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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17일 창립된 법의감식연구회 창립 1주년 기념 행사가 3월 5일 오후 6시 반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종열 대한법의학회 회장, 황적준 대한법의학회 부회장을 비롯하여 현재 범의감식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윤성 서울대 교수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원태 법의학 부장 등 법의관, 그리고 일선에서 현장감식을 담당하는 과학수사반 경찰관 등 61명이 참석하였다.

이팔호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격려사를 통해 수사경찰 출신으로서 오랜 강력사건 현장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현장경험과 전문적 이론의 접목'이란 새로운 도전을 하는 법의감식연구회의 발전을 기원하며 앞으로 경찰차원의 정보제공 및 예산지원에 노력할 것임을 다짐하였다.

이어서 이삼재 수사연구관(전총경, 현장감식 경력 30년)이 해결되지 못한 '강남 사바이 노래방 살인사건'의 현장감식 사진과 부검결과를 바탕으로 수사의 미비점을 질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강연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 현장감식요원의 최근 천호동 지하철역 화장실 변사사건에 대한 현장감식 결과 및 관할서 수사형사들의 수사결과 보고, 그리고 법의감식연구회 소속 회원들간의 열띤 토론이 있었다. 밤 10시까지 이어진 이 자리에는 비회원이지만 일선 경찰서 현장감식을 담당하는 경찰관들이 참관하여 토론을 경청하였다.

법의감식연구회는 순수 연구단체로 출발하였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최근 인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현행제도에 대한 불만이 기폭제가 되었다. 현행제도하에서는 죽은 사람을 부검하는 부검의가 현장에 나와보기가 쉽지 않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검시관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일선 경찰이고, 곧이어 현장감식을 담당하는 과학수사요원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상태에 대한 현장감식을 실시한다. 그리고 해부를 통해서 수집할 수 있는 단서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부검을 하게 되는데, 전문적인 법의학 지식과 경험을 가진 부검의에게 그 시신이 도착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결국 경찰의 초동조치와 현장감식에 의한 보고서와 사진을 보고 현장을 예측하며 부검을 실시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현장상황을 정확히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실시하는 부검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현재 검시권 및 사체해부 등 모든 수사권은 검찰에게 있다. 검찰의 지휘에 의해 지역사회 의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여 부검을 실시하고 있다. 검찰 역시 사회의 이목을 집중하는 사건을 제외하고는 사건현장을 직접 살펴보기엔 인력상 한계가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대한법의학회는 오래 전부터 법의관이 현장에 출동하여 현장에서부터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법의감식을 실시할 수 있는 예산과 제도적 장치마련을 검찰과 정부에 건의하였지만 번번이 무산되어왔다.

인권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이다. 그런 생존권을 침해당한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가운데 사회는 온통 인권이야기로 떠들썩하고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인권대통령으로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최근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에 대한 법원의 경종도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 후속 대책은 사회적 여론의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법의감식연구회는 회원들 스스로 내는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오로지 말없는 현장과 죽은 자의 입이 되어 인권을 침해당한 피해자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한 열정으로만 법의학 전문가들과 일선 현장감식 전문 경찰관들이 모인 것이다.

이 모임은 아직도 구호와 간판에만 몰두하는 이 사회의 세태에 대한 작은 반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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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서울청 과학수사계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주위의 이웃들이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찰이 해야할 일이 뭘까를 고민하는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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