이다.

빈곤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퇴 전에 벌어들인 돈의 총량이 은퇴 후의 삶을 지탱할 만큼 충분하면 된다. 하지만 이 조건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정년의 나이를 넘어선 이의 다수는 이만한 재력을 갖추지 못한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나이(평균 49.3세/2022년 기준)는 짧아지고, 기대 수명(평균 82.7세/2022년 기준)은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적 연금의 수급률, 다시 말해 연금을 받는 고령자는 48% 수준이다. 노인 100명 중 52명은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연금을 수령하는 이의 소득 대체율도 42.5%(2023년 기준)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을 납부했던 기간의 월평균 소득이 400만 원이라면 168만 원을, 350만 원이라면 147만 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기대 수명 긴데... 연금 점수는 최하위

아래 그림은 기대 수명 상위 17개 나라의 연금 지수(pension index)를 나타낸 것이다. 막대그래프가 기대 수명, 선 그래프가 연금 지수다. 연금 지수는 각 나라의 연금 시스템을 세 가지 기준(적합성, 지속 가능성, 통합성)으로 평가해 점수화한 것을 말한다. 한국은 홍콩, 일본, 호주, 스위스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기대 수명이 긴 나라다. 하지만 연금 점수는 최하위다. 한 마디로, 연금 시스템이 엉망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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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 장수국가의 기대수명과 연금지수 Global pension index 2023 (Mercer CFA institute) , 기자 재편집 ⓒ 문진수

 
이 조사는 2009년부터 이루어졌고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2012∼2023년의 흐름을 살펴보면 점수가 미세하게 오르고 있음이 확인된다. 하지만 그 폭이 매우 좁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연금 시스템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2023년 조사에서 한국은 47개 국가 중 42위로, C등급을 받았다. 경제력 측면에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노인들이 더 편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노후 준비가 부족하다고 판단할 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돈을 버는 것뿐이다. 정년이 지난 후에도 장년/시니어들이 노동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고령층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일할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노동의 질은 전반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다. 60세 이상 취업자의 약 5할이 비임금 근로자이고, 임금 근로자의 7할이 비정규직이다.

시니어들이 실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아래 그림은 60세 이상 연령층의 생활비 충당 방법을 나타낸 것이다. 1위는 근로/사업 소득(43.9%)이다. 44%는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뜻이다. 2위는 연금/퇴직 급여(22%)이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20% 수준이다. 3위는 재산 소득(6.2%)으로 부동산 임대 소득이나 배당금으로 산다는 의미다. 4위는 예금/적금(3.6%)이다. 은행에 예치해 둔 돈의 원금과 이자를 받아 생활한다는 뜻이다.


안전지대에 머무는 이들은 10명 중 3명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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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이상 연령층의 생활비 충당 방법 2023년 사회조사 결과 (통계청) ⓒ 문진수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 : 10%
연금 소득으로 사는 사람 : 22%
계속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 : 44%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 : 24%


이 분포도가 현재 우리나라 60세 이상이 살아가는 진짜 모습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본 후반부의 '계층 사다리'다. 100명 중 10명은 돈에서 자유롭고, 22명은 연금으로 살고 있고, 44명은 계속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24명은 가족이나 국가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60세 이상 시니어의 68%가 노후 위험에 처해 있다는 말이다. 안전지대에 머무는 이들은 32%에 불과하다.


40대와 50대들의 미래 모습은 어떻게 전개될까.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40대의 80.6%, 50대의 83.1%가 '노후를 준비하고 있음'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해석이 달라진다. 준비하고 있다고 답한 40대의 약 60%, 50대의 65%가 '국민연금'이 준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질문은 단수 응답이다. 그러니까 국민연금 외에 다른 준비는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이 오르지 않는 한, 이들의 운명도 60/70세대와 다르지 않을 것임을 말해 준다. 40/50세대의 약 6할은 끓는 물의 개구리 신세다.

정년을 늘리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우리나라 월급쟁이의 약 8할이 중소기업에서 근무한다. 이 기업들의 상당수는 정년제를 유지하지 않는다.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는 대상이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 한정될 거라는 의미다. 연금 소득을 늘릴 방법은 없을까. 현재로선 요원해 보인다. 정년과 은퇴를 잇는 다리는 끊어졌다. 한국인의 인생 후반부는 돈 걱정 없이 사는 10%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90%라는 구도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문진수 시민기자는 최근 단행본 '은퇴의 정석'(2024.6.28/한겨레출판)을 출간했습니다. 이 기사는 책의 내용을 일부 인용, 재편집해 새로 쓴 것입니다.
#정년 #은퇴 #은퇴의정석 #초고령화시대 #노후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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