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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결정, 국민에게 모욕감 줬다

[주장] 사랑받지 못한 대통령과 명품백 무혐의가 의미하는 것

등록 2024.06.20 11:56수정 2024.06.2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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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이 권력을 잡았다. 대통령의 친구들은 대통령을 등에 업고 더 부자가 되고 더 큰 세력을 갖고 싶었다. 장관들은 옳지 않은 일에도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장관 자리를 유지하고 싶었으니까. 

새 대통령은 우선 유명한 건축가들을 시켜서 화려한 성을 짓게 했다. 파티를 열어 밤늦게까지 노래하고 춤추고 웃고 먹고 마셨다. 새 대통령은 황금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권력을 과시하고 싶었다. 

물론 자기 돈을 쓸 수야 없었다. 새 대통령은 많은 세금을 거뒀다. 국민들은 점점 가난해졌다. 이제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대통령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가 난 대통령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국민들에게 어떤 벌을 내리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국민들을 옥죄기 시작했다. 모든 국민들에게 검은 옷을 입으라고 했다. 모든 집도 회색으로 칠하고 그림도 몽땅 지우라고 했다. 

결국, 사람들은 '그림자'처럼 됐다. 성을 에워싼 공원의 식물만 제외하고, 사람들이 보고 기뻐할 꽃과 나무도 모조리 베어 버리게 했다. 색깔을 보고 싶어 벽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뒀다. 사람들은 벽에도 귀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음 놓고 말도 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더 슬프고 우울해질수록 대통령은 유쾌해졌다. 대통령의 파티는 아침까지 계속됐고, 거리가 조용해질수록 성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더욱 커지기만 했다. 

독일의 작가 '모니카 페트'가 쓴 <사랑받는 대통령>에 나오는 '사랑받지 못한 대통령' 이야기다. 며칠 전 학교 도서실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동화책이다. 리더가 되려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만하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에 좋은 책이다. 나아가 '나쁜' 지도자에게 경종을 울려주기에도 적합하다. 어쩌다 마주친 책 속에 등장하는 '새 대통령'. 처음 읽는 책인데, 등장인물에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직자 배우자와 300만원 명품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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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부부 명품수수 면죄부 준 국민권익위 규탄 긴급기자회견'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 정부합동민원센터앞에서 참여연대 주최로 열렸다. 지난해 12월 김건희 여사의 '디올' 명품 가방 등 금품 수수와 관련해 대통령 부부를 청탁금지법 등 위반 혐의로 신고한 참여연대는 ‘공직자 배우자의 제재 규정이 없어 종결 결정’을 내린 국민권익위에 대해 ‘공직자(배우자 포함)는 어떠한 명목으로도 금품을 받으면 안된다는 국민 상식을 무시하고, 부패방지 주무기관으로서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대통령 부부에게 면죄부 줬다’며 규탄했다. ⓒ 권우성

 
새 정부의 시작,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이전 비용이 많네 적네 말도 많았다. 머물러 있던 사람들을 다른 데로 옮기게 하고 새 정부가 들어갔다.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장시간 일하는데도 삶이 팍팍해졌다. 세계경제가 침체상태이고 우리나라만 경제가 나빠진 게 아니라고 하면서, 정부가 할 일은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허탈했으나 국민도 정부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감내하는 수밖에.

축제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이 길에서 생명을 잃었다.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깊은 흙탕물 속으로 내몰린 젊은 군인도 목숨을 잃었다. 진실 규명을 외치는 사람들과 정부가 맞섰다. 지켜보는 국민은 답답하기만 하다.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입틀막 정부'라는 별칭을 달아줬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어느 최고위 정치인의 아내가 받은 선물인지 뇌물인지를 두고 참여연대가 고발한 사건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공직자의 아내가 300만 원 이상의 향응을 받고 청탁을 들어주려는 의혹을 받던 사안이었다. 

많은 국민이 그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보아온 터라 해석할 것도 의심할 것도 없이 부적절한 행동을 넘어 범법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관심이 큰 사건이었다. 주가조작이니 논문표절이니 학력위조니 하는 것들보다 단순한 사안이었다. 권익위의 발표 이후, 권익위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법 감정은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다. 

할머니가 뜬 수세미, 정중하게 거절했는데... 대체 청렴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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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일,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이 충남 홍성군 충남교육청에서 '공직자의 청렴 마인드와 실천'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 국민권익위원회 제공

  
뉴스에서만 듣던 국민권익위원회가 무엇인지 궁금해 누리집에 들어가 봤다. 2008년 출범한 이 기관은 국민권익 보호와 청렴한 사회 구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적혀 있었다.

공직자의 아내도 우리나라 국민이라 보호했으니 할 일은 한 셈인가. 권익위가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는 뉴스를 본 국민 대다수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공직자의 아내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제재 규정이 없단다. 직무관련성이 없단다. 그건 그렇다 쳐도 그 공직자는 신고도 하지 않았다. 권익위가 말하는 '청렴'이란 무엇인지 헷갈린다. 

한 달 전, 스승의 날이었다. 이진우(가명) 학생이 조그마한 종이가방을 내 책상 위에 놓으면서, 자기 할머니가 손수 뜨개질을 해서 만든 수세미라고 했다. 알록달록 수세미 너덧 개가 가지런히 담겨 있다. 진우의 어머니가 직장생활을 하니까 할머니가 진우를 돌봐주고 있다는 걸 얼핏 들은 기억이 났다.

돈 주고 산 게 아니니 받아도 되나, 돌려주면 할머니께서 섭섭해하지는 않으실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수세미를 받아서 교실에서 쓸까. 그렇더라도 일단 받긴 받은 거 아닌가. 고심 끝에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돌려드릴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간단히 적어 종이가방 속에 넣었다. 긴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다. 모쪼록 할머니께서 서운해하지 않으시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권익위의 사건 종결 결정 소식을 들으면서 '모욕감'을 느꼈다. 수세미 때문에 애태우던 시간이 통째로 조롱당한 느낌이었다. 

사랑받지 못한 대통령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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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 모니카 페트가 쓴 <사랑받는 대통령> 표지. ⓒ 풀빛

 
다시 동화책 얘기로 돌아가서, 국민에게 사랑받지 못한 대통령은 어떻게 됐을까. 국민에게서 색깔을 빼앗아버린 대통령.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막기는 어려웠다. 비가 내린 뒤 '색깔'을 갈망하던 사람들은 무지개를 보러 달려 나갔고, 색깔을 보자 사람들은 기뻐했다. 대통령에 대한 불안을 잊은 채.

대통령은 무지개마저 없애고 싶었다. 무지개처럼 색깔이 다채로운 나라는 행복한 나라인데, 행복은 자신만이 누려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무지개를 쫓아내기 위해 마법사를 불렀다.

마법사는 대통령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썼다. 색깔을 없애려는 대통령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준다는 약초즙을 먹이고, 그 약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대통령에게 해독제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결국 대통령과 장관들은 그 나라를 떠나야만 했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사랑받는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을 말하는지 동화책에서 힌트를 찾아보자. 사랑받는 대통령은, 자기가 가장 부자가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국민을 섬기고 국민을 우러른다.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좋아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살핀다.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대통령, 대통령의 행복을 바라는 국민들. 우리나라도 이렇게 살면 참 좋겠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스토리에 중복게재할 예정입니다.

사랑받는 대통령

모니카 페트 (지은이),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김경연 (옮긴이),
풀빛, 2020


#국민권익위원회 #청렴 #공직자 #모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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