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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중부군 사령부를 방문, 연설중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2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중부군 사령부를 방문, 연설중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 로이터 뉴시스
주초까지 막강한 화력을 동원하며 '수일내 바그다드 함락'을 공언했던 미-영 동맹군의 기세가 주춤하기 시작했다.

개전 일주일째인 26일 동맹군은 이제 "가장 잔인한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등 바그다드 외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며 '바그다드 대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같은날 미국 플로리다주 중부군사령부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바그다드에서의) 치열한 전투가 예상된다. 전쟁이 계획보다 빨리 진전되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장기전을 시사했다.

미-영 동맹군은 한편으로는 바그다드 진격작전을 늦추고 남부 전투에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내심 민중봉기를 기대했지만, 곳곳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성조기를 휘날리는 환영군중이 아니라 반미게릴라들이었다.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로 파급되고 있는 반전 여론도 미국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전 일주일만에 단기전 전망을 무너뜨린 미국 내외의 변수들을 점검해본다.

1. 전사자 속출 속에 고개드는 반전여론

"나는 전쟁에 동의하지 않아요. 문제를 해결할 다른 길이 있을 거예요."

AFP통신이 25일 전한 '전사 미군의 어머니' 시모나가 했다는 말이다.

멕시코계 미국인 시모나 개러베이는 지난 24일 낯선 군인들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의 손에는 아들 호세 엔젤 개러베이의 전사통지서가 들려있었다. 21세의 호세는 전날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 전투중 이라크군의 습격으로 전사한 7명의 해병들중 한 명이었다.

고교시절에는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3년 전 해병대에 입대했고, 석달 전 중동으로 떠나던 날에도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편지를 썼다. 그가 지난 11일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좋아하는 멕시코산 사탕과 인기가수의 CD를 보내달라"고 적혀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접한 어머니 시모나는 "부시 대통령은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느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들을 잃은 시모나의 마음은 전장에 자식을 보낸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외신들은 개전 이래 최소 20명의 미군이 전사했다고 집계했다.

전사자가 늘어남에 따라 미국내의 여론도 흔들리고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미국인들의 참전 지지율은 70% 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90%대에 육박했던 12년전 걸프전쟁 당시의 지지율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공화당 지지성향 응답자들은 변함없이 부시 행정부를 지지하고 있으나 민주당 지지성향 응답자들은 참전과 반전으로 의견이 엇갈리는 것이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라고 말한다.

반면, 부시 행정부의 전쟁수행능력에 대한 신뢰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20일부터 24일까지 14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퓨 리서치 센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쟁이 '아주 잘' 진척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4일 38%에 머물러 21일의 71%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

2. 이라크 전력 과소평가한 미 국방부 수뇌부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 ⓒ 로이터 뉴시스
연합군의 대규모 바그다드 공습, 이른바 '충격과 공포' 작전이 시작된 직후 이뤄진 브리핑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한 통제력을 잃기 시작했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대공습 직후 전해진 '1개 사단 병력 투항설'은 사실무근임이 밝혀졌고, 후세인은 보란 듯이 국영TV에 나타나 럼스펠드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정작 통제력을 상실한 것은 이라크 지도부가 아니라 미국 수뇌부일지 모른다. 심지어 우리나라 국방일보 격인 국방전문지 '성조지'조차 럼스펠드 장관의 전략 부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25일자 성조지 유럽판에 따르면, 한 국방부 관리는 "지금의 지상전은 (럼스펠드의) 계획에 없던 일"이라며 수뇌부의 전략에 의문을 제기했다. 성조지는 "타미 프랭크스 중부군사령관이 '중무장한 지상군의 증강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럼스펠드는 공습과 소규모 특수부대에 의존하는 전략을 고집했다"고 전했다. 한 퇴역장성은 "국방장관이 '전쟁은 이틀 내에 끝날 것'이라며 중동으로의 병력 증파를 중단했다"고 증언하기도.

미 육군대학의 로빈 도프 교수는 "악몽의 시나리오는 바그다드로 깊숙이 들어간 연합군이 혼잡한 도시에서 시가전을 치르는 것"이라며 미군측의 대규모 희생을 우려했다. 예비역 대령인 존 콜린스 박사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군이 바그다드 전투에 투입되는 것이다. 시가전이 펼쳐지면 쌍방간의 사상자 수가 크게 늘어나고 죄 없는 민간인들의 희생이 커진다"며 "고대중국의 전략가 손자도 시가전은 꺼려했다"고 덧붙였다.

럼스펠드와 폴 울포위즈 부장관 등 민간출신 관료들은 "미국이 진격만 하면 반후세인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반후세인 그룹과 이스라엘측 정보에만 의존한 나머지 미 중앙정보부(CIA)와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취합해 올린 정보를 무시하기도 했다. 이라크 민중들은 미영 동맹군을 해방군이 아닌 침략군으로 보고있고, 대규모 투항이 예상됐던 이라크 정규군 역시 동맹군의 보급로를 집중공략, 후방을 교란시키고 있다.

