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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엄마들을 도와 드립니다"
 "바쁜 엄마들을 도와 드립니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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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어느새 큰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이 있던 날에는 제 엄마도 직장에서 조퇴를 하고 입학식을 함께할 수 있었다.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 손자를 보면서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러나 대견한 마음도 잠깐이었다. 냉혹한 현실이 코앞에 닥쳤던 것이다.

그 다음날부터 손자 혼자 등하교를 해야 했다. 직장에 다니는 딸아이는 늦어도 집에서 8시 20분에 나가야 하는데 등교시간은 당분간 아침 9시까지라 참 난감했다. 손자는 "할머니가 우리 집에 8시까지 오면 되잖아"한다. 방법이 없으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제 아빠가 조금 늦게 출근하기로 했다. 그나마 자영업을 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하교는 손자 혼자 할 생각을 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여 일주일 동안은 내가 하교하는 손자를 도와주기로 했다.

3일, 남편과 함께 손자를 데리러 학교로 가는 길에 딸아이 아파트에 잠시 들렀다. 아파트 입구에는 눈에 띄는 광고지가 한 장 붙어 있었다.

"바쁜 엄마들을 도와 드립니다"

직장에 다니시는 엄마를 위해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아이를 잠시 맡겨야 할 경우. 바쁜 엄마를 위해 도와 드립니다.
1, 병원에 1회 갈 경우(약국 포함) : 5000원
2, 집에서 학원으로 한번 이동 시 : 2000원
3, 집-학원-집 이동 시 : 5000원
4, 1~2시간 정도 아이를 돌봐줌. 시간당 : 3000원
장기적으로 이용 시: 한 달 이동 시 50000원(한 장소 왕복)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가까이 살지 않았더라면 딸아이도 가끔씩 이것을 이용해야 할 형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자, 점심밥은 어떻게 해결하지?

손자가 입학하자 맞벌이인 딸아이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선 입학하고 한 달 동안은 학교급식이 없는 관계로 당장 점심밥이 걱정이었다. 손자가 들어간 학교는 4월에 급식이 시작된다. 그 사이 3월초부터 3월말까지, 한 달 동안의 점심 식사 해결이 문제였다. 다른 학교 중엔 1년 내내 급식이 없는 곳도 있단다.

어쨌든 아침마다 식탁에 점심밥상을 차려놓고 출근한다 해도 사내 녀석이라 잘 챙겨 먹지도 못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것도 요즘처럼 날씨가 선선할 땐 괜찮다 하더라도 더운 여름에는 음식이 상하기 쉬워 그 짓도 못할 일이다. 그렇다고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반찬을 챙겨 먹을 리는 더더욱 없을 터. 아무튼 점심밥 때문에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손자가 오기에는 먼 거리다. 그러다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엄마가, 직장이 가까운 관계로 점심시간에 나올 수 있다고 해서 그 집에서 한 달 동안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조율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맞지 않아 그것도 무산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내가 매일 가서 밥을 먹이고 오려고 했다.

그때 먼저 그런 일을 겪은 딸아이의 선배가 작은 손자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부탁을 해보라는 거였다. 자기네 아이도 그렇게 해결했다면서. 작은 손자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이야기를 했더니 다행히도 원장 선생님이 그래도 된다는 대답을 얻었다. 정말 구세주 같았다. 큰 걱정 한 가지가 해결되었다.

걱정거리는 그것뿐이 아니다. 손자가 입학하기 한 달 전부터 익숙해지라고 휴대폰을 사주었다. 처음에는 내가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휴대폰을 아무 곳에나 놔두고 다니기도 했다. 자꾸만 반복해서 각인시키고 전화도 자주 걸어 통화하니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휴대폰을 사준 가장 큰 목적은, 학교가 끝나면 학원이동이 있는 관계로 손자의 이동경로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다. 가끔씩 통화도 하고. 그래야 딸아이가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자가 장소 이동을 하면 딸아이 휴대폰으로 알림이 오는 시스템이다. 또 아이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빠른 연락을 위해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또 다른 문제들이

입학하고 다음날인 3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교문 앞에는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제법 눈에 많이 띄었다. 한 할머니에게 "아침에도 데려다 주셨어요?"하고 물었다. 그 할머니는 "당연하지요. 처음인데 당분간은 데려다주고 데리러 와야지"한다. 만약 그렇게 많은 가족들이 다른 아이들을 마중 왔을 때 손자만 아무도 안 나와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입학하고 일주일 동안은 2시간만 수업을 하고 오전 10시 30분쯤 끝이 난다. 그 다음은 11시 20분에 끝나는 날도 있다. 2주째가 되면서 12시 30분에 끝나고 1시 30분에 끝나는 날도 있다.

요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평균 2~3군데 학원을 다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손자도 3군데 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나마 딸아이는 탄력근무제를 하고 있어 그동안은 퇴근 후 손자를 데리고 이동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오전부터 손자 혼자 이동해야 하니 불안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목에는 안 보이게 옷 속으로 집 열쇠를 걸고,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고, 무거운 책가방과 신주머니는 들고, 옷 속에 들어 있는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열고, 빈집에 들어갈 손자를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 마음 한구석이 짠해진다. 지금은 그렇게 적응을 해나간다 해도 방학 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손자를 위해 다시 딸과 이웃이 되기로

요즘,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끔찍한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이다. 평소에도 함부로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때는 아무도 없는 집에 아침부터 종일 혼자 있을 손자.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남편과 의논을 했다. 딸집 옆으로 다시 이사를 가자고. 남편은 조금은 못마땅한 눈치였다. 난 "우리가 돈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팍팍 밀어주지도 못하는데 늙어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지. 저렇게 살려고 애를 쓰는데" 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3일 비가 오는 날, 한가한 남편과 함께 손자를 데리러 간 것이다. 남편이 직접 보고 느끼라고. 큰 손자를 작은 손자의 놀이방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난 다시 힘을 주어 말을 했다. "저것 봐. 밥 먹을 데가 없어서 우협이 놀이방에 와서 밥을 먹고 거기에서 학원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하며 약간 짜증나는 투로 말을 했다.

손자가 놀이방에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던 남편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거나 멀리 사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그래 이사하자" 한다. 남편 말대로 무슨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어쨌든 현장을 보고 난 후에라도, 이해하고 배려해 준 남편이 정말 고맙다. 딸아이도 좋아할 것이다. 난 딸아이에게 이 기쁜 소식을 재빠르게 전해주었다.


태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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