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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우리 가족의 꿈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된단 말입니까?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이 억울함을 풀 수 있습니까? 도대체 국가는 누구를 위한 시스템입니까?"

지난 6일 서울 중구의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이영정씨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서 개최하는 '환자 Shouting(샤우팅) 카페' 행사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얘기를 풀어냈다.

이영정씨의 환자 샤우팅 동영상
ⓒ 김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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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정씨의 아내 김진영씨는 스티븐 존슨 증후군(stevens johnson syndrome) 투병 중이다. 2010년 1월. 10년 다니던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서 먹은 것이 발단이 됐다. 그때 약사는 '괜찮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감기약을 권했다. 하지만 낫기는커녕 열이 나고 몸도 쑤시고 무릎 안쪽이 가렵고 땀띠처럼 오돌토돌하게 부풀어 올랐다.

근처 종합병원으로 가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더욱 악화돼 부산의료원으로 갔다. 거기서 스티븐 존슨 증후군 같다는 진단을 받고 응급차로 급히 동아대학병원으로 갔다. 숨을 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위급한 순간이었다. 순환기, 류마티스 등 8개 이상 진료과를 돌아다니며 치료하던 50여 일.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이었지만 겨우 극한 상황에서 벗어났다.

누구나 잠재적 스티븐 존슨 증후군 환자

스티븐 존슨 증후군은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한 질병이다. 김진영씨에게 스티븐 존슨 증후군을 유발한 주요 원인은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추정된다. 현재 미국 FDA와 우리나라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 1회 최대 적용기준을 325mg으로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이 기준이 전문의약품에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일반의약품에는 아세트아미노펜이 500mg 이상 함유되어 있다.

감기약인 소염진통제, 타이레놀 등이 대표적이다.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는 있는 약이다. 물론 아세트아미노펜을 과다복용하더라도 모두 스티븐 존슨 증후군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누가 희생양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김진영씨가 약국에서 구입한 약과 의원에서 받은 처방약의 주요성분도 아세트아미노펜이었다.

최혁재 경희대 약학대학 교수는 "스티븐 존슨 증후군을 일으키는 약물은 약 1700여 가지 있는데, 이중 감기약과 항생제에서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김진영씨와 같은 경우에는 아세트아미노펜으로부터 부작용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하지만 아세트아미노펜을 함유한 약이 어느 시점에서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그 인과관계는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존슨 증후군은 급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대부분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김진영씨는 생명엔 지장이 없었지만, 눈 점막에 수포와 허물이 생겨 실명한 상태다. 16회에 걸친 각막 이식술 후에도 여전히 15분에 1번씩 안약을 투약해 안구가 녹아내리지 않게 하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남편 이씨는 피해보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 사례나 실태조사 결과를 찾아봤지만 변변한 정보가 없었다. 정부와 소비자단체도 그런 사례가 없다는 말만 했다. 올해 들어서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최근 3년간 의약품 부작용은 15만 건,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이 의심되는 사례는 1246건에 달한다고 발표한 것이 전부다. 제약회사도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영정·김진영씨가 분노를 터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씨는 피해 구제를 받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물건을 팔면 AS를 해주는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었다"며 "정부나 소비자단체도 마찬가지였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심지어 끈질기게 전화를 하니 보건복지부 직원이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또 보건복지부, 국민고충위원회, 법률구조공단, 한국소비자원에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했지만 "안타깝지만 우리 담당이 아니다" 혹은 "상담은 해줄 수 있지만 조정이나 해결책을 줄 수는 없다"는 무성의한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2011년 9월 14일 이영정·김진영씨는 약국, 병원, 제약회사뿐만 아니라 국가를 대상으로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의약품 부작용에 대한 실질적 대책 필요

 이영정씨는 보건복지부, 국민고충위원회, 법률구조공단, 한국소비자원 등에 도움을 구했지만 "안타깝지만 우리 담당이 아니다"라는 무성의한 답변만 들었다면 분통해 했다.
이영정씨는 보건복지부, 국민고충위원회, 법률구조공단, 한국소비자원 등에 도움을 구했지만 "안타깝지만 우리 담당이 아니다"라는 무성의한 답변만 들었다면 분통해 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어 부부는 올해 3월 6일 '행정입법부작위위헌확인'으로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내용은 '복지부가 의약품부작용 피해구제사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지 않은 만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행정입법부작위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1년 약사법 개정을 통해 의약품부작용피해구제기금을 설치·운영하도록 명시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피해보상 사례는 없었다. 부담금 마련 등 구체적인 시행규칙이 마련되지 않아 대책이 나오지 않았던 것.

일본은 1980년부터, 대만은 2000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사업을 운영중이다. 두 나라는 제약사 및 의약품 수입업체 등으로부터 의무적으로 기금을 받는다. 북유럽 등에서는 무과실보상 방식을 채택해 넓은 범위의 보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다행히도 지난 1일부터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의약품부작용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아쉬운 부분은 의료사고를 다루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달리 입증책임이나 피해구제 기금운영 등에 대한 권한이 없어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재판 과정에서 환자 스스로가 문제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만만치 않은 치료비에 대해서 정부 차원의 대책도 필요하다.

김진영씨도 동아대병원으로 이송된 후 몸을 무균 상태로 만들기 위해 한 대당 150만 원 되는 링거를 24대나 맞아야 했다. 거기다 1년 동안 550회 진료, 계속되는 수술에 이미 두 채 있던 집마저 팔았다. 김씨도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에 자살 시도만 수차례 했을 정도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왔다. 계속 늘어나는 의약품 부작용 상황을 지켜만 본다면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고충을 듣고 배려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을 기대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스티브존슨증후군#감기약#의약품부작용#아세트아미노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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