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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토요일. 100여개 시민단체들은 서울역에 모여 의사폐업을 중단하라고 외치고, 전국의 전공의들은 연세대에 모여 폐업투쟁의 결의를 더욱 높이 다진 날. 두 목소리가 상징적으로 충돌하는 토요일 오후 3시에 나는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실을 찾았다.

워낙 바쁜 김용익 교수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두 차례의 연기 끝에 세 번째 만에 성사됐다. 1·2차 인터뷰 약속은 회의 때문에 취소됐다. 12일도 토요일이었지만 김 교수는 오전에 한차례 회의에 참석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자연스레 '김용익 교수' 하면 '회의'를 떠올리게 됐다.

전무후무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펼쳐지는 요즘, 그는 조금 지쳐 보였다. 김 교수의 첫마디는 "너무 힘이 들어서 인터뷰할 힘이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였다.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배경으로 인터뷰는 자연스레 현안인 의사 폐업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 의사들의 폐업이 왜 이렇게 강성으로만 흐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의사들 내부의 논의구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한 집단에서 강경한 목소리는 으레 있는 거고, 경우에 따라 바람직한 겁니다. 그런데 온건한 목소리를 내면 워낙 굉장히 공격을 해오니까 그런 온건한 목소리들이 제 위치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또한 지도부 구성이 잘 안돼서 리더쉽이 형성되지 않은 것 같아요."

- 의사들은 정부의 모든 면을 상당히 믿지 못하고 있는데, 정부쪽의 책임은 없나요?

"심한 불신관계가 있죠. 그 동안에 의약분업 이전에도 그렇고 의약분업 추진 과정에서도 정부가 근본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짜임새 있게 추진하는 것이 굉장히 약했어요. 또한 사실 정부 내에서도 리더십에 문제가 있어요. 보건복지부 쪽의 생각이 있고, 재정경제부나 기획예산처처럼 돈을 풀어야 되는 부처의 생각이 있고, 청와대 사회복지쪽의 생각이 있고…. 이런 여러 가지 이견이 있는데 정부의 정책방향이 시의적절하게 제시되지 못했어요."

사실 지난 8월 10일 발표한 정부안도 정부 내부에서 완전한 합의를 거쳐 발표되기보다는 새로 부임한 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들의 폐업을 일단 수습해보자는 차원에서 제시한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이 발표를 재정경제부같은 경제부처에서 다 들어줄지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만약 재정경제부에서 난색을 표시한다면 결과적으로 의사들은 또 한번 정부에 속는 꼴이 된다.

지난 8월 10일 발표된 정부안의 주요 골자는 진료수가인상이다. 이 안에 대해 전공의들은 약사법 재개정과 구속자 석방문제가 빠져 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내심 얻을 만큼 얻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한 병원의 경영 투명화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개혁을 위해 계속 노력해온 김 교수는 정부의 수가인상조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입원진료의 경우 60% 정도만 의료보험에서 부담해주고 40% 정도는 본인이 부담합니다. 그 40%도 그냥 정률로 쭉 올라가지 본인부담의 한도가 없어요. 따라서 의료비 때문에 가정경제가 파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보험으로서 기능을 못하는 거죠. 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이 의료보험의 원천적인 문제입니다. 나는 의료보험의 수가와 함께 급여, 부담 세 가지가 같이 변화를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료보험 수가부분만 인상이 되면서 급여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또한 국민들의 본인부담금이 상당히 올라가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국민들에 대한 배려는 없이 의료기관만을 배려하는 조치가 이뤄진 거 아니겠어요?"

'국민에 대한 배려는 없고 의료기관만을 배려한 조치다!' 이런 말을 하는 의사(비록 임상은 아니지만)가 다른 의사들과 말이 잘 통할까? 나는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졌다.

- 시민단체와 의료계가 대립을 하고 있는데, 의료계와 시민단체 중 어디와 더 말이 잘 통하십니까?

"대부분의 의료계 분들하고는… 제가, 굉장히 왕따잖아요? 그래서 잘 안되죠."

'왕따'라는 말을 할 때 김 교수는 조금 크게 웃었다. 지난 98년 11월 약품 가격의 리베이트비 폭로를 기점으로 김 교수가 의사사회에서 '왕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스스로 아무 거리낌없이 말하자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막힌 것은 뚫고 엉킨 것은 풀라고 했다.

"(의료계 분들이)여러가지 오해들을 많이 하고 있죠. (오해를 풀기에는)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요."

'단결'을 유난히도 강조하는 의사사회 내부에서 '동료들의 치부를 폭로한 배반자'라는 소리를 들었던 김 교수. 하지만 김 교수는 그들에게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오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의사'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 '의권'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로 보였다. 전국의 모든 의사가 '의권쟁취'를 위한 '성전'에 나선 지금, 잠시 김 교수의 '의권관'을 들어보자.

"'의권', '의사들의 권리'라고 하는 것은 원래 국민들한테서 부여받은 거예요. 무슨 얘기냐면 의사들의 여러 가지 독점적·자율적인 권한과 높은 사회적 지위, 안정적인 수입 같은 것들은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대가로 주어지는 거예요.

의사들이 건강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권한을 배제시켜야, 쉽게 얘기하면 돌팔이를 배제시켜야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취지에서 면허를 주는 거고, 독점적 진료권을 주는 거고, 의사들의 사회적인 안정을 보장해 주는 거죠.

그런데 지금 의사들은 그것이 원래부터 고유하게 주어진 것이고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의권을 쟁취한다'고 하는 거란 말이죠. 하지만 나는 의권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된다고 보는 거예요. 국민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돼서 국민들로부터 위임을 받는 권한이지. 그러니까 '주권(主權)이 재민(在民)'하듯이 '의권(醫權)도 재민(在民)'하는 것이죠."


의권재민(醫勸在民)이라…. 이 부분에서 나는 솔직히 의사를 인터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이제까지 만나본 의사들은 주로 의료를 제외한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웠고, 오직 의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의권쟁취'를 소리높여 외쳤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의사는 어느새 의료에 관한 부분을 철학적이고 사회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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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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