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1 07:02최종 업데이트 24.07.0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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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현 전 국립중앙의료원장 (자료사진) ⓒ 김성욱

 

ⓒ 최주혜

 
6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김만배씨와 더불어 구속된 전 언론노조위원장 신학림씨의 죄명에 '공갈'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배임수·증재, 청탁금지법 위반, 범죄수익 은닉 규제법 위반. 그런데 신씨에게는 공갈 혐의가 덧붙여진 것이다. 

이를 두고 <한겨레>는 "별건 수사" "하명 수사"라고 비판했다. 
 
'별건'까지 갖다 붙이는 것은 피의자의 죄질이 매우 나쁘다는 인상을 판사에게 줘 영장 발부 가능성을 높이려고 할 때 쓰는 검찰의 구태다. 특히 윗선의 지시로 반드시 구속해야 하는 '하명수사'에 많이 쓰던 수법이다.(...)윤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과는 전혀 무관하고, 대장동 사건 수사와도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영장에 이 혐의를 넣은 것은 '본안'인 명예훼손과 배임수재 혐의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공갈 혐의로라도 영장이 발부되길 노린 것으로 보인다.(6월 17일, 한겨레 사설)

이 신문의 주장은 현실로 나타났다. 신씨가 구속되자 언론계에서는 공갈 혐의가 영장 발부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9개월간 수사를 진행하면서 한 사람도 기소하지 못할 정도로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데다 새로운 유죄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신씨는 영장이 청구된 후 나에게 "검찰이 무리한 수사의 책임을 법원에 떠넘기려는 출구전략으로 보인다"며 기각을 낙관했다. 변호인 강아무개 변호사도 같은 의견이라면서. 신씨가 구속된 후 입을 닫은 강 변호사는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27일 신씨 측이 요청한 구속적부심도 기각됐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대로, 신씨의 공갈 혐의는 책 판매와 관련된 것으로, 대상자는 정기현 전 국립중앙의료원장이다. 김만배씨가 1억 6500만 원에 구입해 논란이 됐던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지도>라는 책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신씨가 구속된 후 정 전 원장과 1시간 가까이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현재 전남 순천의 한 병원에서 소아과 진료를 맡고 있다. 

"검찰이 신학림 문자 포렌식... 부정할 수 없었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지난 6월 20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대장동 사건 관련 허위 인터뷰로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 원장님이 신학림씨한테 책을 구입하는 과정에 협박, 공갈이 있었다는 취지로 검찰에서 진술한 게 맞나요? 

"강요지요. 검찰이 신학림씨 문자를 다 포렌식 했잖아요. 이 사건의 맥락을 알아야 해요. OO(지역 이름)에서 안티조선운동을 하던 제 지인들이 있어요. 제가 그 지역 신문을 좀 도와주고 있었는데, 나중에 그쪽 지인으로부터 신씨를 소개받아 알게 됐어요." 

-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요? 

"몇 년인지는... 하여간 신학림 기자를 세 번쯤 만났어요." 

정 전 원장은 OO에서 보건소장을 지낸 인연으로, 신학림씨와도 잘 아는 OO 지역 언론인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 신학림씨가 원장님한테 책을 넘긴 게 2022년이라고 하던데, 그전부터 알고 계셨던 거지요? 

"그렇죠. 가까운 지인이 '신학림 기자 좀 도와달라'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는데, 어느 날 다 같이 제가 근무하는 순천을 찾아왔어요. 책을 들고 왔죠. 제가 식사를 대접했는데, 책 얘기가 나왔어요. 제가 여유 있을 때 조금씩 돕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말하자면, 딱히 구매 의사가 있어서가 아니라 후원의 뜻으로 책을 구입하게 됐다는 것이다. 

- 원장님한테 책이 넘어간 시점이 언제인가요? 

"제가 (2022년) 1월에 임기가 끝났는데, 그해 7월경이었어요. 여름에 순천으로 찾아왔으니까." 

참고로, 신학림씨와 김만배씨의 책 거래 시점은 2021년 9월이다. 

- 도와준다는 얘기를 신학림씨는 책을 사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겠군요.

"그렇게 받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거기서부터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됐어요." 

- 책 구입 문제를 두 분이 직접 얘기한 게 아니라 중간에 전달자가 있었다는 거죠?

"예. 신학림 기자와 (사이가) 나빠졌다기보다는 얘기하는 방식이 되게 힘들어지더라고요. 나중에 검찰에 가서 신 기자와 제가 주고받은 문자를 보게 됐는데, 제가 부정을 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세더라고요."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 계기는 그가 신씨한데 받은 책을 문재인 전 대통령 측에 넘기면서부터다. 시기는, 그의 기억으로는 2022년 7월 말 또는 8월 초다. 

