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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에서 열리는 '독도의 날 제정 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회창 한나라당 전 대표가 도착하자, 이 전 총재의 사진이 실린 피켓을 든 지지자들이 박수를 치며 '이회창 대통령'을 외쳤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에서 열리는 '독도의 날 제정 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회창 한나라당 전 대표가 도착하자, 이 전 총재의 사진이 실린 피켓을 든 지지자들이 박수를 치며 '이회창 대통령'을 외쳤다. ⓒ 권우성
설마 설마했는데, 이회창 전 총재가 정말 대선에 다시 나설 태세이다. 이런 경우도 있구나! 정치평론을 십수년간 해왔지만, 그의 역발상에 놀라게 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강연정치 행보를 해왔던 이 전 총재는 최근 들어 과거 측근들을 잇달아 면담하며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이 전 총재를 만난 사람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가 대선 재출마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쪽에서도 이제는 그의 출마에 대비해야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총재의 재출마 선언이 임박해가는 분위기이다.


임박해가는 이회창 재출마선언


그의 재출마, '대권 3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당연히 정치권의 표정은 엇갈리고 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 측은 대선을 목전에 두고 한나라당 지지층의 분열을 가져오지 않을까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반대로 대통합민주신당과 정동영 후보 측에서는 반색하는 분위기이다. 이 전 총재가 한나라당 지지층의 분열을 가져오면 정 후보가 해볼 만한 대선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최소한 이명박 후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후보'라는 점은 부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정당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미묘하고 민감한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총재의 재출마 움직임을 비판하면 자칫 한나라당의 분열을 막으려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반대로 대통합민주신당 측의 기대에는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파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있다고 해서, 입을 닫고 있을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이 전 총재의 재출마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기에는 우리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파에 유리하고 불리하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이 전 총재의 대선 재출마는 분명 한국정치에 여러 해악을 끼치게 되어 있다.


이회창의 재출마, 정파 유불리 따질 문제 아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19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디자인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으로 나가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19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디자인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으로 나가고 있다. ⓒ 권우성

첫째, '차떼기'의 주역이 다시 대선에 출마하여 국민의 지지를 호소한다는 것은 그 장면 자체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이 전 총재가 누구이던가. 2002년 대선에서 있었던 '차떼기'의 원죄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이 전 총재는 당시 자행된 불법적인 정치자금 모금의 최고 책임자였다. 비록 사법적인 책임은 면제받았지만, 정치적·도덕적 책임까지 면제된 것은 아니었다.

 

정치에서 물러나 과거의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근신하고 있어야 할 '차떼기'의 주역이 다시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며 나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우리 정치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지경에 이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둘째, 이 전 총재의 뒤늦은 재출마선언은 정당정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이다. 그가 대선에 나설 생각이었다면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하여 당원과 국민의 뜻을 묻는 것이 순서였다.


이제 한나라당의 경선이 끝나 대통령후보가 선출된 마당에, 뒤늦게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물론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으니까 법적으로야 출마의 권리가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수긍하기 어렵다.


셋째, 이 전 총재의 출마는 이번 대선을 다시 구시대적인 이념대결의 장으로 몰고 갈 위험이 크다. 그동안 이 전 총재는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비난하면서 이념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왔다.


강연정치를 통해 다시 등장한 이 전 총재는 과거와는 다른 극우적인 인사로 변해있었다. 그가 대선에 다시 나선다면 아마도 이명박 후보의 실용주의 노선까지도 비판하면서 자신이 보수세력의 진정한 구심임을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구시대적인 이념논쟁이 제기될 것이다.


이번 대선은 모처럼 소모적인 이념대결이 퇴조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낡은 색깔논쟁이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한다는 판단을 정당들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 총재의 등장은 꺼져가던 이념논쟁에 다시 불을 붙일지 모른다. 과거로의 퇴행이다.

 

대선의 긴장감은 높아지게 될 것

 

물론 이 전 총재의 출마는 싱겁게 전개되던 이번 대선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한나라당 지지층의 강력한 반발 속에서 출마할 그의 지지율이 얼마만한 파괴력을 가질 것인가는 아직 미지수이다. 아무래도 정권교체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하는 한나라당 지지층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무소속 이회창'의 지지율이 파괴력을 갖는 수준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재는 생각보다 훨씬 초라한 마지막을 보아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극우적 행보가 이명박 후보 지지층을 얼마나 잠식할지, 그와 이명박 후보 간에는 어떤 공방전이 전개될지, 이런 것도 관전의 새로운 거리들을 제공해줄 것이다.


특히 김경준씨 귀국 이후 이명박 후보 지지율의 변화 여부, 범여권 후보단일화같은 변수와 맞물리게 될 경우, 대선판이 한차례 요동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범여권의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이번 대선이 다자구도로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이 전 총재의 재출마는 이래저래 이번 대선의 복잡성을 높여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싱겁게 흘러가던 이번 대선에 새로운 긴장을 안겨준다고 해서 이 전 총재의 재출마를 고마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대권'에 대한 미련이 커도, 상식은 지켜져야 하는 법. 국민의 상식을 깨며 다시 나서려고 하는 이 전 총재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다.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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