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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헤란로 동부화재와 조흥은행 강남지점 사이에 설치 미술. 안타깝게도 작품에 대한 정보들 주변에서 얻을 수 없었다. 이 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리라
ⓒ 김형순
'포스코미술관'과 그 주변의 거리 미술을 감상하려면 서울에서 가장 번화하고 고급 빌딩들로 즐비한 금융 중심지 테헤란로를 지나가야 한다. 이 거리는 지하철 2호선 선릉역과 삼성역 중간 지점에 있다.

이런 빌딩 숲 사이를 헤치고 길을 걸으면 다양한 설치 미술품과 조각품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거리 미술품이나 조각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해 빌딩 관리원에게 물어봐도 잘 모를 정도여서 조금은 안타까웠다.

<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을 읽어보면 조영남에게 거리는 굳이 전시장에 가지 않고도 예술을 펼치거나 감상할 수 있는 장터이다. 사실 생활에서 미술을 찾아 보면 많다. 현대적 건축미를 갖춘 빌딩도 하나의 커다란 미술품으로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가능할 것이다.

거리에서 핀 철재 꽃

포스코센터와 가까와지면서 일종의 '벌집 철강(honeycomb steel)'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철 구조물이 보인다. 정말 거리에 피어난 한 송이 꽃 같다. 그 감격과 경이는 정말로 크다. 철재로 된 꽃이라니 전혀 예상 못했던 미적 경험이다.

▲ 프랭크 스텔라 <꽃 피는 구조물: 아마벨> 1997 스테인리스스틸 900×900×900cm 거리의 흉물이라 하여 철거되거나 이전될 뻔했다. 좌우로 사람들의 눈길을 가리려는 소나무도 보인다
ⓒ 김형순
무게가 무려 30톤인 이 대형 조각품은 미국의 세계적 작가인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작품이다. 아름다운 꽃 이름을 연상시키는 '아마벨'이란 멋진 별칭도 붙어 있다. 17억원이나 들여 세운 이 작품이 하마터면 보기에 '흉물스럽고' 거리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옮겨질 뻔 했다. 작가의 극구 반대로 지금 여기에 서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실제로 이 '아마벨' 옆에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소나무를 심어 놓았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눈을 의심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난센스가 있다니. 우리의 예술품을 보는 안목과 문화 수준이 이 정도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열치열이라고 찌그러지고 뭉개진 철제와 반듯하고 단정한 고층 건물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요즘 말로 코드가 잘 맞는다. 이런 전체 맥락을 읽지 못하고 이전을 생각했다니 정말 안타깝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

▲ 백남준 'TV 나무' 1995 혼합재료 700×700×700cm 1층에서 본 모습
ⓒ 김형순
이 조각품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 '포스코센터'가 있다. 이 건물에 들어서면 정말 우리의 두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설치 미술품이 보인다. 바로 백남준의 근작인 'TV 깔때기'와 'TV 나무'이다. 그 앞에 서면 감동보다 더한 전율을 느껴진다. 철강 회사에 복합된 강철 매체로 만든 작품이라 더욱 잘 어울린다.

백남준은 'TV 시리즈'를 평생 작업해 왔다. 1964년에 'TV 브래지어', 1971년에 'TV 첼로', 1999년에 'TV 왕관' 등 수없이 이어진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백남준의 엉뚱한 상상력, 신출귀몰의 장난기는 세계인을 감동시킨다. 그는 밤늦도록 달빛 아래서 놀던 악동의 경험을 조형화하여 세계적 작가가 되었다.

사실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시하면서 비디오 매체를 종이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이는 일체의 오브제가 다 종이나 캔버스임을 일러주었다. 모든 것이 일체의 미술이 될 수 있다는 한국인 특이한 통합적 사고가 서양인의 분열적 사고를 깨고 세계 미술사에 우뚝 솟은 것이다.