제프 훈 영국 국방장관이 앞장서서 확인해주는 등 한때 미 국방부에서 기대를 모았던 이라크 제2도시 바스라에서의 반후세인 민중봉기는 노동자밀집 거주지역에서만 국한됐다. 국지적인 봉기는 미영 동맹군의 이미지를 '해방군'으로 격상시키는 데는 턱없이 못 미치는 것이다.

3. 영어권 언론의 독주체제 무너뜨린 아랍어권 언론

26일 바그다드를 공습한 미군 전투기들은 특이한 목표물을 골랐다. 바로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이라크 국영 TV방송국과 위성 송신 시설, 이라크 공보부 건물을 폭격한 것이다. 이날 공습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이라크측이 밝힌 숫자만 16명에 이르렀다.

이라크 국영 TV는 개전 이후 지금까지 미군 전사자들과 포로들 그리고 공습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이라크 민간인들의 모습을 잇달아 보여줬다. 한때 사망설이 나돌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모습을 방영해 '후세인 유고설'을 유포한 부시 행정부의 브리핑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난 25일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이라크전을 보도하는 미국과 영국, 아랍의 각 방송사들의 보도 내용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91년 걸프전에서 맹위를 떨친 CNN으로 대표되는 미-영 언론들은 몰락하고, '알 자지라'라는 아랍어 방송이 위력을 떨친 것으로 평가됐다.

걸프전 당시 크루즈미사일의 바그다드 공습을 생생하게 전했던 CNN은 경쟁사들의 추격으로 인해 더 이상 전황보도에 있어서 필수적인 매체가 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CNN이 자국 이기주의에 매몰돼 세계인들의 외면을 사게 됐다는 것.

CNN 등 미국 방송들은 전세계적인 반전 시위는 축소 보도하면서 미군에 대해서는 '우리의 영웅'이라고 추켜세워 이번 전쟁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잃게 됐다. 심지어 CNN의 국가안보담당 특파원은 "미군이 전쟁포로를 어떻게 대우하고 있느냐?"는 앵커 질문에 "많은 것을 답할 수 없다"고 답했다. CNN이 객관적인 전황을 전하기보다 백악관과 펜타곤의 입이 되길 택했음을 실토한 것이었다.

우익매체 폭스뉴스의 해설자로 기용된 올리버 노스 예비역 중령은 미군의 바그다드 공습을 '바그다드 도심 재개발 계획'이라고 묘사해 빈축을 샀다. 텔레그래프는 "애국적인 장면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측면에서 폭스뉴스에 맞설 자가 없었다"고 조롱했다.

CNN을 필두로 미-영 언론들은 자국의 행정, 군사소식통들의 얘기만을 믿다가 잇달아 오보를 양산해 신뢰성에도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됐다.

반면 아랍어권 언론, 특히 TV의 약진은 눈부시다. 이라크 정부가 개전과 함께 CNN 취재진들을 국외로 내쫓은 것은 CNN의 편파보도에 대한 앙갚음의 성격이 강하지만, 알 자지라, 알 아라비아, 아부다비 등 아랍어 위성채널을 이용해 이라크 내부 상황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알-자지라 방송이 23일 이라크 국영TV의 화면을 받아 보도한 미군 전사자의 모습. 미국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보도된 참상은 미국인들의 정서도 흔들어놓았다.
알-자지라 방송이 23일 이라크 국영TV의 화면을 받아 보도한 미군 전사자의 모습. 미국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보도된 참상은 미국인들의 정서도 흔들어놓았다. ⓒ 로이터 뉴시스
특히 알 자지라는 개전 초기 포로로 잡힌 미군, 잇따른 공습으로 사망하거나 큰 부상을 입은 이라크 국민들의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줘 반전 여론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알 자지라는 취재기자들이 미국 뉴욕의 증권거래소 출입을 정지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지만, 유럽지역의 시청률이 폭등하는 등 '이라크전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일부 해커들이 알 자지라 웹사이트를 공격목표로 삼을 정도로 알 자지라는 영어권 언론들이 독점하고 있는 서구중심 언론판도에 맞서는 대안언론의 성가를 높여가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6일 인터넷판에서 "초기 선전전에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어느 정도 승세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 배경에는 아프간전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아랍어 위성방송들이 존재하고 있다.

초반 선전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화력의 미-영 동맹군이 결국 이라크를 물리치고 바그다드에 입성할 날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계산을 빗나간 일련의 징후들은 대 테러전쟁을 빙자한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에도 상당한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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