"저는 어느 정도 도와주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신 기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다 문 (전) 대통령이 양산에서 책방을 연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거기에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일로 양산을 방문했을 때 비서관에게 책을 건넸지요. 빈손으로 가기도 좀 그렇고, 나중에 빛도 나겠다 싶어서." 

일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신학림씨와 개인적 친분이 있던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가 어느 날 그 책 사진을 두 사람의 카톡방에 올린 것이다. 

"다혜씨가 좋은 의미로 그 책을 사진으로 찍어서 카톡방에 올렸다는데, 신 기자가 그걸 보고 화가 났는지 그다음부터 말이 험해졌어요." 

- '내가 당신한테 준 책이 왜 거기 가 있느냐'는 항의였겠네요. 

"그 일이 생기고 나서 노골적으로 책값을 요구했어요." 

- 책값으로 얼마를 요구하던가요?

"1억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해서 제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느냐'고 물었지요. 그러면서 '이것 때문에 인간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으니 좀 기다려라'고 말했어요. 내가 갑자기 그런 큰돈을 마련할 수도 없으니. 중간에 낀 지인이 난처해하니까 신학림 기자가 '너는 빠져라. 내가 정 원장과 직접 얘기하겠다' 이러면서 거칠어진 거죠." 

그가 신씨에게 건넨 '책값'은 약 5000만 원이다. 그런데 이 돈은 한 번에 전달된 게 아니다. 1년여에 걸쳐 여러 차례 건넨 돈을 합한 금액이다. 맨 처음 순천에서 책을 받고 나서 지인을 통해 300만 원을 전달했다. 이후 3000만 원을 더 건넨 뒤 끝내려 했으나 신씨의 요청으로 추가로 지급했다고 한다. 

"검찰에서 이건 '강요'라고 하더군요. 문자 내용이 있으니, 저도 부인할 수 없었지요. 강요라면 강요로 볼 수도 있고. 나도 괴로웠다고 솔직히 얘기했어요. 그 후 강요죄인지 뭔지가 성립됐어요. 참고인 조사지만 힘들었어요." 

"문 전 대통령과 엮으려 했다... 검찰이 흠집 내려는 것"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23년 4월 26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자신의 책방 '평산책방'에서 계산 업무를 하며 손님 책에 사인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 검찰에는 언제 들어간 겁니까?

"(신학림씨 휴대폰에 대한) 포렌식이 다 끝난 후였으니, 지난해 말이었을 겁니다."

- 검찰이 원장님을 불러서 '이건 강요에 의해 책값을 낸 게 아니냐' 이렇게 신문했다는 거지요? 

"그렇죠. 제가 '조금 애매하다'고 말하면, 신 기자 휴대폰을 포렌식해서 나온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저한테 보여줬어요. 그러면서 부정하기가 힘들었어요." 

- 신학림씨는 계속 원장님한테 책의 가치에 맞게 책값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얘기했던 건가요?

"뭐 그랬죠. 마지막에는 단호하게 얘기했어요. 인간관계 때문에 계속 주는 건 싫다고." 

- 원장님이 먼저 검찰에 얘기한 게 아니고 검찰에서 부른 거지요? 

"문자 메시지 등을 다 조사한 다음에 저한테 연락했어요."

- 기자들 사이에서 원장님이 검찰이나 신학림씨한테 약점을 잡힌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더군요. 

"신 기자한테 약점 잡힐 건 없고요. 검찰에도 없어요. 탈탈 털어도 아무것도 안 나올 정도로 살아왔어요."

- 검찰이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려고 하던가요? 

"그런 건 있었죠. 뭐 언론이 그림을 그리려면 그릴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재인 대통령은 진짜 아무런 상관이 없거든요. 근데 제가 누를 끼치게 된 거잖아요. 퇴임 후이긴 하지만. 검찰이나 언론은 그걸로 제 약점을 잡은 거고. 저는 그런 게 싫었던 거예요. 내가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에 뭐 부탁할 일도 없고, 그냥 책방을 낸다기에 그 책이 그렇게 가치가 있다면 나 혼자 끌어안고 있는 것보다는 공유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갖다 준 거예요. 그런데 그걸 막 왜곡하고 꿰맞추려 하더군요." 

-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추궁했겠네요? 

"모든 자료를 다 뽑아 갖고 있더라고요." 

- 문재인 정부에서 국립중앙의료원장 지낸 걸 두고 추궁하던가요? 

"안 했다고 볼 수는 없어요. 제가 화도 내고 그랬어요. 그전에도 일부 언론에서 저를 문 대통령이랑 엮어서 공격하기도 했지요." 