▲ 백남준 'TV 나무' 1995 혼합재료 2층 로비에서 본 모습. 위치에 따라 느낌이 달라 보인다
ⓒ 김형순
사실 지금은 종이 사용보다 비디오나 TV 매체 사용이 더 많이 쓰이는 시대이다. 텍스트 시대가 가고 이미지 시대가 오고 있음을 일찍이 터득한 셈이다. 백남준은 그런 면에서 예언자이며 독창적 예술가이다. '영상 통치 시대(videocracy)'라는 말이 생길 정도니….

사실 백남준을 세계적 작가로 알리고 세계인에게 커다란 충격은 준 사건은 정보 통신 시대에 '우주오페라'라고 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을 선보이면서 부터이다. 우리 나라는 전두환 시대였지만 우리는 이 '우주오페라'를 보면서 엄청난 시원함과 통쾌함을 느꼈다. 또한 우리 국민에게 힘과 에너지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4년 후 '88 서울올림픽'에서 그런 잠재된 역동성과 창의성이 여지없이 표출되었다.

'뜸 들여 익힌 것' 세계에 보일 때

21세기는 한국 문화가 도약하는 시대, 그 전주곡이 울렸다고 백남준은 말한다. '뜸 들여 익은 것'을 이제는 세계인에게 내보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술도 시장 원리에 따라 과감한 투자를 주문하고 있다. 또한 정치경제 원칙에만 빠져 있는 우리에게 사회문화 원칙을 요구하고 있다.

▲ 백남준 'TV 깔때기' 1995 혼합재료 800×800×1100cm 포스코센터 2층 로비에서 본 모습
ⓒ 김형순
그러나 백남준도 이렇게 세계적 예술가로 인정받기까지 오해와 질시와 굴곡도 있었다. 1967년 성행위도 최고의 퍼포먼스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뉴욕 '오페라 섹스트로닉'을 공연을 하다가 경범죄로 체포되기도 하였다. 클래식 첼로연주자인 '샬롯 무어맨'이 실제 나체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세계적 철강 기업으로 발돋움한 포스코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로 발돋움한 백남준, 이 둘은 비디오와 스틸로 만나면서 기업과 문화의 소통과 참여가 가능함을 선보이고, 이런 설치 미술을 가능하게 했다. 아직 한국의 여건이 어렵지만 일단 물꼬는 튼 셈이다.

▲ 프랭크 스텔라 <전설 속의 철의 섬> 1997 1100×50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포스코센터 2층 로비. 길이가 11미터나 되는 대형 그림
ⓒ 김형순
프랭크 스텔라의 <아멜라> 감동이 채 가시기 전, 2층 로비에 들어서면 그의 또다른 거작 <전설 속의 철의 섬>(1997)을 만나게 된다. 길이가 11미터나 되는 대형 그림이다. 그는 그림을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고 했다. 그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 그림을 보면 깊은 충일과 환희에 빠지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검색을 통해 그의 다른 그림이나 조각을 봐도 역시 그렇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이런 엄청난 대작을 그릴 수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경이롭다. 그런 힘과 열정과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수수께끼다. 강철보다 더 강한 작가라는 생각이 떠올라 이 그림도 이 자리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턱 낮은 열린 미술관

'포스코미술관'은 2층 로비 바로 건너편에 있다. 처음 95년에 '포스코센터'가 준공되었을 때는 89평 규모로 지하 1층에서 운영되었다고 한다. 정식 등록 미술관이 되면서 새 단장을 하고 169평 규모의 확장 이전했으며 그동안 40여회에 걸쳐 '오늘의 동서 작가 85인전' 등 다채로운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 2층에 있는 '포스코미술관'.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현대 젊은 국내외 작가들 중심으로 다양한 전시를 기획을 하고 있다. 왼쪽 하단은 '스틸갤러리'의 내부 모습
ⓒ 김형순
이 미술관은 1995년 개관한 이래 예술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간의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열린 문화 공간, 문턱 낮은 미술관'을 지향해 왔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스틸갤러리'가 바로 옆에 나란히 있어 철과 문명 발달사와 최근 첨단 개발품까지 전문 갤러리로서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면 역시 주변에 그림들이 즐비하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정재규의 1991년작 <석(石)과 연(蓮)>, 윤진숙 작가의 근작 화선지에 먹에 그린 <산책>, 고석원 작가의 2004년작 <도큰 III> 등 독창적 작품이 여기저기 전시되고 있다.

