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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신라인의 뿌리깊은 백제 차별(0)
  2003.05.24 15:20 조회 351 찬성 25 반대 2
왕건 즉위 후 4개월 사이에 일어난 충청지역의 잇따른 반란사건은 고려의 수도를 철원에서 송악으로 옮기게 했으며, 정권 초기 충청인에 대한 차별로 나타났소.

일찍이 공주·청주·명주(강릉)·철원 등지는 궁예의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는데, 왕건이 즉위한 5일째 되던 날 고려 창업공신 환선길(桓宣吉)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당했소.

이 사건 이후 9일째, 공주의 실력자 이흔암(伊昕巖)이 또 모반을 일으키다 발각되었소. 그런데 이흔암의 처는 환(桓)씨. 이로 미루어 이흔암의 반란은 환선길의 모반사건과 연관되는 것으로 볼 수 있소.

환선길·이흔암의 처형 이후 2개월 공주·홍성 등 10여 주현이 고려에 등을 돌리고 후백제에 투항해 버렸소. 그 1달 뒤 이번에는 청주 출신 장군 임춘길(林春吉)이 모반을 꾀하다 처형당했소. 민심의 동요를 보이던 청주의 호족세력 진선(陳瑄)이 또 반란을 일으켰소.

이같은 정권 초기 불안은 충청인에 대한 차별로 나타났소. 실례를 보면, ‘태조 원년 청주인 현율(玄律)을 군사를 다스리는 순군랑중(徇軍郞中)에 임명하자 배현경 등 개국공신들이 반대했다. 현율은 모반자였던 임춘길과 같은 청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태조는 현율을 군사행정 업무만 관장하는 병부의 낭중(郞中)에 임명했다’(‘고려사절요’ 군1, 태조원년). 모반지역 사람임을 이유로 인사권이 없는 행정직에만 기용한 것이오.

또 다른 예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태조는 고려 건국 후 충남 천안의 목천 사람이 자주 배반하는 것을 미워하여 이 고을 사람들에게 우·상·돈·장(牛象豚獐)과 같은 짐승의 이름을 주었다고 적고 있다. 짐승과 동일시한 조치다.

이같은 기록을 볼 때 왕건이 차별했던 곳은 홍성·공주·청주를 중심한 백제의 중심지 인근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소.

고려의 중심 신라 인맥은 백제의 중심지 충청 지역을 철저히 차별하고 그 이남 전라도를 묶어 아직까지도 개발에서 소외시키고 있소. 지금도 행정직은 충청/전라 출신이 많은 반면 고위직은 30%에 불과한 경상도 출신이 50%이상을 독차지하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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