그와 문 전 대통령이 인연을 맺은 것은 2017년 대선 때다. 당시 그는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를 돕는 더불어포럼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전남 지역 선거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도 활약했다. 그전에는 노무현 재단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 검찰이 문 전 대통령한테 책을 넘긴 것을 비리로 보지는 않던가요?
 

"그건 무리라는 걸 검사도 아는 것 같았어요." 

- 뇌물성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요? 

"내가 퇴임한 대통령한테 가서 뭘 하겠다고. 근데 그렇게 볼 수도 있다면서 그쪽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도 있었죠. 그러나 (검사) 스스로 무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했죠. 피곤하더라고요. 몇몇 언론사 기자가 전화 와서 그걸 자꾸 캐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답 안 하고 나중에는 전화 와도 안 받고 아무런 대응을 안 했어요." 

- 문 전 대통령과 어떻게든지 엮으려 하던가요? 

"예. 흠집을 내려는 거죠. 근데 그렇게는 못 엮었고, 신학림 기자의 강요죄는 제가 수긍했으니 성립된 거죠. 문자들을 근거로." 

- 양산에 갔던 그 책은 다시 돌아왔나요? 

"자기가 돌려받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 뒤 실제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물어보지 않아서." 

- 신학림씨가 꽤 불쾌했을 것 같네요. 자기는 원장님한테 책을 팔고 책값도 다 못 받았다고 여기는데, 그 책이 엉뚱한 데서 나타나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자신을 무시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글쎄요. 하여간 제 의도는 얘기해줬어요.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 이 문제로 검찰에서 신학림씨와 대질조사를 받지는 않았나요?
 

"그러지는 않았어요." 

- 신학림씨도 검찰에서 자기주장을 폈을 것 아니에요? 

"검찰이 전해준 바로는, 나한테 책을 넘길 때 '제3자에게 양도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었다는 겁니다. 근데 그건 나중에 한 얘기지, 처음에 책을 갖고 왔을 때 한 얘기는 아니거든요."

- 계약서는 안 쓰셨나요?

"아니, 계약서고 뭐고, 처음에는 그런 말이 없었어요. 제가 인지한 시점과 좀 차이가 있어요."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변호인 조영선·신의철 변호사가 지난 6월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입구에서 신 전 위원장의 저서 <혼맥지도>의 내용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 선대식

 
"신학림 기자 구속, 뭘 그렇게까지"

그는 "신 기자가 구속되니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저도 고민스러운 게, 강요를 받았지만 뭐 그렇게까지...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게 참 문자만 없었다면... 제가 말을 되도록 안 했는데, 말 한마디 잘못하면 꼬투리를 잡고 그러니까 되게 피곤하더라고요. 이틀간 12시간씩 조사받았는데... 신씨가 보낸 문자 중에 문 대통령 관련해 언급한 게 있는데, 아무리 급해도 하지 말았어야 할 심한 언사였어요." 

- 정리하자면, 처음에는 선의로 시작된 일이었는데 서로 책값에 대한 생각이 달랐고,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 되면서 갈등이 생긴 거네요. 게다가 원장님이 그 책을 다른 사람한테 임의로 넘기니까 신학림씨가 화가 난 거죠? 

"그렇게 됐죠." 

- 신학림씨가 좀 거칠게 나오니까 원장님도 화가 나셨던 거고요? 

"화가 났다기보다는 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 이 사건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과 얘기한 적은 없나요? 

"전혀 없어요. 양산 쪽으로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랐어요." 

신학림씨의 반론을 들을 수 없기에 정 전 원장의 얘기가 다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상식과 정황으로 가늠해 볼 뿐이다. 다만 그의 주장이 다 사실이라 하더라도 신씨에 대한 구속영장에 공갈죄가 들어간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아는 사람끼리 책값을 두고 갈등이 있었지만 양자 간 '타협'으로 이미 종결된 일이고, '피해자'가 고소한 사건도 아니기 때문이다. 

5월 7일 뉴스타파는 '신학림-김만배 음성파일 보도 진상조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언론학자 4명과 법학자 한 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는 신학림-정기현 두 사람 간 금전 거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신학림은 친분이 두터웠던 지역신문사 ㉴의 대표 O을 통해 ㄹ을 소개받았다. 신학림은 ㄹ과 두 번째 만남에서 1억 원에 혼맥도서 3권 1질을 판매하기로 했으며, 이때 O이 일종의 증인으로 동석했다고 여겨 판매계약서를 작성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ㄹ은 혼맥도서 대금으로 몇 차례에 걸쳐 5000만 원까지 송금한 뒤 더 이상은 송금이 어렵다고 신학림에게 밝혀왔으며, 이에 신학림은 한두 차례 항의의 뜻을 표시한 뒤 최종적으로 5000만 원에 거래가 완료된 것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신학림-김만배 음성파일 보도 진상조사보고서'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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