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24 10:21최종 업데이트 24.07.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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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된 림프구에서 싹트는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1)의 주사형 전자 현미경 사진(녹색). 중요한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컬러로 처리된 이미지. ⓒ 위키미디어 공용


몇 달 전 테티아나 바실리예바 박사의 세미나를 들었다. 미국에서 전염병 학자로 몸을 담고 있는 그녀는 우크라이나 태생인데, 그날 세미나의 주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에이즈 환자 분포와 양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에 대해서였다.

감염자들에게서 포집한 바이러스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지역에 따라 전쟁 이전과 이후 그 분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이를 등록된 에이즈 환자 정보와 비교할 때 유추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론은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무작위로 대이동을 했고, 그에 따라 에이즈를 유발하는 다양한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주들도 함께 이동해 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등록되지 않은 환자들도 많은 상태라 그들을 치료하거나 감염 고리를 추적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 아니지만, 분명히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에이즈는 관리가 매우 중요한 질병이라는 점이다. 유엔에이즈(UNAIDS)가 '95-95-95'를 내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염자 95%가 자기 상태를 알고, 감염자 95%가 치료를 받고, 치료받은 감염자 95%는 바이러스 억제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환자 개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에이즈를 관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고 부르는 에이즈(AIDS)는 병의 이름이다.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에 감염되면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잠복기는 길게는 15년까지나 된다. 면역결핍증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감염자의 면역세포를 파괴해 면역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

대개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입하면 세포 내에 있는 복제 기능을 이용해 개체수를 늘리다가 면역계에 패해 사라지게 된다. HIV의 경우, 환자의 몸에 계속 남아 존재하면서 면역세포를 파괴해 면역계가 작용하지 못하게 한다. 때문에 주요 초기 증상은 열이나 오한, 근육통, 두통, 피로 등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볼 수 있는 반응들이고, 기회감염이나 종양, 폐렴 등으로 발전하면서 사망에 이른다.

통제 가능한 질병이 되었다고 하지만

기록을 보면 1960~70년대에도 이미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에이즈가 팬데믹으로 등장한 것은 1981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감염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부터였다.

일단 걸리면 치료가 불가능하고 예후가 나쁘며, 긴 잠복기로 인해 감염자가 인지하지 못한 채 전파하기도 쉽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특히, 에이즈의 주요 감염 경로가 성적 접촉과 주삿바늘의 재사용이었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를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마약을 하는 사람들로 보는 낙인찍기 시선도 있었다.

두려움만큼이나 에이즈 전파의 파괴력은 컸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1980년도 이후 지금까지 세계 에이즈 감염자 수는 8500여만 명, 사망자 수는 4000만여 명이다. 2022년 통계로 당시 전 세계 감염자 수는 3900여만 명, 한해 사망자 수만 63만 명이다. 최근에는 에이즈 치료제가 나와 통제 가능한 질병이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망자 수가 적지 않다.

에이즈 치료제는 환자의 몸에 있는 HIV와 작용해 바이러스 수를 줄이고 면역세포 파괴를 막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직까지 바이러스를 체내에서 근절시키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에이즈 치료는 당뇨 치료만큼이나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대신 꾸준히 관리가 잘 되는 경우 감염인의 건강도 양호할 뿐 아니라, 타인에게 감염시키는 위험도 매우 낮아진다. 예를 들면, 에이즈의 감염 경로 중 하나는 에이즈 환자가 임신을 한 경우 모체에서 태아에게로 전염되는 것인데, 치료를 통해 이 감염이 예방될 수 있다. 낙인찍기로 잠재적인 환자들을 숨게 만들어 관리 체계 밖에 머무르게 하지 말고, 에이즈 검사를 장려하고 환자들을 지원해 감염 고리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기억해야 할 것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HIV는 어디에서 왔을까? HIV는 HIV-1과 HIV-2,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전염력이 높고 예후가 나쁜 HIV-1은 침팬지와 원숭이들을 감염시키는 유인원면역결핍바이러스(Simian Immunodeficiency Virus, SIV)가 사람에게 전염된 것이다. 어느 시점엔가 사람에게서 쉽게 전파되는 형태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설이 있지만, SIV에 걸린 침팬지의 피가 상처를 통해 혹은 다른 어떤 형태로 사람의 피와 접촉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SIV나 HIV는 성적 접촉을 통한 전파가 가장 흔하긴 하지만 피를 통한 전파도 일어난다. 수혈을 통한 감염은 잘 알려져 있고, 우리 몸에 나 있는 크고 작은 상처를 통해서도 감염된다. 의료진이 환자들을 치료할 때 검체 노출에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치료제가 없는 침팬지들은 SIV와 어떻게 싸워왔을까? 침팬지에는 네개 아종이 있는데, SIV는 중부와 동부 침팬지들 사이에 퍼져왔다. 중세 시대 유럽을 중심으로 흑사병이 극심했고 다른 지역에는 잠잠했던 것에 비교할 수 있다. 대개 연구자들은 침팬지들이 SIV에 적응해 감염되어도 크게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몇몇 보고에 따르면 SIV에 걸린 침팬지들이 에이즈 환자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침팬지 유전체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앞서 말한 중부 및 동부 침팬지들에게는 SIV에 반응하는 면역 관련 유전자들이 자연 선택된 증거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중부 침팬지들에게 선택된 유전자들이 동부 침팬지들에게서 선택된 것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병원체로 위협을 받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적응했다는 의미다. 인간에게는 백신 개발의 희망이 있다. 다른 영장류에게 있는 SIV 항체들을 모델 삼아 하는 시도도 있고, 또 다른 기발한 시도가 성공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에이즈 관리는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검사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에이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로 감염되었든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치료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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