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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NLL 발언' 파문은 허위로 결론이 났습니다. '새누리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고, '조중동문'(<조선> <중앙> <동아> <문화>)이 이 사안을 대선 쟁점으로 설정하려고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정 의원의 주장은 허위로 판명됐습니다.

이는 정문헌 의원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조선일보>가 11일 치에 보도한 내용에 근거합니다. <조선일보>는 11일 치 1면 'NLL 주장 않겠다는 노(盧) 발언 요약 보고서, 청와대 올라왔다' 기사에서 "정(문헌) 의원이 주장한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비밀 단독회담이나 비밀 녹취록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 '비밀 단독회담이나 녹취록은 없다' 보도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2년 10월11일자 1면
▲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2년 10월11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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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헌 의원의 'NLL 주장'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는 비밀 녹취록이었습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비밀 단독회담'을 했고, 이와 관련된 녹취록이 존재한다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비밀 단독회담이나 비밀 녹취록은 없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비밀 단독회담과 녹취록이 없다는 것은 정 의원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가 사라졌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아니라 정 의원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조선일보>가 인정한 사실입니다. 

아마 정 의원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것 같습니다. 예상보다 '북풍 약발'이 떨어진다는 것을 체감했는지 당초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정상 간 비밀회담이 없었다는 반박과 관련, 정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10월 11일 치 3면)에서 "문건이 있다, 공식회담 와중에 일대일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초 자신이 주장했던 '비밀 단독회담'이 갑자기 '공식회담 와중에 일대일 얘기'로 바뀌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2012년 10월11일자 3면
▲ 경향신문 경향신문 2012년 10월11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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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놀라운 것은 정 의원이 <한겨레>와의 인터뷰(10월 11일 치 6면)에서 또 말을 바꿨다는 점입니다. 정 의원은 "애초 오후 2시 40분인가에 시작된 오후 회의가 3시께 단독회담 형식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정감사장에선 '비밀 단독회담'이라고 주장하더니,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공식회담 와중에 일대일 얘기'라고 하고, <한겨레>에는 '회의가 단독회담 형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대체 어떤 말을 믿어야 할까요. 본인도 좀 머쓱했는지 "중요한 것은 발언 내용"(<한겨레>)이라고 강조합니다. '발언 내용'의 출처가 사라진 마당에 그의 주장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냥 사과하고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게 '공인'의 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선>이 '여권 고위관계자'를 등장시킨 이유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2년 10월11일자 4면
▲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2년 10월11일자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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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중동문'이 정문헌 의원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유로는 '국면전환'이 꼽힙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 상태를 보이고, 외부인사 영입문제 등을 놓고 내홍이 벌어지니 보수층 결집을 위해 '2012년 판 북풍 조성'을 시도했다는 분석인 것입니다. 11일 치 <경향신문>이 3면(새누리, 대선 앞둔 'NLL 공세' 종북 시비로 보수결집 노리나)에서 보도한 내용도 이런 분석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문제는 '2012 북풍'이 예전만큼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문헌 의원이 최소한의 근거라도 제시하면서 주장을 해야 보수언론이 확대재생산을 할 때 여러모로 써먹을 수 있을 텐데, 정 의원의 'NLL 발언'은 말 그대로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습니다. '조중동'이 봐도 별 근거가 없는 걸로 보이는 거죠. 사실 <조선일보>가 '비밀 단독회담이나 녹취록은 없다'고 정리를 할 정도면 상황이 종료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조선일보>가 11일 치 기사에서 여권 고위관계자를 등장시킨 것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으로 보입니다. 국면전환용으로 정 의원의 발언을 대서특필하긴 했는데 근거는 빈약하고,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실탄'은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또, 10일 치 기사에서 참여정부와 군의 갈등이 심각했다는 기사를 내보내긴 했지만, 9일 치 <조선일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에 비하면 비교적 초라한(?) 후속보도였습니다. 게다가 <조선일보>가 취재를 해보니 비밀 단독회담이나 녹취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카드를 사용하겠습니까. 계속 정문헌 의원의 주장을 대서특필하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겠지요. 이럴 때 익명의 여권 고위관계자라도 등장시켜서 '벌여 놓은 판'을 조금이라도 끌고 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조선일보>는 '정 의원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선일보>는 <문화일보>나 새누리당보다는 한 수 위임이 분명합니다.

<조선> <문화>, 'NLL 외 충격적 발언'으로 슬쩍 이동

문화일보 문화일보 2012년 10월11일자 4면
▲ 문화일보 문화일보 2012년 10월11일자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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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든 정문헌 의원의 'NLL 발언'은 <조선일보>에 의해 근거 없는 '허위 주장'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지난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이의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비공개 대화록이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상 확인됐다"고 '회심의 칼'을 휘두른 <문화일보> 10월 9일 치 3면 기사 역시 오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상 확인한" <문화일보>의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그 경로의 신뢰성에 금이 간 게 확인이 됐으니 <문화일보>는 자신들의 '취재원과 취재경로'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들의 '북풍 시도'가 효과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면 그만 접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중동문'의 '박근혜 구하기'는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조선일보> <문화일보>가 선봉에 설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선보일 대략적인 전략은 11일 치 지면에서 감지됐습니다.

그 전략은 '노(盧), 김정일 만나 NLL 외(外) 놀랄만한 발언 쏟아내'(<조선일보> 10월 11일 치 4면) '노(盧)의 충격적 국격훼손 발언' 뭐길래... 대선 최대쟁점 부상(<문화일보> 10월 11일 치 4면) 등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들 신문은 앞으로 'NLL 외 발언'을 가지고 대선 쟁점을 만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정문헌 의원의 주장이 허위로 판명이 나고, 잘 먹히지도 않으니 이젠 'NLL 외 발언'을 가지고 정치적 공세를 가하겠다는 거죠. '비밀 녹취록'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NLL 외 충격적 발언' '국격 훼손 발언' 등의 활자가 나부낍니다. 두 신문의 주요 취재원이 익명의 '여권 고위관계자' '정부 고위관계자'라는 점도 똑같습니다.

<조선일보> <문화일보>는 정 의원보다는 영악한 편입니다. 정 의원은 자신이 근거로 제시한 '비밀 녹취록'에 대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이들 두 신문이 등장시킨 익명의 '고위 관계자'는 공개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익명의 관계자는 언론사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전천후 폭격기'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개하라고 하면 '취재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기에 비껴갈 소지도 많습니다.

'고위관계자' 뒤에 숨어 '판'을 짜려는 <조선> <문화>

정문헌 의원의 '비밀녹취록'이 거짓으로 드러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조선일보> <문화일보>가 익명의 취재원을 등장시킨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고위관계자가 내뱉는 발언의 신뢰성은 물론이고 '고위관계자'의 존재 여부마저 불투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신문의 보도만 보고 '뭐가 있긴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아마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정 의원은 사과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의 발언을 대서특필했던 언론 또한 정정보도나 자기반성은 없었습니다. "비밀 녹취록이 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다"고 보도했다가 사실무근으로 드러나자 'NLL외 발언 충격, 국제망신'이라고 비껴갑니다. 그것도 익명의 취재원을 등장시키면서 말이죠.

11일 치 문화일보 1면 제목은 '노-김 대화 충격적, 국제망신 국격훼손'이었습니다. 저는 이 제목을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정문헌-조중동문 주고받기 충격적, 국제망신 국격훼손'


#정문헌#조중동문#N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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