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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내 아들 죽음의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더 감추지 말고, 초동수사기록을 전면 공개하고 진실규명에 나서야 합니다."

지난 5월 19일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군인 가운데 처음으로 총기 사망한 고 오종수 중위의 어머니 임정임(58)씨. 그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라크로 파병된 지 24일 만에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라니. 별안간 닥친 슬픔에 밤낮없이 드나들던 집 현관을 헛디뎌 팔에 금이 가고 다리에 피멍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다. 아들의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60일이 됐다. 세간엔 이미 잊혀진 죽음. 그러나,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의문을 풀지 못한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5월 24일 국내로 인도된 오 중위의 유해도, 진실규명 이전에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가족의 뜻에 따라 경기 분당 국군수도병원에 안치 중이다.

17일 <오마이뉴스> 기자는 서울 장위동 오종수 중위의 집으로 찾아갔다. 어머니 임정임씨와 매형 김승호씨, 누나 연화씨 등 가족들은 깊은 슬픔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정보공개청구로 받아낸 유품... 초동수사기록은 결국 비공개

▲ 오종수 중위의 가족들.
ⓒ 오마이뉴스 장윤선
"속옷·수첩·일기장·노트북·디지털카메라. 6월 29일 국방부로부터 돌려받은 유품이에요. 초동수사기록 등 수사관련 내용은 전혀 받지 못했어요. 정보공개청구까지 했는데 비공개 결정이 났어요. 유족인데도 수사자료를 보여줄 수 없다는 거겠죠. 참 갑갑한 노릇입니다."

매형 김승호씨는 지난 60일간 이어진 국방부의 무성의한 태도에 진저리를 쳤다. 그것보다 더 답답한 것은 이 문제를 호소할 만한 변변한 곳도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결국 가족들이 모든 문제를 짊어지고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 오종수 중위의 수첩에 적힌 노트. 5월 19일에 '자살'한 오 중위가 21일에 처리해야 할 일까지 적어두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우리 종수가 무슨 일을 저질렀나요?"
"아버님과 면담하고 싶은데,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내가 엄마예요. 엄마한테 얘기 못할 게 뭐가 있나요?"
"종수가 죽었어요."


임정임씨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난 5월 19일 저녁 8시 5분 국방부로부터 첫 번째 전화를 받던 날을 상기했다. 당시 임씨와 통화한 국방부 관계자는 "지금은 수사 중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말하겠지만 자살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믿을 수 없었어요. 멀쩡하던 내 자식이 자살을 하다니. 이라크 가기 전부터 엄마를 안심시키느라 '거긴 안전한 데'라고 얼마나 강조했는데. 1주일에 2~3번씩 집으로 전화해서 안부를 묻던 얘에요. 국방부의 조사결과대로 과도한 업무스트레스 탓이라면 엄마한테 먼저 말했겠죠. 그렇지만 종수는 그런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축구와 마라톤을 사랑했던 막내아들. 그런 막내아들을 '회의주의자, 염세적, 완벽주의자'라고 명명한 국방부에 대해서도 임씨는 분노가 들끓었다.

지난 6월 4일 국방부가 공식 발표한 오 중위 사망 관련 조사결과보고서를 본 뒤 그녀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고 한다.

국방부 조사단이 약 4만 가지 내용을 검토한 끝에 2가지 관련사실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바로 오 중위가 인터넷 미니홈피 싸이월드에 스크랩해서 올린 두 편의 글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국방부의 주장은 황당하다는 게 임씨의 입장이다.

"국방부는 종수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염세적이고 회의적인 내용의 게시물 2건을 올렸는데 이것이 사고동기 중의 하나라고 밝혔어요. 그렇지만 그건 2004년에 스크랩한 내용이에요. 3년 전에 올린 게시물을 사고의 직접적 동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측 아닐까요?"

"3년전 스크랩 자료 때문에 내 아들이 염세적이라니"

▲ 오종수 중위의 일기장 일부가 찢어졌다.
ⓒ 오마이뉴스 문경미
사망 41일 만에 국방부로부터 받아낸 유품의 보존상태도 좋지 않았다. 오 중위의 사망 당시 왼쪽 가슴과 팔 사이에 눌려있었던 육군수첩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3공 스프링에 끼워져 있어야 할 종이노트들은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다.

"수첩이 너무 마구잡이로 따로 정리돼 있어서 우리도 앞뒤를 분간하기 힘들었어요. 일기장도 자이툰에서 종수 아빠가 보고 온 것과 달랐어요. 종수 아빠가 이라크 자이툰부대에서 본 일기장은 스프링노트였는데 우리에게 전달된 것은 하드커버 일기장이에요. 5월 10일 일기가 쭉 적혀 있고, 가운데 한 장이 찢어져 있으며, 그 뒤 5월 11일이라고 날짜만 또 적혀있어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해 속시원히 국방부의 조사결과에 대해 듣고 싶지만 국방부는 비공개 입장을 고수하면서 9월 초순까지 조사결과를 기다리라는 입장이다.

다음은 오 중위 가족이 요청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국방부의 답변내용이다.

- 오종수 중위 사망사건의 초동수사 자료·유품·증거물·사진 및 영상자료와 관련해

청구정보와 관련한 사건은, 현재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보통검찰부에서 수사 중인 사건으로, 이라크 현지 실정에 비추어 청구정보의 열람·시청 및 우송 등이 극히 제한되고 조만간 이 사건 종결 후 가장 빠른 병력 교대 시인 2007. 9. 7. 경에 이 사건 관계기록 일체를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송할 예정이므로 보통검찰부에서는 이 사건 청구 정보를 공개함이 적합하지 않아 부득이 청구정보에 대한 비공개 결정(전부)을 합니다. 2007. 9. 7. 이후 관계기관에 재차 정보공개를 청구하시기 바랍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4호, 군검찰 사무처리규칙 제26조 제8호.


"왜 죽었는지 모르는데, 장례 치를 수 없다"

▲ 지난 5월 19일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서 첫 총기사망한 오종수 중위의 어머니 임정임씨. 그는 국방부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매형 김승호씨는 "진실을 위한 긴 싸움에 돌입한 것 같다"며 "우리는 종수가 그토록 좋아했던 마라토너의 마음으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언론에서 제기했던 사망시점 의혹 등도 좀더 면밀하게 따져 대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 임씨는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질의하면 돌아오는 답은 '제 소관이 아니라서'였다"며 "유가족들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데 대해 정부가 조금이나마 귀 기울이려 한다면 수사를 지휘했던 총지휘관이 유족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씨는 "우리 아들의 장례가 그렇게 급한지 국방부에 묻고 싶다"며 "우리는 명확한 진상규명 없이 장례부터 치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왜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명확한 동기도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례부터 치를 수는 없다는 것이 임씨의 입장이다.

"우리 아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에요. 딸 넷에 아들 하나인데, 아침마다 '엄마 사랑해' 하면서 안는 애는 걔뿐이에요. 엄마를 그토록 사랑하는 내 아들이 편지 한통 남기지 않고 영영 먼 길을 떠났을 리 없습니다."

태그:#오종수 중위, #자이툰 부대 첫 총기 자살, #국방부, #이라크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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