▲ 윤동구 <무제> 1995 5900×2500cm 판넬 혼합 재료 포스코센터 1층 원초적 힘과 에너지 운동의 양상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 김형순
위의 작품은 윤동구가 10년 전에 제작한 <무제>라는 작품으로 일종의 설치 미술이다. 설치 미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말에 조영남은 친구의 말을 인용하며 155마일 휴전선의 철책이 바로 설치 미술이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한다. 그의 말이 너무 간단명료해 귀가 솔깃해진다.

작가 윤동구는 신문사의 구(舊) 윤전실 공장 같은 데서도 설치 작업을 하는 특이함과 작가만의 독자적 경험을 최대로 살려 아날로그 방식이지만 '모아붙이기 작업'으로 추상화 풍의 <무제 시리즈> 계속 내놓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위력과 우주적 질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시 밖으로 나오면 신문선의 <무제>, 신옥주의 <지혜의 문>도 보인다. 그리고 돌처럼 보이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김희성의 <포스코의 이미지>는 스틸이 마치 깃발처럼 나부끼고 국기처럼 펄럭인다. 이런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철강 기업의 딱딱함이나 차가움도 해소된다.

▲ 도흥록 <큐브(cube) 95-II> 1995 469×427×520cm 스테인리스스틸 포스코센터 야외 전시
ⓒ 김형순
위의 작품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도흥록의 1995년 작으로 제목은 <큐브(cube) 95-II>이다. 재료는 역시 스테인리스 스틸이고 크기는 삼면이 500cm 정도로 중량감을 준다. 몸통의 입체감을 주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스틸에서도 이런 정교함, 신선함, 산뜻함, 따뜻함이 나올 거라고 예상 못할 것이다.

이 정도라면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는 거뜬히 걸을 것 같다. 이렇게 걷다 보면 지하철 2호선 역삼역에서 GS 강남센터 가는 연결 통로에 또 하나의 걸작과 만나게 된다. 바로 재독 작가 노은님(盧恩任)이 1999년에 제작한 <봄나들이>이다.

'생활 속 미술' 하루쯤 시도

그녀는 독일에서 '한국의 피카소'라고 소개될 정도로 유명 인사인데 사실은 70년 초 간호사로 파견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미술대학 과정을 마치고, 함부르크 미대 교수가 된 특이한 이력의 작가이다.

▲ 노은님(盧恩任) <봄나들이> 1999 1440×240cm 유리 조명 등 혼합재료. 2호선 역삼역에서 GS 강남센터 가는 연결 통로에 있다. 아주 산뜻한 봄 기운이 듬뿍 담겨 있다
ⓒ 김형순
그녀의 수필을 읽어보면 작가의 어린 시절, 구차했지만 동네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본 오리며 물고기며 한 나절의 즐거운 추억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고 있다. 이국 생활에서 얼마나 고향의 봄 산천이 그리웠겠는가!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도가적 감수성이 독일인과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다.

이 정도의 여행이라면 '생활 속 미술 감상'으로 하루쯤 시도해 볼만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포스코센터] 02-3457-0114 홈페이지 : www.posco.com. 
찾아가는 길 지하철 : 포스코센터는 2호선 선릉역에서 하차하는 것이 좋다.
2호선 삼성역에서 하차하면 현대백화점과 코엑스, 무역센터가 
모두 지하로 연결되어 있어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일반버스:21, 33-1, 33-2, 63-1, 65, 68, 78, 141-1, 235, 288-1, 300, 555-2, 571-1번 
좌석버스:30, 33, 37, 63-1, 64, 733, 768, 772번 
[포스코미술관] 02-3457-0793 이메일 : yunnai@posco.co.kr 
관람 시간 : 월-금 오전9시-오후6시(동계5시) 토요일, 공휴일 휴관. 무료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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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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